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얼굴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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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엄마'가 아닌 '복희 씨'라고 이름으로 부르고, 동물을 '마리'가 아닌 '명'으로 세는 이슬아 작가의 칼럼집. 작가는 기후 위기의 다양한 모습 뒤편에서 시대가 외면해 온 얼굴들 -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된 동물, 택배 노동자, 장애인, 이주여성의 얼굴들을 똑바로 마주하며 《날씨와 얼굴》을 썼다.


이슬아 작가는 식탁 위 요리나 매대 위 제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동물들의 생과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고,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에서 만나보지 않은 노동자를 떠올리는 사람이며,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사람이다.

한 문장, 한 단어에 힘이 느껴지는 《날씨와 얼굴》을 읽고 있으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생을 더 자세히 사랑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들려온다. 기후 위기와 소외된 자들을 생각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이 책을 읽으면 그 다짐이 더 굳건하게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다‘라는 단어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앞으로 끊임없이 재정의될 표현이다. 미래에는 전혀 다른 자연이 주어질 테니까. - P13

동물을 이렇게까지 귀여워하는 시대는 없었다. 한편 동물을 이렇게까지 많이 먹는 시대 또한 없었다. 이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49

동물을 의인화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유치한 실패로 돌아간다. 동물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꽝스러운 내레이션처럼 의인화 뒤에 남는 건 동물의 분위기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드러낸 인간의 욕망, 더 정확히는 자본의 욕망뿐이다. - P53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차피‘와 ‘최소한‘의 싸움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에 간극을 메우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절멸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의지였다. - P59

연대란 고통을 겪은 어떤 이가 더 이상 누구도 그 고통을 겪지 않도록 움직이는 것이다. ‘부디 너는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최대한 다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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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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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로또 1등이나 당첨됐으면 좋겠다."

"나도 그 때 코인이나 사둘걸."

"주식이 따따상 쳐서 시원하게 퇴사하고 싶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먹고 사는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한 제과업체의 비공채 출신 다해와 은상, 지송. 나이도 연차도 약간씩 다른 세 명은 서로를 동기라고 생각하고, 한숨만 푹푹 나오는 회사 생활을 함께 버텨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어이없는 곳에, 난데없이, 상상도 안 해본 곳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포털이 열린다. 바로 '가상화폐'다.

이 책뿐만 아니라, 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연수》를 읽으면 회사원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 마치 옆 팀 동료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류진 작가는 판교의 IT 회사를 포함한 두 개의 회사에서 약 10년간 일했다고 한다. 회사원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에 밑줄을 마구 치다 보면 '만약 장류진 작가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녔다면 어떤 소설이 나왔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로또 1등 당첨자 인터뷰를 찾아보며 '만일 저게 나라면' 상상해본 적이 있거나, 지나간 코인 열풍에 탑승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적이 있다면, 혹은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미있는 세태소설을 읽고 싶다면 장류진 작가의 설탕에 굴린 소설, 《달까지 가자》가 딱일 것이다.

한 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우리는 달까지 가기로, 그때까지 버티기로 약속했다.

돈을 벌었는데도 돈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빨갛고 파란 막대의 꼭짓점을 이은 오렌지색 선. 그 가느다란 선 위에 내 전 재산이, 열여덟 살 때부터 다종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0년 동안 조금씩 모아온 내 자산 전부가 들어 있었다.

통상 이력서 사진은 실물보다 훨씬 잘 나온 사진으로 내기 때문에 그 격차가 더욱 심했다. 하지만 단순히 체중이 불고 얼굴선이 무너지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사진과 실제 얼굴 사이에 존재했다.

"우리 같은 애들은 어쩔 수가 없어."
우리, 같은, 애들. 난 은상 언니가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세 어절을 말할 때, 이상하게 마음이 쓰리면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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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인생이니까 -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김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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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주말이 오길 바라는 월요일,

'목적지에 언제 도착하나' 투덜대며 꽉 막힌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

여름휴가만 기다리면서 출퇴근을 반복하며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하루하루,


​우리는 살면서 자주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견뎌낸다. 기다리는 미래는 즐겁고 신나 보이고, 견뎌내는 현재는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다. 그런데 그렇게 견뎌내는 현재의 나날들이 평범하다 못해 힘들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면? 그 시간들을 '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리거나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p.97)


'특별한 날'만을 기다리며, 재미있는 일이 없는 그저 그런 날들을 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김신지 작가는 그들이 버리고 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반짝이는지 알려주고 있다. '시간이 금이다', '기적의 아침 시간을 활용해라'와 같은 말을 외치며 '성공한 삶'을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말하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독자를 가르치는 식으로 '시간을 버리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는 무거운 글이 아닌, 작가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읽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힘이 가득 들어간 글이 아닌, '80퍼센트 정도면 충분하니 최선을 덜 하자'고 말하는 힘이 빠진 글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한없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10여 년간 잡지 에디터 일하며 오랫동안 글을 써와서 그런지 김신지 작가가 쓴 단어 하나하나에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그 섬세한 문장들은 현재를 지겹게 보내고 있는 독자들의 손을 잡고서는, 길가에 피어난 예쁜 꽃 한 송이, 분홍빛 보라빛으로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평일이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독자들,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직장인들, 편안한 문장으로 위로받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한여름 시원한 맥주 한 캔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무작정 열심히 살라는 말에 지치지만, 다 괜찮다는 말에도 전혀 괜찮지 않기 때문에. 진짜 대답은, 내가 찾아 스스로에게 해주는 수밖에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 P9

그리하여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 P33

출·퇴근하며 입버릇처럼 "빨리 토요일 되면 좋겠다"라고 하는 순간 평일은 인생에서 지워지는 것처럼. - P96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리거나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 P97

말은 씨가 된다니까, 언젠가 싹 틔우게 될 말을 아주 많이 해버려야겠다. - P136

우리는 궁금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따뜻한 경험인지. - P236

엄마에게 나는 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엄마는 내게 대부분의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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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신정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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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읽은 책인데, 무슨 내용이었지?‘ 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모 독서법.

저자 신정철은 오랜 시간동안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쌓은 ‘메모 독서‘의 노하우로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두 번째 책 《메모 독서법》에서는 다섯 단계의 메모 독서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오래 기억하는 독서‘를 넘어 ‘삶을 바꾸는 독서‘를 제시한다.

1단계 책에 메모하기
2단계 독서 노트 쓰기
3단계 독서 마인드맵
4단계 글쓰기
5단계 독서 습관 만들기

추가로, 위 메모 독서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준비 단계‘, 메모 독서법를 통한 변화를 살펴보는 ‘리뷰 단계‘까지 2개의 단계를 포함하여 총 7장으로 책을 구성하였고, 독자로 하여금 한 주에 한 장씩 메모 독서법을 7주 동안 실습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평소에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거나 전자책을 많이 읽는 독자들은 눈으로 읽는 독서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독자들에게 이 책은 쓸모가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책에 직접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것 외에도 독서 노트를 쓰거나 서평 쓰기, 독서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책을 더 깊게 이해하는 방법까지 단순히 ‘책에 메모를 하는 방법‘이 아닌 ‘독서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도서관이나 전자책을 즐겨찾는 독자들에게도 이 메모 독서법은 좋은 제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뒤돌아 서면 책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 독자들, 독서 노트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쓸지 감이 안 오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통해 일회성 독서가 아닌 책 하나를 꼭꼭 씹어 소화하는 독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책은 깨끗하게 보면 깨끗하게 잊힙니다.

독서는 책 자체의 내용을 전달해주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모 독서는 책이 하는 말에 경청하고, 나 자신의 생각에 경청하는 겸손한 독서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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