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가능성 - 나에게로 돌아오는 그림 독서 여정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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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작가는 20여 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 퇴사라는 선택지를 집어들었다. 작가는 어떤 문제를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에 따라 나누고 판단하는 글 말고 답을 정해놓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생각이 피어날 수 있게 하는 글을 쓰는 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로 한 것이다.


『내일의 가능성』은 그가 이런 선택을 한 뒤 낸 첫 책이다. 작가는 성장과, 성장 과정 중의 추억과, 성장 과정 중의 아픔과, 그럼에도 결국 성장해내고야 마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책과 미술이 작가 고유의 이야기와 조화롭게 뒤섞이면서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성장 서사가 탄생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가 좋아하는 책과 미술이 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책과 미술 작품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야기가 중첩된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나의 이야기도 슬며시 중첩시켜 보았다. 텍스트에 새로운 층위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추가되어 갔다.


가령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을 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하루키가 천재 같이 느껴져 감탄했었고,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문학도의 길을 걷기로 했다. 작가는 그보다는 기자로서 하루키가 ‘기자와 작가의 차이’에 관해 쓴 부분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글쓰기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연결했다. 작가가 주목한 대목은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하루키의 에세이에 새로운 층위를 부여했었고, 작가는 자신의 시각에서 또 다른 층위를 부여했으며, 하루키의 책에 관해 이야기한 작가의 글에 나는 또 새로운 층위를 부여했다.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예술은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며, 원작자가 부여한 의미에 국한되어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덧입는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비록 널리 알려지지 않고 부여한 사람 즉, 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야기는 그에게 내일을 이야기해준다. 책과 미술은 작가에게도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추억을 줬고, 내 아픔을 건드리기도 했지만 종내에는 상처를 딛고 나아갈 힘을 준 것처럼 말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몽테뉴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거듭 자신을 알아가며, 늙어가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나답게 사는 일이 중요하고 위대한 까닭은 내가 없다면 결국 모든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8

때로는 세상 속에 있어도 홀로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 그런가보다. 여행은 고독을 덜어보려거나 더욱 고독해지려는 시도다. 내가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좋아하고, 호퍼의 그림을 찾아보고, 비 내리던 런던의 카페를 기억하는 것도 고독하기 때문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돌아보면 인생은 결국 혼자 한 여행일 것이다. - P36

아오이와 준셰이는 주저 없이 약속했지만, 서로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확신하진 않았다. 약속은 그저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약속이 꼭 지켜져야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약속하는 순간의 믿음, 사는 동안 잊히지 않는 말, 떠올릴 때 느끼는 아련함 따위가 약속을 약속답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아오이와 쥰세이는 약속대로 만났지만 만나지 못했어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으리라. 잊지 않고 서로를 오랫동안 기억했으니까. 혹시 아는가. 당신도 누군가의 가슴속에 ‘오래된 약속’으로 머물고 있을지. - P72

이제는 방향을 바꿀 때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왜 늘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만이 좋은 답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만두는 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거라고, 그만두는 건 자아 발견의 과정의 일부이며 방향을 바꿀 힘이 필요한 일이라고 설파하는 대목을 읽는데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미 그린 그림을 버리기 아까워하기보다 새롭게 또다른 그림을 그릴 용기도 필요하다. 기왕 레이트 블루머가 되기로 했다면 말이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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