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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평점 :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그러니 바꿔야 한다고 누군가 혼자 떠든다고
해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지속적인 외침에 또 다른 ‘누군가’들이 함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 아르테미시아』는 먼저 여성 혐오를 좌시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뒤에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어떤 상황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르테미시아에 관한 연구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바로크 시기 유럽 페미니즘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아르테미시아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기 이탈리아와 유럽에서는 여성 혐오와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론이 맞섰었다. 여성들의 권리 의식은
점점 높아져 갔고, 남성을 뛰어넘는 여성들도 출현했다.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누려왔던 권력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더 극단적인 여성 혐오적
발언을 쏟아내거나, 여성을 추켜세우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를 포함한 여성들은 계속해서, 어떻게 해서든 이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르테미시아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화가이다. 알려진 대로 성폭행 피해자이기도 했다.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의도로 성폭행 사건이 재판에 회부됨으로써 자신의 피해 사실이 사회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아르테미시아의 작품 활동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조롱했다.
아르테미시아는 카라바조의
뒤를 잇는 것을 넘어서고자 했다는 측면에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화가이다. 또한 작품을 통해 반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담아냈기에 페미니즘사에서도 비중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작품의 형식과 내용 측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그것도 그냥 잡은 것이 아니라 매우 뛰어나게
말이다. 그렇기에 미술에 관심이 있지 않더라도 페미니즘을 더 공부하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읽어봐야 할 책이다.
400여 년 전 유럽 남성들이 펼쳤던 말도 안 되는 여성 혐오적 논리를 지금 대한민국에서 다시 듣는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 시절 그곳에 아르테미시아와 여성들이 있었고,
지금 이곳에 또 다른 여성들이 아르테미시아의 뒤를 잇고 있다. 여기, 여전히 존재하는 아르테미시아의 정신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갈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초기 근대 유럽의 역사 형성을 도왔다면, 시각예술 역시 그러하다. 그림은 여성을 깎아내리는 관념과 믿음 형성에 일조했다. 판화와 회화는 유럽 전역에 여성에 대한 위험스러운 여성 혐오 생각을 전파했고—악마적인 본성에 죽음을 부르는 유혹적 매력—악명 높은 마녀사냥에 기름을 끼얹기도 했다. 시각적 이미지는 물론 여성에 대한 온순하고 긍정적인 개념도 제시했지만, 아르테미시아 등장 이전에는 뚜렷한 여성 관점에서 젠더 관계에 대한 그림을 보여준 일이 드물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 점에서 홀로 우뚝 서 있으며, 그 어떤 근대 이전 예술가들보다도 끊임없이 가부장적 가치에 이의를 제기하며 도전했다. - P10
그는 남성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었는데, 아르테미시아의 여주인공이 아무리 전복적인 행동을 보여도 남성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칭송할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르테미시아는 마음껏 공개적으로 남성 모델을 패러디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암호로 이야기하며 다른 측면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한 암호 소통은 남성이 페미니스트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 P59
도덕적으로 교훈을 주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수산나와 장로들의 이야기는 이즈음에 와서는 남성 미술 후원자와 관람자들이 관음증 취향을 발산할 기회로 변질되어 있었다. 죄 없는 수산나가 죽음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정숙함을 증명한다는 이야기의 논점은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 P77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처단한 것은 자신의 민족 공동체를 대신한 정치 행위이지만, 아르테미시아 그림에서의 공동체는 여성이다. 행위의 주체가 남성을 제압하는 강인한 육체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남성 권력에 맞선 여성 저항을 상징하는 은유 단계로 올라선다. - P146
디트로이트 「유디트」에서도 승리의 순간은 아주 짧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업적을 이룬 여성의 모습은 시간 속에 영구히 남겨졌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이렇게 전투를 또다른 개념의 차원으로 가져간다. 탁월하게 강인한 여성이 탁월하게 강인한 남성을 전복시키며 남성적인 세계에 끊임없이 보여준다. 아르테미시아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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