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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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이자 에세이스트로서 두 권의 책을 낸 문유석님이 '미스 함무라비' 라는 소설을 냈습니다.

 '미스 함무라비' 라는 별명을 갖게 된 초임 판사 박차오름이 배석판사로 재판을 진행해가며 겪게 되는 성장기 입니다. 

 

저자가 각 장마다 극에서 빠져 나와 판사의 일을 소개 하는 에세이도 삽입되어 있는 특이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장편소설의 형식이면서, 제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의 형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전관예우같이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소재들로 채운 소극이기도 합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치한에게 가차 없는 직격탄을 날리고, 억울한 사연을 가진 피고에게 온정의 시선을 건네는, 직업인으로서의 일상과 공직자로서의 사명감 사이를 오가는 저자의 냉철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균형 있게 그려집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 당차게 외치는 정의로운 신참 판사는 이야기 속 법정에 선 남성들로부터 고속도로 출구에서 새치기 좀 했다고, 행패를 부리는 젊은 여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요사이 페미니스트 앞에 나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합니다. 그야 말로 나쁜 페미니스트이지요. 예컨대, 신참 열혈 판사,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 같은 캐릭터는 어쩌면 이야기의 결말까지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뻔한 클리셰일지도 모릅니다. 박차오름이라는 흔한 열혈 신입사원에게 나쁜 페미니스트캐릭터를 덧씌워 입체감 있는 인물로 그려냅니다.

 

고난한 어린 시절을 겪은 박차오름과 피고가 되고, 원고가 되어 법정에 서는 많은 여성 인물들은 남성 중심사회가 만들어온 편견과 관행이라 여겨져 왔던 악습과 싸웁니다.

 

 

성희롱을 당하는 이십대 직원이나 교수에게 준강간을 당한 대학원생등에 대한 피고측 변호인들의 태도는 아직 이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라는 사실을 반증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재판에서는 바람 피운 년이 방에 칼까지 숨겨놓고 있다가 서방을 찔러 죽이다니 이런 천벌을 받을 년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며 분개하던 노인 배심원이 속해 있던 국민 참여재판에서조차도 자기의 남편을 죽인 피고를 만장일치로 정당방위라 결정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접했을 때 저와 마찬가지로 어떤 의구심을 가졌을 거라 생각 합니다.

저자의 본업이 판사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전문분야에 대한 글을 쓸 때 저널리스트가 그 분야를 취재해서 쓴 결과물과, 그 분야의 전문가가 글 쓰는 훈련을 통해 쓴 결과물 중 어떤 것이 더 양질의 산출물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예컨대, 작가가 법원의 일상을 취재해가며 쓴 소설과, 판사가 글 쓰는 법을 익혀 쓴 소설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인데, 소재와 도구 어느 쪽에 더 치중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미스 함무라비'를 읽고 난 후에는 후자의 예 역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법정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검사나 변호사 얘기는 많이 봐 왔어도, 판사 얘기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러진 화살' 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판사의 캐릭터가 부각되는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일상에서 채집한 소재들이 이 소설의 배경이었을 거라 짐작 됩니다. 앞서 얘기한 클리셰가 될 수 있는 배경이 독특한 캐릭터와 만나면서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판사의 이야기이면서, 수 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흙수저를 쥐고 태어난 그들을 위무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 책의 어느 장의 소제목은 영화 대사를 가져다 썼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 배우 강수연님이 사석에서 자주 쓰시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돈이 없어도 지켜야 할 정의라는 자존심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박차오름 같은 판사들이 도로, 항만 같은 사회 간접 자본으로 남아 시민 곁에서 공공의 역할을 해 줄 것 입니다.

 

우리는 권리 위에서 잠만 자지는 않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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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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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이렇다. 글도 잘 못 쓰지만, 여러가지 핑계로 감상문 따위를 잘 적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도서 정가제 탓에, 내 글에 thanks to 가 눌려진다고 알량하나마 적립금이 쌓이지 않은 것도 오래.

그런데, 간만에 스마트폰을 열고, 손가락을 바로 돌려야 할 만큼. 지금 바로 얘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소설을 만났다.

쇼코의 미소에 실린 일곱편 모두 마음을 움직였다.
각각 다른 각도에서,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1번 트랙 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완벽한 구성을 가진 음반을 들은 기분이다.
다른 이야기이면서,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완전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좋다.

이 작가를 만나게 되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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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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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전에 출판사에서 제공된 가제본 의 책을 읽고 쓴 글임을 밝힙니다. )

유홍준 선생의 새 책이 나왔다.

예전 책에 비해 투박해진 구어체 말투, 
치사하고 아니꼬와서 담배를 끊었다는 둥,  평소 농담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와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최고의 기행문 ( 저자 본인은 기행문이 아니라 답사기 라고 이번 책에서 밝히기도 했지만)
은 아닐지언정,  전에 비해 친숙하게 접하고,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만큼 대중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 길어졌다고 해서, 장황하지 않는다. 
장황하지 않지만 , 에둘러 가거나 핵심을 비껴 가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툇마루에 앉아 편하게 옛 이야기 하듯 풀어낸다.

 

만일 경주로 여행 갈 때, 꼭 없어도 될 물건이 있다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다.
글이나 말로 설명 되어지는 것 보다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
아름다운 풍광을 눈앞에 두고, 마음으로 충분히 느끼기 전에 글로 설명 되어 진 텍스트를 보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 한다.

그럼에도, 충분한 길잡이가 된다. 사전에 읽어도 좋겠다.  다녀와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이번 여덟번째 편도 마찬가지다. 
굳이 말하자면,  이번 편도 역시 사전에 읽고 가는 편이 좋겠는데,  그것은 유홍준 선생의 해박한 지식이 지혜로운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장소에 대해서, 네비게이션 대신,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무슨 IC 에 나와서 무슨 마을로 지나가라는 식의 설명은
이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도,  그 어떤 곳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정보들이다.
발품을 들여가며 답사를 한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책에 전해지는 부분들이다.

 

영월, 원주 등 행정 구역상 강원도 지역이 소개 되긴 했지만,
유홍준 선생 답사기 최초로 충청북도 지방이 소개 되었다.
가까운 듯 , 먼 장소이기도 하고,
한 번 쯤 지나가는 말에 귀라도 기울여 이름이라도 들었음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곳들이 많았다.
3부 남한강변의 폐사지에 나오는 폐사지 대부분이 그런 곳이었는데, 당일로도 충분히 왕복이 가능한 곳들이 많았다.

국내 기행문의 ( 저자가 기행문이 아니라고 했음에도, 다시 한 번 기행문이라는 단어를 씀에는
,  김병종의 화첩기행 역시 기행문이자 답사기이기도 하여,  세간의 분류법을 따르고자 했다)
 3대 작품을 꼽자면,
( 이번 책 1부에서 청룡포 답사중에 인용되고 언급되기도 한 )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  김병종 선생의 '화첩기행'
그리고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를 꼽고 싶은데,  세 종류의 책이, 모두 다른 특성이 있어 우열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번 편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성신양회 채석장 이나 단양 시멘트 공장에 대한 답사 일화에서, 눈에 많이 걸린 , 어쩌면 사실과도 많이 다른 부분이 있다.
세계 몇 대 시멘트 사용 국가라는 토건 제일 주의 국가 인게 자랑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느낌은 제쳐 두고라도,
발암 물질인 슬러지와 폐타이어를 섞은 시멘트가 자원 재활용이고 에너지 회수인지에 대해서,  혹시라도 독자들이 오해를 살까 걱정이다.
이 문제는 티비 탐사 보도 프로그램에 여러번 보도 되기도 했고, 특히 일본의 폐자재를 수입하기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창비출판사의 편집부에서 최병성 목사가 지은 저서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을 한 번 읽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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