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가 '빠르게' 아즈마 히로키에게 빠져 들었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즈마는 일본의 잡지 <켄론>의 편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즈마가 <니혼게이자이> 석간 신문에 연재한 글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를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이웃으로 소개한다.

 

 

 

아즈마는 사람들이 왜 가상화폐에 빠지는지 궁금해서 사흘간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어보고, 연극이나 영화 상영 후 나누는 애프터 토크는 설익은 비평의 장이라며 불만스러워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서 찾아다니는 관광지보다는 우연찮게 색다른 경로에 빠져들어 기뻐하기도 한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아즈마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담고 있다. 거대한 담론 대신 인터넷상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즈마는 우리가 어떻게 공공성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속에서 문학 평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평론이란 본래 개별적 작품에서 보편적 문제를 도출하여 시대와 사건에 무관한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엘리트나 지식층이 다뤘던 평론을 이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진지한 평론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영어권 검색 엔진인 딕 웹사이트에서 문학은 라이프 스타일 범주에 속해 있다. 심오한 사상을 말하는 것은 이제 한 개인이 주말에나 즐기는 취미가 되어 버렸다. 깊이 있는 사상과 평론이 다루어질 곳이 좁아졌다. 아즈마는 이제 “유연하게, 느슨하게, 산만하게” 사고할 때라고 말한다. 데리다가 말한 우편적 방식처럼 글쓴이가 의도한 바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더라도 개의치 말라고 한다. 즉 오배(잘못된 배달)을 꿈꾸라 한다.

 

 

 

아즈마는 진지함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경박함과 진지함 사이의 텍스트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진지한 문제가 경박하게 논의될 수도 있고 경박한 수다에서 진지한 철학적 사유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진지한 언어로 진지한 사상을 유통하기 힘든 세상에서는 대충대충 가벼운 마음으로 “어쩐지 재밌을 것 같아”라는 오락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장르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상징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반드시 우위에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루소의 사상 일부를 현재 인터넷 세상과 연결하여 재해석을 해보자. 루소는 <사회 계약론>에서 대학, 노동조합, 자치 단체 등에서 사람들끼리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힘으로만 정보를 모아 정책을 판단한다면 더욱 올바른 판단이 내려진다고 보았다. 즉 사람들 간의 소통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아즈마는 루소의 사상을 인터넷 본질에 맞대응시킨다. 인터넷은 ‘소통의 확대가 아니’라, 각자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고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데 있지 않은가.

 

 

 

아즈마는 데리다와 루소의 사상을 지금의 정보자본주의 속에서 나와 타자 그리고 공공적 담론과 연결해 당대와는 전혀 다른 문맥에서의 사유를 시도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풀어가는 스타일’로 글을 썼기에, 철학 사상에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그의 사유를 따라가지 힘들지 않다. 이 책을 아즈마 히로키의 입문서로도 볼 수 있겠다.

 

 

 

아즈마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공공성을 찾기 위해서 진지함이 아닌 “느슨하게, 가볍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생각의 지평을 열어보라 한다. 그의 최근 저서인 <관광객의 철학>은 "기존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또 비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관광객의 철학’에 도스토옙스키부터 현대 SF에 이르는 문학이 보여 준 전망을 접목시킨다"고 한다. 진지한 주제와 사상을 어떤 신선하고 느슨한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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