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을 끌며 걷기 또는 춤추기, 카드 섞기, 속임수, 조직 개편, 개각. 모두 ‘shuffle’이라는 단어 하나가 지니고 있는 의미이다. 주인공 카니는 이러한 할렘이라는 셔플 속에 내던져졌다.
“내가 가끔 돈은 없어도,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아.”
책을 읽기 전
책 뒷면에 쓰여 있는 이 문장은 내 머릿속에 질문 몇 개를 불러일으켰다. 할렘에서 폭력배, 경찰, 은행가, 백인
재벌가로부터의 생존기라는데, 그렇다면 주인공은 범죄가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곳에서 돈도 없이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인 건가.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카니는 그저 평범한
가구 판매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끔 사촌 프레디가 가져오는 물건을 처리해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점 때문에 카니가 당한 일들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너까지 곤란하게 만들려던 건 아니었어.”
어렸을 적부터
카니는 프레디의 일에 휘말렸고, 프레디는 늘 카니에게 위와 같은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저 멘트가 나왔을 때에야 이는 단순히 프레디의 사과가 아니라 세상이 카니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장임을
깨달았다.
할렘은 경고장으로
가득 한 세계였다. 고개만 돌려도 바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세상이었고, 카니는 프레디를 봄으로써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니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카니가 할렘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그리고 해야 했던 일들은.
아르노위츠라는
전자제품 수리상은 소설의 도입부와 결말부에만 등장한다. 정확히 말하면 결말부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카니가 아르노위츠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의 가게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었으니 말이다. 과거 인연과의 재회가 불발되면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카니의 바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책장을 덮고 나니
책을 읽기 전 마주했던 문장과 다시 조우했다. 참 역설적으로 보였다.
똑같은 말이 돈을 벌려면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말로 바뀐 채 나를 다시 맞이했다.
흑인들끼리도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할렘이라지만, 나는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고 싶다. 카니의 상대는 약자가 아닌 힘을 가진 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카니와
그의 조력자 페퍼는 인종 차별로 인해 일어난 폭동 참여를 독려하는 전단지를 버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도시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전부 다 여기저기로 보냈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 P197
사진은 그의 가족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세 개의 가느다란 실루엣만 있는 밝은 갈색 사각형 상태를 유지했다.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 - P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