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언론인인 디디에 에리봉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고향인 랭스를 30년 만에 방문한다. 랭스는 그에게 노동계급의 인장을 찍어줬고,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던 곳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에리봉. 그는 공장노동자였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고, 심지어 아버지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고백한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지적, 정치적으로 사회 세계의 위계질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그 자신은 노동계급에 속한 자기 가족을 부끄럽게 여겼다.

 

“나는 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부르주아 세계와 프티부르주아 세계에 발을 좀 담가보았다고 해서 이렇게 가족을 버리고 그들을 부끄럽게 여겨도 되는 것일까? 지적, 정치적으로 사회세계의 위계질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왜 그 질서를 체화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분열되어 편치 않았다.” (80쪽) 부유층과 고위직 인사들이 사회운동, 파업, 시위 등에 대해 적대감을 표출할 때 에리봉은 그들에게 증오심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노동 계급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거부했다.

 

우파 소속의 후보자들에게 투표를 가족들을 보며, 에리봉은 프랑스 좌파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또 왜 노동계급이 우파에 표심을 던지는지 추적한다. 신보수주의 지식인들 영향 아래에서 놓인 좌파는 지배계급에 대한 착취와 저항보다는 ‘개인적 책임’을 더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사회보장 제도가 약해져 노동계층은 부당하게 취급 받게 되고 자신들을 대표하는 이들에게 조차 무시를 당했다. 


프랑스 노동계급층이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종주의에 있었다. 에리봉의 부모님이 살던 동네에 새로운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활터를 잃어갔다. 이주민들을 향한 반감은 커졌다.

 

“부모님은 이렇게 한때 자신들에게 속했으나 이제는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세계에 갑작스레 침입한, 그들(이주자)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자각되는 것을 피해 달아났다. 어머니는 이 새로운 이주자들에게 딸린 아이들의 행렬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163쪽)

 

한때 공산당이 지배적이었던 노동계 층에게서 민족주의적 원리가 작용한 셈이다. 에리봉은 좌파가 마르크스로 돌아가자고 계급투쟁을 내세우기보다는, 민중 계급이 때로는 자신들을 좌파에, 때로는 우파에도 위치시키는 현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민중에게 정치 담론이 형성 가능한 정당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당을 통해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1950년대 랭스를 생생하게 재연하면서 에리봉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자전적인 글이다. 개인적인 에세이보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확대해 프랑스 노동계급의 보수화와 좌파의 변질을 탐구하고 있기에 사회비평서에 가깝다. 에리봉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 거리두기를 하며, 계급 정체성과 성 정체성을 문학 작품과 사회과학 이론을 적용하여 풀어낸다.


“우리는 판결이 이미 내려진 세계에 도착한다.”(250쪽) 

에리봉은 이 책에서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려는 메시지보다는, 운명론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재발명’하려는 성찰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사회적 편견과 거부감, 수치심을 느꼈던 과거와 대면하는 디디에 에리봉을 모델 삼아, 독자들도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살아온 시간을 재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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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8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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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0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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