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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원칙에 따른 도시설계
카밀로 지테 지음, 김기준 옮김 / 미진사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도시 산책. 걷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와는 가까운 말이 아니다. 그래도 태어난 이래 쭉 도시에 거주하면서 도시
산책을 해 본 적이 있긴 하다. 아마 친구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카페에 갔다가 북촌을 여기저기
걸었던 게 제일 최근일 것이다. (물론 내가 먼저 산책하자고 얘기하지 않았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산책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북촌은 내가 봐도
산책하기에 좋은 동네다.
그에 반해 도심 한복판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
목적지로 가는 길일 뿐이다. 강남 큰길가로 산책하러 간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도시 지도를 찾아보니 길이 직선으로 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도시일수록
더 네모반듯했다. 비슷한 모양의 길에 비슷한 건물들이 들어선 모양이다.
닮은 동네가 너무 많으니 뻔하고 특색 없어서 재미없는 게 아닐까 싶다.
산업화에 따라 도시화가 진행되던 19세기 유럽도 이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었던 듯하다. 카밀로 지테가 “도시의 진부한 현대성이
우리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공격”하느냐며 개탄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예술성과 실용성을 모두 갖추도록 도시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적
원칙에 따른 도시설계』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 설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찰한다. 광장과 맞닿아 있는 건물과 기념비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어디를 얼마나 비워야 하는지, 광장과
도로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등 광장과 도시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다.
저자는 오래된 도시를 예시로 들면서 당시 도시 계획을 비판한다. 옛것을
밀어내고 무조건 현대식으로 바꿈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불규칙성’을 중요시한다. 규칙적으로
조성된 도시 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러움을 느끼지는 못하며, 방향을 헷갈리기 쉽고, 굴곡진 도로로 인해 바람도 약해지는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불규칙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광화문역 부근에서 길을 잃을 뻔했던 일, 도로가 일자로 넓고 길게
뻗어 있는 신도시에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건물 사이에서 간혹 맞게 되는 강한
도시풍 등. 다양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 유럽을 기준으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도시 설계에 관한 지테의 철학은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현대성을 운운하며 버린 것들이 정말 버릴
만한 것이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화가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인물의 얼굴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중립적인 배경을 선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자그만 동상의 자리도 늘 거대한 광장에서만 찾으려고 하며 결국 그 동상의 효과를 저해하고 마는 것이다. - P35
사방으로 노출된 건물은 마치 장식 접시에 진열된 케이크처럼 영원히 홀로 남겨진다. 주변과 상생하는 유기적인 고착의 가능성이 태생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극장 무대와 유사하게 광장에서 건물이 물러서 있는 공간감을 성공적으로 부여하고 제대로 된 원근 효과를 자아내고자 한다면, 그 환경에서 파사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건물을 배치해야 한다. - P47
무더운 여름날에도 인파가 정원이 아닌 가로수길이나 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은 산발적인 나무 식재 방식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35
우리가 정해진 운명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지 않고, 가능한 한 도시시설의 예술적 가치를 최대한 살리고 싶다면 아직 보존할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 P136
현대적인 생활과 현대적인 건축기술은 더 이상 오래된 도시시설을 충실하게 모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는 헛된 환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부정해서는 안 되는 지식이다. 우리는 옛 거장의 훌륭한 업적들을 무심코 복제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오직 우리가 이러한 성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를 현대적 상황에 의미 있게 적용해야만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44
도시의 진부한 현대성이 우리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공격하는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것이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옛 도시들의 행복한 거주자는 그곳을 떠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반면, 우리가 일 년 동안의 도시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적어도 몇 주 동안은 자연으로 피신하려 하는 가장 깊은 내면적 이유일 것이다. - P178
고독한 나무지만 멀리서도 여러 거리를 통해 바라볼 수 있고 풍경의 수준을 높이는 한 그루의 야자수는 로마가 남부 도시임을 각인시킨다. 상상 속에서는 이 하나의 나무 기둥이 야자수 숲 전체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리 사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이 야자수 한 그루가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면 도시 풍경의 효과는 다양성 측면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된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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