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은런던 북부에서,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는 시내에 가까운 소호라는 쪽에 살았는데요. 이 킬로미터 정도를 사이에 두고 두 명,
의 거장이 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때는 경제학자라고 해봤자몇 사람 안 되었으니,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존스튜어트 밀과 카를 마르크스가 지척에 살았다는 것은 참 상징적입니다.

그 당시 마르크스는 가난한 망명객에 불과했는데요. 일필휘지로 이름이 자자했던 카를 마르크스는 펜으로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을 만큼 날카롭고 비판적인 글을 썼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마르크스와 의견을 같이하여 "영국 경제학자 중에 유일하게 존경할 만한 사람은 존 스튜어트 밀뿐이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의 다른 경제학자들, 예컨대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사람을 속물이라고 욕했습니다. 마르크스의 비판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 P176

 영국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이 ‘너네 프랑스에 오귀스트 콩트 있잖아? 아무래도 그 사람이 천재인 거 같아.‘ 이렇게 운을 떼니프랑스 사람들도 ‘이런, 우리가 몰라봤나 봐.‘ 하면서 영국을 통해 프랑스로 역수입했고, 이로써 오귀스트 콩트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됩니다. 사실 콩트는 존 스튜어트 밀이 한때 프랑스에머물면서 영향을 받았던 생시몽의 제자였습니다. 당연히 그의사상엔 사회주의적인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겠지요?
- P183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자유론』을 좋아했다가싫어했다가, 싫어했다가 좋아했다가, 여러 번 그런 애증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집어 던졌다가 다시 찾았다가 그러면서 이제 최근 한 십여 년간 더는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지 않고 보존하는책, 현재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챕 중의 하나가 바로 자유론입니다. - P191

그런데 가끔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를 백인들에게만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론』은 참좋은 책인데 구석구석에 가끔 그런 고약한 부분이 나타나요.
존 스튜어트 밀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열일곱 살 때부터1858년까지 약 삼십오 년 동안 동인도회사에서 고위직으로 일했습니다. 영국이 인도에 식민지 정책을 펼치는 데 거의 이론적인 우두머리 역할을 했어요. 

그는 이 책에서 "인도는 미개국이므로 자유가 필요 없다. 이런 나라는 아주 엄격하게 아주 강력하게 무력으로, 전쟁으로, 총칼로 다스려야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유론 뿐 아니라 이런저런 책에서 공공연히 언급했어요. 그 부분에 이르면 저는 또 막 화가 납니다.인도 사람은 아니지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존 스튜어트 밀의 전집 33권을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찾아봤는데, 코리아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서양 사람들의 책에 코리아가 등장하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죠. 존 스튜어트 밀도 마찬가지인데, 그의 논리대로라면 인도만이 아니라 당시 아시아,아프리카, 일본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습니다.  - P198

식민지 총독이 식민지 원주민을 학살한 끔찍한 사건을 둘러싸고 영국의지성인들 사이에서 큰 논쟁이 일어나고 의견이 극심하게 갈립니다. 예를 들어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찰스 디킨슨 같은 사람은 "괜찮아, 뭐 죽일 수도 있지." 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는데요. 존 스튜어트 밀은 이에 대해 "무슨 소리야! 원주민들의인권까지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학살까지하면 안 된다. 총독을 처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메이카의 해방을 지지한 것은 아닙니다.
영국인 총독이 학살을 자행한 것은 자메이카 사람들이 독립을주장했기 때문인데, 존 스튜어트 밀은 자메이카의 독립을 지지해서 그렇게 주장한 게 아니라 학살 자체가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에 총독을 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 P222

큰 부자가 선거권을 많이 가졌다가 그다음에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어서 그 당시엔 웬만한 부자들은선거권을 다 가지게 된 것인데요. 이른바 자본주의적인 논리가선거권에도 작용한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 제도를 거부했습니다. 아니, 철저하게 부정했어요. 

대신 "선거권은 돈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두뇌는 따져야 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 지능이 뛰어난 사람, 엘리트들은 투표권을 복수로 가져야 한다. 일반 서민 노동자들보다 많이 가져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적어도 그 시대 기준으로 보자면, 돈을 가치 기준으로삼지 않고 그래도 지식을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조금신선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P226

『여성의 예속』이라는 책이 19세기 후반에쓰인 책이라는 시대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고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그는 결혼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를테면 결혼을 꼭해야 하는지,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여성이 종속되는 것은아닌지 의문을 제기한 거예요.

존 스튜어트 밀은 심지어 "가족법은 노예법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가족법도 문제가 있었잖아요?
‘호주‘ 제도와 연관되어서 동성동본 혼인금지 같은 세상에유일무이한 그런 제도가 있다가 없어졌어요. 그렇지만 이 가족법은 여성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노동법도 마찬가지입니다.
- P228

흥미로운 점은 존 스튜어트 밀의 묘지는 평범한데 아내 히리엇 테일러 밀의 묘지에는 그녀를 찬양하는 장문의 비문(文)이 쓰여 있다는 검입니다. 원래 서양 사람들은 비문을 그렇게안 쓴다는 검을 고려해보면 참 이례적입니다. 이를테면 존 스류어트 밀 자신의 비문은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름하고 생몰연대만 썼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비문은 구구절절한 찬양 일색이에요. 

"그녀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정신, 고귀한 영혼, 명쾌하고 힘차고 독창적이며 해박한 지식은, 세상의 길잡이와 버팀목이되었고 지혜의 스승이 되었으며 자비의 귀감이 되었도다. 이시대의 진보에서 그녀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고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녀처럼 위대한 정신과 지성을 겸비한 인물이 몇 명 더 있었다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곧 올것인데,"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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