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 모음 2023.여름 - 57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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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에서 문학 비평을 가르치기는 한다. 하지만 그 과목을 수강하려는 학생은 드물다. 최소 수강생을 채우지 못해 폐강된 적도 있었을 만큼.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비평을 외면하곤 한다. 나도 거기에 포함됐다. 비평 과목 강의 계획서에 철학자들 이름이 줄줄이 있는 걸 보고는 도망쳤다. 가뜩이나 어려운 비평을 더 어렵게 배우게 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비평의 언저리를 맴돌며 몰래 기웃댔다. 비평 읽기만큼 현재 한국 문학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서 종종 문예지를 읽곤 한다. 이번에는 《자음과모음》이었다. 여름호 키워드가 “우리 시대 비평”이라고 하니 더 궁금했다. 비평도 읽고 싶지만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까지 비평의 길로 잘 안내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지난 4년간 《자음과모음》은 매 계절 다른 게스트 에디터를 초청하여 계간지 편집을 진행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지면이라는 공적인 공간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해당 호에서 시작된 대화가 다음 호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되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작은 혁신’을 준비했다고 한다. 대화의 시작점으로써 기능하는 비평을 중심으로 지면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 시대 비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비평 세 편으로 대화의 문을 연다. 현재 비평이라는 장에 문제점은 무엇이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즉, 비평에 관한 비평으로 이번 호를 시작한다. 그다음 문학상 심사평, 한국 소설 읽기 방식의 하나로 문예지 읽기를 소개하는 ‘한국문학 가이드북’ 코너, 시와 소설이 연이어 수록돼 있다. 마지막으로 메타비평과, 현재성을 담아낸 새로운 문학론을 어떻게 쓸 것인지 의논하는 ‘RE: 문학론’ 코너, 두 필자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소’, 도서 리뷰 순서로 구성돼 있다.

끌리는 글을 먼저 골라 읽기보다 목차 순서대로 읽기 좋게 구성된 문예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 비평의 위치를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문학 작품을 독자가 먼저 읽어 보도록 한 뒤, 다시 비평과 문학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고찰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평과 문학론은 어렵다는 인상이 강한데 대담, 인터뷰, 일대일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좀 더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현재라는 맥락성 속에서 비평이 수행돼야 한다는 주장과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들이 빨리 단행본을 내기 위해 신작 소설을 지면에 발표하는 텀이 짧아졌다는 의견도 기억에 남았다. 특히 두 평론가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읽을 때는 타인의 편지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여기서 아쉬운 점을 한 가지 언급하자면, 독자는 글 안에서 다뤄지는 시를 필자들이 언급한 부분으로만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편집 과정에서 시의 해당 대목만이라도 직접 인용으로 조금 더 길게 넣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독자가 언급된 시들을 전부 찾아서 보기는 힘드니 말이다. 메일의 수신인은 그들뿐만 아니라 지금 시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독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고려해 주면 어떨까 싶다.

나는 리뷰를 쓸 때 별로였던 부분을 콕 집어 얘기하는 편은 아니다. 나한테는 맞지 않았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이 책은 이래서 별로였다고 얘기했다가 그 누군가가 혹시나 그 책을 읽지 않게 될까 봐 (공연히)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음과모음》은 단행본이 아닌 계간지이니 앞으로도 이변이 없다면 계속 출간될 것이다. 그래서 《자음과모음》이 더 좋은 문예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웠던 점을 언급했다. 문학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편집위원분들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쓰지 않았을 말이었다. 비평이 좀 더 널리 읽히길 바라는 한 독자의 작은 의견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인 『1990XX』에 대한 심사평을 읽고 궁금해졌다.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까. 출간될 날이 기다려진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하나를 너무 깊이 좋아하는 애는 밉보여. 원래 그래, 세상이. - P71

비밀을 말하고 끈끈해지면 본드로 붙인 것처럼 서로에게 누런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는단 말이다. 보기 싫어도 보이니까 결국 안 만나고. - P176

나는 뭔가를 모르면서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알아야지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모르는 상태에서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지. - P187

‘사랑의 역사’는 그런 ‘역사’를 묻지(bury) 않고 거듭 묻겠다는(ask),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깊이 묻겠다는 다짐으로 쓰이지 않을까 해요. 죽음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애도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그 묻기(bury)를 기록하고 질문하는 일도 사랑이고, 사랑 역시 거듭 묻고 답하기를 통해서만 마주할 수 있는 복잡한 대상이겠고요. - P393

그동안 부정적 감정이라고 여겨온 미움이 ‘그리움’과 결부되었을 때는 이보다 더한 사랑의 표현도 없겠구나 싶었어요. 그리움이라는 정서 속에서 누군가를 내내 미워한다는 건 그에게 ‘이미, 항상, 갑자기, 아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늘, 너무, 계속’ 말을 나누게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시로 쓰고, 시를 읽으면서요. - P403

잘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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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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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인간은 그렇게 생겨 먹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던 제이의 마음을 녹인 것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인간형 안드로이드 큔이다. 비단 외양뿐만이 아니다. 안드로이드는 사용자의 감정을 학습하게 되어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서는 사용자에게 맞춤한 안드로이드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큔도 제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제이를 면밀히 관찰해서 그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큔의 그런 행동이 제이를 변화시킨다.


안드로이드는 사용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안드로이드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관계라는 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다듬어 만들어 낸 모습 이면에 있는 타인의 실제를 이해하기 위해 정성과 노력을 쏟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타인이 자기를 이해해 주길 갈구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노력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모두가 원하는 걸 모두가 하지 않는다.


그 역할을 안드로이드가 대신한다. 안드로이드는 사용자를 위해 존재하고, 사용자를 사랑한다. 사용자가 어떤 사람이든. 사용자는 자기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주는 안드로이드에게 자기의 마음도 내준다. 큔과 제이가 그랬듯이.


당연하게도 인간과 똑 닮은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반대하는 세력도 등장한다. “Only Human Beings Can Do”, OHBCD(오비시디). 단체 이름에도 드러나 있듯이 그들은 인간 우월주의를 기반으로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향한 테러를 계획하고 시행한다. 개발자들은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공격할 수 없게 프로그래밍했다. 그러니 인간에 비해 안드로이드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안드로이드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폭력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오비시디는 무시한다. 그들은 안드로이드가 느끼는 감정을 그저 설계된 것으로 여기면서 자기들의 혐오 범죄를 정당화한다. 안드로이드가 주체적으로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두려우니까, 그건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스스로 기만함으로써 마음을 갖는 일을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기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안드로이드와 깊은 감정을 공유하므로 안드로이드를 향한 폭력은 결국 인간을 향한 폭력이 된다. 폭력을 당한 이후 안드로이드의 기억은 인위적으로 지워줄 수 있지만 인간은 안드로이드와 함께했던 순간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큔과 제이는 세상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다. 큔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쩌다 두 선이 만나게 되어 발생한 아름다운 섬광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자기의 선을 상대의 선에 맞추기 위해, 그러니까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큔은 노력한다. 제이는 큔의 노력에 화답하여 큔을 그저 고철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용자와 피사용자라는 위계에서 벗어나 그 무엇보다 빛나는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온 우주가 이해받기 위해선 우주만큼 커다란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죠. - P15

"사람한텐 이름이 무척 중요하거든. 이름을 붙여준 건 쉽게 버리지도 못한다고." - P51

큔은 안드로이드니까. 우리는 이 정도 거리가 맞아. 너도 고장날지 모르니까. 그러면 나는 또 고장날 거라고. - P95

그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사랑을 멈추는 것 역시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마치 내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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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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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좋아하는데,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하니 재밌을 것 같습니다 김규림 작가님 첫 책 기대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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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그림 읽기 - 고요히 치열했던
이가은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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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은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시대보다 그 시대에 관한 글을 더 잘 쓸 수 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일제강점기를 산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는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당대의 사회상이 잘 반영된 것처럼 말이다. 화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림에는 화가의 경험과 마음이 녹아 있다. 그 경험과 마음은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림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는 고독해 보이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경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복판에 있던 당시 미국인들은 호퍼의 그림에 외로움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퍼는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직접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외롭고 불안하고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자기의 감정을 작품에 투영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시기를 산 사람들과 다른 마음으로 작품과 대면했기 때문에 작품을 다른 시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데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거나, 작가의 생애나 말을 살피거나, 독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거나, 작품 그 자체만 놓고 볼 수도 있다. 이 네 가지 방법의 하나만 고집하지 않고 몇 가지 방법을 잘 얽어 해석한다면 작품의 의미는 더욱 풍성해진다. 『사적인 그림 읽기』가 바로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그림을 읽는 법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림에 담긴 사회상이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기도 하고, 작가의 삶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작품에 투영하기도 한다.


나는 저자가 한 명의 독자로서 어떤 그림을 읽고 해석하여 쓴 글을 읽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저자가 읽은 그림을 저자와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독자이기도 하다. 그림의 사적(史的)인 이야기는 내 멋대로 바꿀 수 없지만, 저자의 사적(私的)인 이야기는 저자 고유의 것이며 나는 나만의 사적(私的)인 이야기를 토대로 그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에 담긴 역사와 자기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맞닿아 이어질 때 우리는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책은 앞으로 주고받게 될 수많은 이야기의 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자전거가 선사한 물리적 해방감은 여성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더 큰 정치적·경제적 해방까지 열망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은 그 반대로, 오랫동안 노잼 상태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의 해방 욕구가 이미 포화점에 도달해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기에 자전거라는 물리적 수단이 등장했을 때 그녀들이 누구보다 더 열렬한 수용자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 P45

누군가 고독을 누리는 나에게 "넌 왜 이렇게 고립되어 있어? 그러니까 네가 외롭지"라고 충고한다면, 고독을 그저 부정적으로만 취급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할 것이다. 호퍼 그림의 인물 중 그런 억울함을 가진 이들이 있지 않을까? 그저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인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조용히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100년 가까이 ‘우울한 뉴요커’로 기억된다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나와 같은 내향인을 위해, 내 마음대로 호퍼를 읽는 지금의 시각에 그냥 머무르고 싶다. - P56

호퍼의 모든 작품이 대개 외롭고 쓸쓸하게만 해석되어온 것은 우리가 그 고요한 외양으로부터 외로움 외에 다른 어떤 정서를 읽을 수 있는지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P63

고대인의 인식에는 신체의 뚜렷한 선악 구도가 존재했다. 먼저는 ‘날씬함과 뚱뚱함’,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구도였다. 전자의 기준에 따라, 남자든 여자든 탄탄하고 좋은 몸을 가져야 선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남성의 몸이 선한 몸인 반면 여성의 몸은 선악이 혼재된 몸이었다. 남성이 뚱뚱한 것도 분명 악한 일이지만, 여성의 뚱뚱함은 더 거센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의 몸으로 뚱뚱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악하단 말인가? - P137

혼자의 생각으로 끝났다면 무로 사라졌을 말들이 기록되는 순간, 유형의 실체가 되어 팽생 만나지 못했을 누군가에게 닿는다. 시공간을 초월해 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언제든 새로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기록이 지닌 신비함이다. 다만 기록의 주체도, 대화를 시작하는 주체도 나다. 내가 표현한 내가 영원히 남을 것이고, 내가 표현한 나로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고 대할 것이다. 고로 이 대화의 진정성은 나에게 달려 있다. - P171

영국의 풍경은 갈수록 컨스터블의 묘사와 멀어졌지만, 그럴수록 영국인들은 그의 그림을 ‘가장 영국적인 풍경’으로 칭송하며 좋아했다. 20세기가 되어 컨스터블은 어느새 ‘가장 영국적인 화가’가 되었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나와 컨스터블,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일까? - P271

그래서 생각했다. 나 역시, 과거가 주는 힘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정도만큼만 과거를 그리워하겠다고.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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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원칙에 따른 도시설계
카밀로 지테 지음, 김기준 옮김 / 미진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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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산책. 걷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와는 가까운 말이 아니다. 그래도 태어난 이래 쭉 도시에 거주하면서 도시 산책을 해 본 적이 있긴 하다. 아마 친구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카페에 갔다가 북촌을 여기저기 걸었던 게 제일 최근일 것이다. (물론 내가 먼저 산책하자고 얘기하지 않았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산책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북촌은 내가 봐도 산책하기에 좋은 동네다.


그에 반해 도심 한복판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 목적지로 가는 길일 뿐이다. 강남 큰길가로 산책하러 간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도시 지도를 찾아보니 길이 직선으로 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도시일수록 더 네모반듯했다. 비슷한 모양의 길에 비슷한 건물들이 들어선 모양이다. 닮은 동네가 너무 많으니 뻔하고 특색 없어서 재미없는 게 아닐까 싶다.


산업화에 따라 도시화가 진행되던 19세기 유럽도 이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었던 듯하다. 카밀로 지테가 도시의 진부한 현대성이 우리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공격하느냐며 개탄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예술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추도록 도시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적 원칙에 따른 도시설계』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 설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찰한다. 광장과 맞닿아 있는 건물과 기념비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어디를 얼마나 비워야 하는지, 광장과 도로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등 광장과 도시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다.


저자는 오래된 도시를 예시로 들면서 당시 도시 계획을 비판한다. 옛것을 밀어내고 무조건 현대식으로 바꿈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불규칙성을 중요시한다. 규칙적으로 조성된 도시 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러움을 느끼지는 못하며, 방향을 헷갈리기 쉽고, 굴곡진 도로로 인해 바람도 약해지는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불규칙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광화문역 부근에서 길을 잃을 뻔했던 일, 도로가 일자로 넓고 길게 뻗어 있는 신도시에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건물 사이에서 간혹 맞게 되는 강한 도시풍 등. 다양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 유럽을 기준으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도시 설계에 관한 지테의 철학은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현대성을 운운하며 버린 것들이 정말 버릴 만한 것이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화가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인물의 얼굴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중립적인 배경을 선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자그만 동상의 자리도 늘 거대한 광장에서만 찾으려고 하며 결국 그 동상의 효과를 저해하고 마는 것이다. - P35

사방으로 노출된 건물은 마치 장식 접시에 진열된 케이크처럼 영원히 홀로 남겨진다. 주변과 상생하는 유기적인 고착의 가능성이 태생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극장 무대와 유사하게 광장에서 건물이 물러서 있는 공간감을 성공적으로 부여하고 제대로 된 원근 효과를 자아내고자 한다면, 그 환경에서 파사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건물을 배치해야 한다. - P47

무더운 여름날에도 인파가 정원이 아닌 가로수길이나 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은 산발적인 나무 식재 방식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35

우리가 정해진 운명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지 않고, 가능한 한 도시시설의 예술적 가치를 최대한 살리고 싶다면 아직 보존할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 P136

현대적인 생활과 현대적인 건축기술은 더 이상 오래된 도시시설을 충실하게 모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는 헛된 환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부정해서는 안 되는 지식이다. 우리는 옛 거장의 훌륭한 업적들을 무심코 복제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오직 우리가 이러한 성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를 현대적 상황에 의미 있게 적용해야만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44

도시의 진부한 현대성이 우리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공격하는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것이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옛 도시들의 행복한 거주자는 그곳을 떠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반면, 우리가 일 년 동안의 도시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적어도 몇 주 동안은 자연으로 피신하려 하는 가장 깊은 내면적 이유일 것이다. - P178

고독한 나무지만 멀리서도 여러 거리를 통해 바라볼 수 있고 풍경의 수준을 높이는 한 그루의 야자수는 로마가 남부 도시임을 각인시킨다. 상상 속에서는 이 하나의 나무 기둥이 야자수 숲 전체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리 사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이 야자수 한 그루가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면 도시 풍경의 효과는 다양성 측면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된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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