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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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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그 욕망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은 걸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진보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든 후퇴하게 했든지 간에 과거가 되어 버린 욕망의 발자국들은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에서 죽은 이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와 아직 죽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모두 과거 세계에서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잔소리는 더이상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말들 뿐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무언가를 욕망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조금씩 변해왔듯이, 미래에도 인간은 욕망의 대상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욕망의 본질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멈추면」은 1973년 스카이랩 우주정거장 파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소행성 개척, 행성 간 이동이라는 미래적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아니, 어쩌면 과학적으로는 과거이지만 과거라고만 할 수 없는 일, 내가 너무 어려서 뉴스를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잊었던 일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알 수 없는 먼 미래에 정말로 이 소설과 같이 소행성을 개척하고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왔을 때는 권력자의 야욕으로 인해 노동자가 짓밟히는 게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 있길, 그보다는 그때가 오기 전에 그런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품고 끝까지 이 작품을 읽었다.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와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도 타인을 해하는 욕망의 실현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사회 혹은 도덕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는 욕망의 실현이 바로 악(惡)이 탄생하는 지점이 아닐까.


작가는 인간의 욕망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로봇의 욕망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칫하면 스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바벨의 도서관」 등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욕망 또한 인간의 욕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명령어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특성에서 비롯된 욕망은 역설적으로 인간 욕망의 위험성을 더욱 부각하는 듯도 하다.


반대로 인간의 어떤 욕망은 악을 일으키는 욕망에 반하여 생겨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인 「우리가 멈추면」의 세경과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의 하나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배제하는 욕망이 아닌 타인에게 공감하고 그와 함께하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물론 악을 만들어내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계속 등장하고 역사를 이어나가는 한 먼 미래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의 욕망은 부디 다정한 욕망들이길, 당신에게 다정한 우주가 되길.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유진, 우리 목소리가 정말 저 먼 곳까지 닿았을까? 네 마음이 정말 전해졌을까?" (「우리가 멈추면」) - P126

"음…… 당신에게 허락된 단어들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신은 허락된 단어만 가질 수 있잖아요. 단어는 곧 힘이니까."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 P152

인간은 끊임없이 적을 생산해 내는 존재로, 스카이파이어가 아무리 많은 적을 제거해도 아군은 언제나 새로운 적을 만들어냈다. 아군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아군 또한 함꼐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스카이파이어가 내린 결론이었다. (「바벨의 도서관」) - P203

"어떤 기억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인격의 일부가 돼요. 그 사람의 본질을 송두리째 바꿔버려요. 그 경험을 이해해 줄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런 기억들은 일종의 암호 키와 같아요. 오직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만이 서로의 헝클어진 내면을 해석할 수있죠."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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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의 생존법 문학동네 청소년 66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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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면 입학식 때 선서를 한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장학금도 준다. 입학 이후 성적이 얼마나 떨어지든지 상관없이 계속 준다. 이 소설에서 선서 얘기는 나오지만 장학금 얘기는 없다. 이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내가 중학교 배치고사 전교 1등을 해봤기 때문이다. 읽다 보니 준호와 내 이야기를 계속 비교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1등도 해본 적 없는데 전교 1등이라니. 준호와 다르게 나는 선생님들의 관심까지 받았었다. 내게 붙은 1등으로 들어온 애라는 수식어가 많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걸 지키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자리였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그저 내 자리를 찾아간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할머니만이 전교 1등이 내 자리라고 믿으셨었다. 내가 전교 1등 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었다. 다신 올라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친구도 심지어 엄마도 알았지만, 할머니만 모르셨었다. 할머니에게 나는 대학교 오기 전까지 전교 1등이었다. 준호와 건우의 엄마처럼 말이다.


근데 왜 내 자리가 성적으로 결정돼야 했던 걸까. 읽다 보니 그런 의문점이 떠올랐다.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 걷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쫓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성적에 얽매여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준호의 친구 유빈에게 유난히 눈길이 갔다. 한국 사회가 말하는 잘 사는 것과 유빈이 말하는 그것은 다르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미래를 꿈꾸고,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자그마한 것들을 나누며 사는 삶.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좋은 성적-좋은 대학-좋은 직장 외 다른 경로로는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심지어 좋은 성적도 부모님의 학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니 유빈이 말마따나 룰이 공정해야하는데 그렇지도 못 하다. 그렇다고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지만, 지금의 10대 청소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걷겠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해줄 듯하다. 이 또한 참 아이러니하다.


준호와 건우와 유빈과 보나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림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정글이고, 나는 정글에 내던져진 새끼 사자라는 걸.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자도 아니라는 걸. 평생 도망만 다니는 얼룩말이라면 모를까. - P29

우리 엄마도 내가 전교 1등이라고 말하고 다녀. 쪽팔려 뒈지겠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딱 한 번, 그때 공부 잘하는 애들 영어 캠프 가서 다 빠졌을 땐데. - P73

모르겠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것처럼 더! 더! 더! 잘하라고, 죽을 때까지 ‘노오력’해서 최고가 되라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행복해질 일은 없지 않을까? - P82

"하긴, 그러고 보면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경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 같아. 인간의 욕망이 어쩔 수 없이 경쟁을 만들어 내잖아."
내 말에 유빈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 그렇지만 룰이 공정해야지. 축구 경기처럼." - P96

"각자 잘 사는 게 뭔데?"
"음…… 그냥, 지금처럼 사는 거 아닐까? 길고양이 밥 챙겨 주고, 친구랑 맛있는 감자빵 나눠 먹고, 뭐 그러는 거."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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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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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을 끌며 걷기 또는 춤추기, 카드 섞기, 속임수, 조직 개편, 개각. 모두 ‘shuffle’이라는 단어 하나가 지니고 있는 의미이다. 주인공 카니는 이러한 할렘이라는 셔플 속에 내던져졌다.


내가 가끔 돈은 없어도,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아.”


책을 읽기 전 책 뒷면에 쓰여 있는 이 문장은 내 머릿속에 질문 몇 개를 불러일으켰다. 할렘에서 폭력배, 경찰, 은행가, 백인 재벌가로부터의 생존기라는데, 그렇다면 주인공은 범죄가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곳에서 돈도 없이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인 건가.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카니는 그저 평범한 가구 판매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 사촌 프레디가 가져오는 물건을 처리해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점 때문에 카니가 당한 일들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너까지 곤란하게 만들려던 건 아니었어.”


어렸을 적부터 카니는 프레디의 일에 휘말렸고, 프레디는 늘 카니에게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저 멘트가 나왔을 때에야 이는 단순히 프레디의 사과가 아니라 세상이 카니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장임을 깨달았다.


할렘은 경고장으로 가득 한 세계였다. 고개만 돌려도 바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세상이었고, 카니는 프레디를 봄으로써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카니가 할렘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그리고 해야 했던 일들은.


아르노위츠라는 전자제품 수리상은 소설의 도입부와 결말부에만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결말부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카니가 아르노위츠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의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었으니 말이다. 과거 인연과의 재회가 불발되면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카니의 바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책장을 덮고 나니 책을 읽기 전 마주했던 문장과 다시 조우했다. 참 역설적으로 보였다. 똑같은 말이 돈을 벌려면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말로 바뀐 채 나를 다시 맞이했다.


흑인들끼리도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할렘이라지만, 나는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고 싶다. 카니의 상대는 약자가 아닌 힘을 가진 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카니와 그의 조력자 페퍼는 인종 차별로 인해 일어난 폭동 참여를 독려하는 전단지를 버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도시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전부 다 여기저기로 보냈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 P197

사진은 그의 가족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세 개의 가느다란 실루엣만 있는 밝은 갈색 사각형 상태를 유지했다.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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