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영어로는 ‘조선’도 ‘한국’도 모두 ‘KOREA’다. 일본인이 멸시적으로 사용한 ‘조센’이라는 일본어 어감마저 이곳 청중에게 전달되었던 걸까.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라가며 답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조선’이란 말을 학대에서 구해내고 싶습니다. 식민지 지배자가 멸시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 말을 기피한다면 학대에서 구출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그 학대를 추인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 P175

많은 일본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히데요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내 자신에게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히데요시가 나의 영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며 묵살되어온 소수자나 패배자의 존재에 눈을 떴던 셈이다. 나 자신이 그런 패자들 쪽에 속해 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불편함‘이야말로 내 인생의 귀중한 자산이다. 만약 그 자각이 없었더라면 내 정신세계는 언제까지나 일면적이고 천박했으리라.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크롬웰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해보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P39

터너는 왜 「노예선」을 그렸던 걸까. 물론 인도주의 정신과 자신의 정치적 신조를 완수하려는 행위였으리라. 노예제 옹호론자와 대비한다면 그의 인도주의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함이 틀림없다. 다만 어디까지나 시대적인 제약과 대영제국의 신민(요컨대 오랫동안 노예제의 혜택과 수익을 누린 자)이라는 틀 안에서였다.

한편 「노예선」을 바라보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시선도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둘 만하다. "터너는 분명 흑인의 고통 그 자체보다 이토록 비극적 사건을 관련지어야만 훌륭한 바다 풍경화를 그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두었다."

제작동기는 인도주의였을까. 아니면 화가로서 지닌 욕망이었을까. 어느 쪽이라고 여기서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는 후자 쪽으로 기운다. 그렇다고 터너를 비난하려는 의미는 아니다. 정치적 신조는 어찌 되었든 그는 예술가로서 단호히 행동했다. 좋건 나쁘건 ‘뼛속까지 화가’였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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