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인다거나, 내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것 중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 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 즉 단순히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환상에속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발로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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