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 모음 2023.여름 - 57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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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에서 문학 비평을 가르치기는 한다. 하지만 그 과목을 수강하려는 학생은 드물다. 최소 수강생을 채우지 못해 폐강된 적도 있었을 만큼.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비평을 외면하곤 한다. 나도 거기에 포함됐다. 비평 과목 강의 계획서에 철학자들 이름이 줄줄이 있는 걸 보고는 도망쳤다. 가뜩이나 어려운 비평을 더 어렵게 배우게 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비평의 언저리를 맴돌며 몰래 기웃댔다. 비평 읽기만큼 현재 한국 문학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서 종종 문예지를 읽곤 한다. 이번에는 《자음과모음》이었다. 여름호 키워드가 “우리 시대 비평”이라고 하니 더 궁금했다. 비평도 읽고 싶지만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까지 비평의 길로 잘 안내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지난 4년간 《자음과모음》은 매 계절 다른 게스트 에디터를 초청하여 계간지 편집을 진행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지면이라는 공적인 공간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해당 호에서 시작된 대화가 다음 호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되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작은 혁신’을 준비했다고 한다. 대화의 시작점으로써 기능하는 비평을 중심으로 지면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 시대 비평”이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비평 세 편으로 대화의 문을 연다. 현재 비평이라는 장에 문제점은 무엇이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즉, 비평에 관한 비평으로 이번 호를 시작한다. 그다음 문학상 심사평, 한국 소설 읽기 방식의 하나로 문예지 읽기를 소개하는 ‘한국문학 가이드북’ 코너, 시와 소설이 연이어 수록돼 있다. 마지막으로 메타비평과, 현재성을 담아낸 새로운 문학론을 어떻게 쓸 것인지 의논하는 ‘RE: 문학론’ 코너, 두 필자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소’, 도서 리뷰 순서로 구성돼 있다.

끌리는 글을 먼저 골라 읽기보다 목차 순서대로 읽기 좋게 구성된 문예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 비평의 위치를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문학 작품을 독자가 먼저 읽어 보도록 한 뒤, 다시 비평과 문학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고찰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평과 문학론은 어렵다는 인상이 강한데 대담, 인터뷰, 일대일 대화라는 형식을 통해 좀 더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현재라는 맥락성 속에서 비평이 수행돼야 한다는 주장과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들이 빨리 단행본을 내기 위해 신작 소설을 지면에 발표하는 텀이 짧아졌다는 의견도 기억에 남았다. 특히 두 평론가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읽을 때는 타인의 편지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여기서 아쉬운 점을 한 가지 언급하자면, 독자는 글 안에서 다뤄지는 시를 필자들이 언급한 부분으로만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편집 과정에서 시의 해당 대목만이라도 직접 인용으로 조금 더 길게 넣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독자가 언급된 시들을 전부 찾아서 보기는 힘드니 말이다. 메일의 수신인은 그들뿐만 아니라 지금 시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독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고려해 주면 어떨까 싶다.

나는 리뷰를 쓸 때 별로였던 부분을 콕 집어 얘기하는 편은 아니다. 나한테는 맞지 않았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이 책은 이래서 별로였다고 얘기했다가 그 누군가가 혹시나 그 책을 읽지 않게 될까 봐 (공연히)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음과모음》은 단행본이 아닌 계간지이니 앞으로도 이변이 없다면 계속 출간될 것이다. 그래서 《자음과모음》이 더 좋은 문예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웠던 점을 언급했다. 문학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편집위원분들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쓰지 않았을 말이었다. 비평이 좀 더 널리 읽히길 바라는 한 독자의 작은 의견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인 『1990XX』에 대한 심사평을 읽고 궁금해졌다.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까. 출간될 날이 기다려진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하나를 너무 깊이 좋아하는 애는 밉보여. 원래 그래, 세상이. - P71

비밀을 말하고 끈끈해지면 본드로 붙인 것처럼 서로에게 누런 자국이 지저분하게 남는단 말이다. 보기 싫어도 보이니까 결국 안 만나고. - P176

나는 뭔가를 모르면서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알아야지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모르는 상태에서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지. - P187

‘사랑의 역사’는 그런 ‘역사’를 묻지(bury) 않고 거듭 묻겠다는(ask),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깊이 묻겠다는 다짐으로 쓰이지 않을까 해요. 죽음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애도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그 묻기(bury)를 기록하고 질문하는 일도 사랑이고, 사랑 역시 거듭 묻고 답하기를 통해서만 마주할 수 있는 복잡한 대상이겠고요. - P393

그동안 부정적 감정이라고 여겨온 미움이 ‘그리움’과 결부되었을 때는 이보다 더한 사랑의 표현도 없겠구나 싶었어요. 그리움이라는 정서 속에서 누군가를 내내 미워한다는 건 그에게 ‘이미, 항상, 갑자기, 아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늘, 너무, 계속’ 말을 나누게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시로 쓰고, 시를 읽으면서요. - P403

잘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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