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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무선)
찰스 디킨스 지음, 김미란 옮김 / B612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원작 그대로 읽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그간 접해본 찰스 디킨스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이거나 아동용 축약본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럴>뿐이었고, 완역으로 접한 일이 있던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아주 잠깐 두세 챕터를 읽었더랬다. 결국 제대로 읽은 건 오늘 책장을 덮은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 유일한
셈이다.
학창시절 책과 거리가 멀었던 친구가 자신이 접해보지 않은 고전을 읽고 싶어했고, 마침 출간된 이 책이 내 눈길을 끌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독서토론모임 첫 책으로 이 작품을 골랐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찰스 디킨스의 작품으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 친구의 바람을 채워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어디 가서 찰스 디킨스의 이 작품은 읽었다고 소근거릴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 전부터 책장 속에서
<위대한 유산>과 <두 도시 이야기>가 대기 중이었다는 건 비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 노쇠한 노인과 아름다운 손녀 넬이 함께 살았다. 둘은 서로를 끔찍이 아꼈지만 그 사랑이
무너져가는 가세를 일으켜 세워주지는 않았다. 노인은 어린 손녀를 상점에 딸린 낡은 집에 놓아두고 밤마다 외출을 했고 그럴수록 그들이 가진 보잘
것 없는 재산은 더욱 줄었다. 결국 상점은 사채업자 퀼프에게 넘어가 버린다. 손녀에게 물려줄 것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우울해하는 노인에게 넬은
집 없는 떠돌이가 되어도 좋으니 행복하게 살자며 떠날 것을 종용한다. 넬의 친구 키트는 자신의 집에 와서 지내라고 하지만 이른 새벽, 넬은
노인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한편 키트는 정직하고 선량한 성격 덕분에 명망 있는 가문을 위해 일하게 된다.
양쪽 모두 잠시 행복해질 찰나 노인의 노름병이 다시 도지고, 키트는 점차 난쟁이 악당 퀼프의 패거리가 세운 음모에 휘말린다. 노인이 넬에게
물려줄 많은 유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넬의 오빠 프레드는 친구 스위블러를 자기 동생과 결혼시킬 계획을 세운다. 허영심 많고 경솔한
스위블러는 좋아하는 숙녀가 있었음에도 넬과 결혼하면 부자가 되리라 기대한다. 자신 외의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는 퀼프는 스위블러를 음모에 쓰일
말로 이용하려 한다. 그래서 스위블러를 자신의 법에 관련된 일을 도맡는 남매 변호사 브래스와 샐리의 사무실에 취직시킨다. 하지만 두 남매의 악한
면을 보고 키트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주게 된다.
노파는 남편이 죽었을 때 어떻게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애통하게 울며 기도를 드렸는지, 또 사랑한 만큼 슬픔도 컸기에 무덤을 처음 찾던 날 어떻게 자신의 심장도 그대로 멈췄으면
하고 바랐는지 넬에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도 조금씩 사라져 이제는 그저 엄숙한 기쁨과 싫지 않은 의무감만이 느껴진다고
했다.그리고 노파는 늙어 가는 자신과 맞지 않는 남편의 젊음에 유감을 표하고, 5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죽은 남편을 그저 아들이나 손자
대하듯 한다며, 그의 힘과 남성미를 칭찬하며 자신의 쇠락과 나약함을 비교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를 자신의 남편이라고 말한 노파는 그가 지금의
그녀가 아닌 과거의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남편이 바로 어제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다음 세상에서의 만남을 얘기했다. 그리고 예전의
자신과 이별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죽었을지도 모를 어여쁜 소녀와 그의 행복을 떠올렸다. (p. 177)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죽을 운명의
소녀는 미끄러지듯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창문에 몸을 기대고 생각에 잠겨 별을 쳐다보았다. 교회 종소리가 마치 죽은 자와는 많은 교감을 나누지만
산 자에게는 그렇지 못해 애석하다는 듯 구슬프게 시간을 알렸고, 낙엽이 바스락거리거나 무덤 위에 자라난 풀들이 흔들릴 뿐 모든 것은 고요했다.
꿈 없이 잠든 자 중 일부는 자신의 안전과 안위를 위해 그것을 꽉 붙잡고 있는 것처럼 교회의 그림자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 그림자 아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린아이들의 무덤 사이에 눕기를 원했다. 일부는 매일 걸어 다니던 교회 마당 아래에 쉬기를 갈망했고, 일부의
무덤에는 석양이 일부의 무덤에는 동틀 무렵의 아침 햇살이 내렸다. 아마도 자유로운 영혼들은 살아 있을 때 친숙했던 벗과 떨어지기 싫었던
모양이다. 떨어져 지내더라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지냈던 포로들처럼(심지어 그들은 풀려나서도 그 좁은 속박의 굴을 그리워한다) 그 친숙한 벗을
여전히 사랑했다. (p. 516)
할아버지와 함께 행복을 위한 길을 떠난 넬은 내내 죽음의 이미지에 이끌린다. 23세로 죽은 청년의 묘비 앞에서 부인인 78세 노파에게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아직 청춘의 꽃을 피우기도 전인 어린 아이들이 꽃잎이 몇 장 남지 않은 이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타인의 늙음과 죽음에 대해 대화하면서도 자기 자신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젊은 나이에 죽은 영혼이 얼마나 밝고 행복한 존재인지, 그들이
긴 세월 동안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강한 애정으로 무덤을 돌봐야 하는 고통을 어떻게 죽음으로 덜 수 있는지(p. 260)'도
생각한다.
밀랍인형을 전시하는 잘리 부인의 일행이 된 것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해 떠오르게 한다. 밀랍인형은 실존했으나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둔 것이다. 살아생전 어떤 삶을 살았건 간에 마지막에는 모두가 죽음을 맞게 됨을 이렇게 또렷하게 드러내는 상징물이 어디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자들을 이용해 돈을 벌어 남아 있는 삶을 부지런히 살아 나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모두가 결국은 죽게 될
것이므로 더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일은 슬픈 일이지만 영원한 고통이 되지도 않으며 우리의 삶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다니는 일상적인 것이고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불은 내게 책과 같단다." 그가
말했다. "읽는 법을 배운 유일한 책. 불은 내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또 그것은 음악이기도 하단다. 나는 어떤 소음 속에서도 불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 타오르는 불은 자신의 함성 속에 또 다른 목소리를 지녔지. 불은 자신의 초상화도 지녔단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석탄에
얼마나 많은 낯선 얼굴과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는지 너는 모를 거다. 불은 나의 추억이기도 하단다. 불은 내 인생 전체를 보여 주거든." (p.
442)
"내 아들도 갓난아기 때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에 장님이었다가 나중에야 좋아진 거죠. 저 여자의 아들은 배울 수가 없었겠죠. 그렇다면 내 아들은 배웠나요? 말씀해 보세요. 어디에 내
아들을 가르칠 선생이나 학교가 있었나요?"
"진정하시오, 부인."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부인 아들은 사지가 멀쩡하잖소."
"그래요." 부인이 외쳤다. "내 아들은
사지가 멀쩡해서 더 쉽게 나쁜 길로 빠졌겠죠. 옳고 그름을 몰라서 저 여자의 아들을 봐준 거라면, 어째서 옳고 그름을 배우지 못한 내 아들은
봐주지 않는 거죠? 당신이 무지해서 내 아들을 처벌하듯이, 신도 말하고 듣는 것에 무지하므로 그녀의 아들도 똑같이 처벌해야 합니다. 당신 같은
신사들이 배움의 유무를 따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소년과 소녀들(남자와 여자들 역시)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처벌을 받는지 아세요? 부디 공정한
사람이 되세요. 그러니 내 아들도 돌려보내 주세요." (p. 452)
일정한 목적지가 없던 두 사람은 어쩌다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흘러 들어간다. 산업화된 도시의 모습은 넬에게, 그리고 찰스
디킨스에게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강물은 탁하고 거리는 불결하여 악취를 풍겼으며, 너무나 시끄럽고 너무나 복잡했다. 아무도 불쌍한 두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들은 '마치 수천 년 전의 사람이 기적같이 환생해 그곳에 보내진 것처럼 혼란스러(p. 434)'웠다. 비까지 내려 더욱
우울한 그곳에서 그들을 도운 것은 도시의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사는 야윈 남자였다. 남자는 두 사람을 자신이 기거하는 한 공장의 용광로 옆에
재워주고, 그들이 떠날 때는 소중하게 아껴왔을 돈을 건넨다. 남자가 그토록 아끼며 사랑한 불은 인간이 어떤 변형을 가하건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
자연의 일부이다. 아마도 그는 도시에 살고 있으나 불로 상징되는 자연을 사랑하는 인물이며, 그래서 이 지옥 같은 도시에서 두 사람이 만난 가장
자애로운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두 사람의 모험은 저자가 산업화에 대해 경멸하며 분노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긋지긋한 도시'보다 더 황폐화된 주변
지역은 초목들이 매연을 뒤집어쓴 채 생기 없이 늘어져 있고, '봄의 희망을 알리는 새싹조차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형편없는
집들이 늘어서 있고, 거기엔 창백한 안색에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이 산다. 분노한 실업자들이 무기를 들고 항거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스러지고, 밤이면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수레에 실려 여기저기로 사라진다. '그곳의 밤은 하늘이 지상에 준 밤과 달리 어떤 평화도
깃들어 있지 않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잠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아, 누가 길거리를 헤매는 저 어린아이에게 이런 밤의 공포를 설명한단
말인가!(p. 449)' 시골 아이들이 학교에서 진리를 배우고 친구들과 뛰노는 동안 도시의 아이들은 옳고 그름조차 배우지 못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삶의 하루하루를 소진한다.
찰스 디킨스는 이미 그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셈이었다. 고도로 산업화된 도시는 자연을 죽이고, 죽어 있는 자연 안에서 인간은
평화로운 잠을 잘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에게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았으며, 자본가들의 책략으로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했으면서도 배우지 못해 얻은 죄는 탕감받지 못하는 현실도 알았다. 저자가 살았던 시대로 부터 1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자연의 많은 부분을 잃고 이제야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불완전한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동등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현실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 그 시절에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울
따름이다.
"참으로 귀엽단 말이오, 영감."
노인에게 윙크를 한 퀼프가 짧은 다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통통한 것이 상냥하고 생기가 넘쳐."
노인이 화를 억누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퀼프는 노인의 불편한 기색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렇게 작고, 아담하고, 아름답고,
어여쁜 데다 파란 정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피부, 앙증맞은 발, 또 어찌나 애교가 넘치는지. 저런, 영감 긴장했구려! 무슨 문제라도 있소?"
(p. 103)
"그럼. 물론이지. 내게 프레드를
데려오게. 그에게 내가 자네들의 친구라고 말하고. 안 될 이유가 없잖아?"
"안 될 이유야 없죠. 분명히. 아니
어쩌면 당신과 내가 친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상당히 많을 거요. 적어도 당신이 미래를 알려 주는 정령이라면 나와 친구가 되는 게 당연하겠죠.
그런데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소."
"그럼 뭔가!" 퀼프가
소리쳤다.
"악마 쪽에 가깝지. 당신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소. 당신이 정령이라면 그건 아마도 악마의 정령이겠지. 미래를 알려주는 정령은 외모부터 확연히 다르다오." 스위블러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덧붙였다. "맹세컨대, 당신은 그런 외모가 아니오." (p. 230)
찰스 디킨스 소설 속 인물들은 종이 인형처럼 평면적이다. 그들의 외모는 내면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악당은 악당 같은 외모를 지니고,
착한 사람은 말끔하거나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다. 또한 악한 사람은 끊임없이 악한 면을 내보이고 선한 사람은 그저 선한 면만을 내보인다.
그들의 그런 면면들 사이에는 자신들의 생각이나 판단, 행동에 대한 후회나 반성, 의혹과 고뇌의 빛이 전혀 없다. 아예 머리 구조가 그렇게 빚어진
듯 악한 내면과 선한 내면을 가질 뿐이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든 인물이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에 보기엔 너무나 단조로워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 소설에서 인간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허영심 많고 경솔하지만 본성이 악하지 않은 스위블러와, 재산가인 퀼프와 딸의
결혼을 주선했으나 지금은 퀼프를 죽도록 미워하는 지니윈 부인이다. 이 두 인물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기괴할 정도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지루할 정도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쉽게 판단할 수 있어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의도에는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다소 슬프게 끝나긴 하지만 권선징악의 결말 역시 그 의도에 상응한다(노인은 노름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손녀를 괴롭게
한다. 그는 그렇게도 사랑하는 손녀를 잃음으로써 그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토록 단순화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성인들보다 어린이들에게 더
설득력을 지녀 동화에 어울린다.
사실 내용이 너무 뻔하고 그리 공감가지 않는 인물들 때문에 살짝 지루해서 처음엔 별 세 개 정도를 주려 했지만, 서평을 쓰며 내용을 되짚어
가다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역시 책을 읽고 난 뒤 서평을 쓰는 건 꼭 해야 할 일이다. 빤해 보이는 내용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
안에 내포된 것들이 드러나 그 가치가 달라진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원작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원작의 묘사가 길어서인지 매끄럽게 풀이되지 않은 듯한 부분이 많았다.
260페이지의 2번째 줄. '한 노인의 손자인 죽은 소년 역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이유로 넬은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할아버지에게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문장의 의미는 이해가 가지만 단어의 쓰임과 연결이 어색하다. '한 노인'과
'할머니'는 동일한 대상이 아닌가? '역시'는 왜 쓰였는가?
326페이지 10번째 줄. '불투명한 유리를 쓱쓱 문지르자 거기에 걸렸던 뒤틀리고 늘어진, 그리고 햇볕에 변색이 되어 해진, 녹색 커튼을
통해 (오래 사용한 탓에 너무 낡은 나머지) 어두침침한 작은 방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의미 파악은 가능하지만 역시나 매끄럽지 않다.
'걸렸던'은 지금은 걸려 있지 않고 과거에 걸려 있던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녹색 커튼을 통해 방이 보이는 걸 보면 여전히 그 자리에 걸려
있다. 괄호 안의 구절의 위치가 '뒤틀리고 늘어진' 다음에 오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원작의 위치가 저기인 듯하다.
448페이지 10번째 줄. '무너진 조각들로 겨우 버티며 땅 위에 위태롭게 여기저기 선 철거된 집들은, 벗겨진 지붕에다 창문도 없이 검게
그을렸지만 아직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철거되었는데 집이 존재할 수가 있나? 철거되었다는 것은 아예 없어졌다는 뜻이 아닌가? 벗겨진
지붕은 지붕이 일부 남아 있다는 의미인가 아예 사라졌다는 의미인가? 아무래도 철거는 허물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한데......
179페이지 밑에서 8번째 줄. '코드린'은 '코틀린'으로.
633페이지 11번째 줄. '"정말 기뻐요.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마르셔네스가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그녀는'이란 표현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