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애럴린 휴즈 엮음, 최주언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1960년대, 세계는 엄청난 호황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전 세계가 휘말렸던 두 차례의 고통스런 전쟁이 끝났으므로 거기서 교훈을 얻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달에 우주선을 발사했으며 먹고 사는 문제는 이제 어떤 것을 먹고 어떤 더 좋은 것을 사용하느냐의 질적인 문제로 발전되었다. 의학 발전은 눈부셨고 기계공학이니 로봇이니 하는 것들로 새로운 미래가 눈에 보였다. 흑인들은 진정한 자유를 쟁취했고 여성들 또한 피임약의 개발과 인식의 전환으로 자유를 얻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도기는 과도기일 뿐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글의 저자들은 그 시대의 생식 가능한 일원으로서 이전 세대와 같이 계속해서 출산과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서 핍박 아닌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나라는 너무나 못 살았던데다 독재 정권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세계 경제 호황에 맞는 문화 발전을 달성할 수 없었다. 선진화한 다른 나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문명을 발전시키고 거기에 숙달된 반면 우리는 너무나 갑작스레 낯선 문화를 접해야 했으므로 그저 남의 나라 일을 보듯 신기하게 여길 뿐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1960년대의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 향상을 달성하게 되었다. 뒤늦게나마 사람들의 문화 인식도 재빨리 앞서나가는 경제발전을 뒤좇아 천천히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간극이 너무나 컸던 탓에 생활상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즘에도 사람들의 인식 수준은 현저히 낮다.
이 책의 편집자 애럴린 휴즈는 자신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음을 안 사람들이 자주 보인 반응을 몇 가지 꼽아 놓았다.
1. "틀림없이 어린 시절에 좋은 기억이 없나 보구나."
2. "넌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었을 거야."
3. "출산이 그렇게 힘든 건 아니야."
4. "아기 소식은 언제 들려줄 거야?"
5. "아이가 있으면 결혼생활이 단단해져."
6. "노후에 누가 너를 돌봐주겠어?"
7. "참 이기적이구나."
8. "아이를 낳지 않은 걸 후회할 거야."
9. "네 씨를, 네 유물을 남기고 싶지 않아?"
이미 60대에 접어든 그녀가 지금 이런 말을 듣고 있지는 않겠고, 그 시절에 많이 들은 말이라고 적어둔 건데 1960년대로부터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사는 나도 몇 가지 듣는 말이 있다. (놀랍다. 저 사람들이 무려 50년 전에 듣던 말을 듣고 있다니!)
내가 애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다들 자신없이 시작하지만 잘하게 된다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을까? 분명 위로를 한답시고 하는 말이겠지만 만일 내가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자질이 없다면 어쩌겠는가. 내가 뉴스에 등장하는 사악한 엄마들 같지는 않겠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라서 아이에게 헌신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 안 낳는 것만 못한 일이다. 원하지도 않는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할 거야"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서 비롯된 불안감 때문에 억지로 낳고, 내 시간(거의 반평생을!!!)을 들여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네가 아이를 낳아 기르면 다를 거란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위로하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통적인 인물 외에 다른 롤모델은 없는 서투른 10대인 나는 (오 제발) 노처녀가 되지 않으려면 어머니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조카 세 명의 이모로서, 그리고 중학교 교사로서의 경험과 친구들의 아이가 딱히 달갑지 않은 행동들을 저지르는 걸 보면서 나는 내 자유에 감사하게 됐다. 그들과 달리, 나는 폭풍과도 같은 한 생명체에게 18년 동안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에 썩 끌리지 않았다. (p. 21)
요새는 난임 부부가 많아서 조금 조심스러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묻는다. "애는 언제 낳을 거니?"
매번 설명하기도 귀찮다, 하지만 답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나는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 생겨서 못 낳는 건데 말만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까봐 신경 쓰이고, 한편으로는 만일 내가 진짜 난임이라 애를 갖고 싶은데도 못 갖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쩌려고 묻는 건가 싶다. 남의 애는 남이 알아서 낳든 말든 내버려 두시길.
'언제'라고 쓰고 나니 책속 사람들은 듣지 않았으나 나는 듣는 말이 생각난다. "지금 당장 낳아도 노산이야. 더 늦기 전에 낳아."
노산인 거 누가 모르나? 그렇게 굳이 나이를 확인시켜 줄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린다고 해도 낳고 싶은 생각도 없다. 결혼이라는 숙제는 간신히 해치웠으나, 출산이라는 숙제는 그냥 추가 선택쯤으로 여기고 패스하겠다.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애가 있으면 이혼할 것도 안 하고 넘어가."
결혼 초반에 험난한 굴곡을 겪었던 친구였던 터라 난 오히려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게 좋은 거야?" 되물었더니 친구는 아이가 부부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덧붙였고, 나는 족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없었다면 친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진작에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행복한 생활을 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친구는 더 이상 아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해 보이는 우리 부부가 부럽다고만 할 뿐.
어떤 여자들은 내게 아이를 낳지 않은 게 현명한 처사라고 말한다. 내 결정은 내가 이기적이고 철없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중에 한두 명은 뻔뻔하게도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참 딱하게도 무익한 삶을 사네요." 그들에게 나는 말한다. 나는 내게 맞는 선택을 했고, 내 삶은 무익과는 거리가 멀다고. 나는 일을 하면서 수백 명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또 아이들에게 사랑받았으며, 내 동물들을 소중히 아낀다. 분명히 말하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이 자식이 있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덜 행복하지 않음을 여러 연구가 보여준다. (p. 125)
사람들이 하는 말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둘만 있으면 나중에 심심해"이다.
우리 부부는 전혀 심심하지 않다. 8년 동안의 연애 시절 그랬듯이 지금도 그냥 둘이 잘 논다. 그리고 서로 간의 이 관계가 지속되리라는 확신도 있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고 많은 것들에 무감각한 상태가 되기라도 한다면 어쩔까 싶은 고민은 조금 있다. 그럴 때야 말로 아이는 연결고리가 될 듯하다. 심심하지 않도록 무언가 꾸준히 찾아나서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부부의 심심함을 해결할 도구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나이가 든 뒤 정말 아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기꺼이 입양을 할 의향도 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남편 역시 입양에 긍정적인 것을 보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적지 않다.
아, 20대 중반 이후 면접관들은 늘 물었다. "결혼은 언제 할 생각입니까?", "출산은 언제쯤 할 생각입니까?"
질문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다. 남이사 결혼을 하던 말던 애를 낳던 말던 뭔 상관이냐. 자기 회사에 들어온 직원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축하하고 환영할 일이지, 그게 처음부터 뽑을 사람을 가려낼 그물망은 아니잖은가? 공백이 생기면 그걸 메울 생각은 하지 않고 공백을 만든 사람을 탓하는 게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미래에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출산율이 낮다고 난리지만 지금도 면접관들은 여자들에게만 결혼계획에 대해, 출산계획에 대해 묻는다. 사람이 귀해져서 자기들 취향대로 입맛대로 고를 수 없을 때가 되면 후회하겠지.
한 번은 친구가 중국인들은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한 사람은 사실 다른 생애에 이미 그것을 이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해줬다. 내가 내 결정을 후회하거나, 한탄스러워하거나, 결정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이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p. 44)
이 책속의 여인들은 모두 자신의 확고한 결정에 따라, 혹은 어쩌다 보니 낳지 않게 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은 엄마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혼자 또는 남편과 함께 아주 활동적이고 재미난 삶을 살고 있으며, 몇몇은 아이들 교육 분야에서 헌신하고 있다. 넓게 보면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엉뚱한 곳이 아니라 올바른 곳에 사용하여 세상이 좀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두 명의 아이에게 열중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지식과 지혜의 샘물을 나눠주는 게 나으니까.
책을 읽으며 나도 활동적인 운동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생각했다. 소개된 대부분의 여자들이 분주히 세계 여행을 다니고 등산을 즐기고 요가를 했으며, 자기 일에 몰두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창조적인 일이라면 그들은 그들만의 창조활동을 지속했던 것이다. 창조활동. 나도 잠시 내 현재 상태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