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 밖에서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해서 그걸로 시어머니한테 주눅이 들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그것보다는 온종일 한번도 집 걱정을 안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매우 기묘한 느낌을 맛보았다. 첫애라 더했겠지만 자나깨나 한시반시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골몰했던 엄마 노릇에서 그렇게 완벽하게놓여나게 한 게 다름아닌 화투놀이의 매혹이었다는 게 문득 나를어리둥절하게 했다. 

뒤미처 매우 기분 나쁘게 섬뜩한 느낌으로 내가 경험한 매혹 속에 악의에 찬 속임수가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음의 트릭 따위가 아닌 운명의 마수같은나는 곧 그런 생각의 터무니없음을 스스로 알아차렸지만 섬뜩한느낌만은 구체적인 물건의 촉감처럼 생생했다. 나는 그 기분 나쁜것을 떨어버리기 위해 애써 그날의 수입을 계산하려 들었다. 반찬값은 번 것 같았다.  - P64

그 섬뜩한 건 핏줄 사이에만 있는 신비한 끈과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내 철저한 방심과 더 깊은 관계가 있음직했다. 집안일에 대한 일시적인 방심은 나 자신만의 일이나 재미에 대한 몰두를뜻하기도 했고, 그런 모처럼의 이기에서 헤어났을 때, 한 집안의 안주인 노릇만을 숭상했던 평소의 의식이 느낄 수 있는 가책과 당황이 그런 섬뜩한 이물감으로 와 닿았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지당하고도 속 편했다. 내적인 심리상태와 외부의 현상 사이에 있다고 가정한 어떤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이런 온당하고 상식적인 해석을 붙이고 나니 섬뜩한 느낌의 영험도 차츰 무디어지기시작했다.
- P66

나는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딴사람처럼 기분이 고조되고말이 많아지고 웃음이 헤퍼지는 버릇이 있었다. 꼭꼭 써둔 생각.
황당한 불안, 맺힌 마음이 거침없이 술술 말이 되어 넘쳤다. 퍼니어도 퍼내어도 넘치는 맑은 샘물처럼 말이 범람했다. 듣는 상대방에게도 그게 맑은 샘물이 될 것인지 구정물이 될 것인지는 내 아랑곳할 바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는 내 속에 갇힌 것들이 말을 통해자유로워지는 쾌감에 급급했다. 그건 또한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방법으로 자유를 맛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평소 나에게 있어서 자유란 나뭇가지 끝에 걸린 별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딸 수 있을 것 같아 나무를 기어올라가 봤댔자 허사였다. 올라갈수록 별은 멀고 돌아갈 수 있는 땅 역시 멀어져서 얻어 가질 수 있는 것은 위기의식밖에 없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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