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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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월, 재일 조선인 서경식 작가는 20년간 일해 온 도쿄경제대를 정년 퇴직했다. 디아스포라 소수자로 살아온 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재일조선인은 공립학교 교원이 될 수 없었다. 서경식은 쉰 살이 넘어 정식 교수가 되어 학교 측으로부터 노동조합 가입의 권유를 받았을 때, 자신이 마치 ‘특권’을 받는 사람같이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내 출신과 문화를 홀로 등에 짊어진 채 나는 다른 모든 학생들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짊어졌던 소년 서경식. 그는 책을 읽고 시를 쓰며, 문학 작품 속으로 도망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찾으며 살아왔다.

 


가난한 재일 조선일들이 사는 교토에서 자란 서경식은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중학교에 들어간다. 소위 문화적 소양이 있는 친구들에게 둘러싼 그는 열등감, 동경, 경쟁심이 발동하여 더욱 문학작품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무엇보다도 글을 잘 써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했다. 일종의 과시욕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소수자로 주눅이 들었던 소년시절의 굴욕감에서 벗어나자 했다.

 


”나는 저소득층 피차별자의 세계로부터 중산층 주류들의 세계로 옮겨갔고 양자 사이의 경계에 서서 주위 사람들에게 ‘타자’인식을 촉구하려는 동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1967년 한일 조약체결로 인해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 1971년에는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그의 두 형이 구속, 수감되자 그는 형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사회변혁의 현장에서 서경식은 김지하, 정희성, 박노해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란 “시대에 침묵하지 말아야 함”을, “시는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노래해야 함”을 되뇌었다.

 


서경식 작가도 사회변혁의 현장과 시대의 아픔, 소수자의 차별, 잃어버린 모어와 역사를 주제로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시를 읽을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시인. 그에게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는 국경을 넘어선다. 그는 ‘한국문학’보다는 ‘민족문학’이라는 용어를 써서 한국문학을 접하는 독자는, 남한뿐 아니라 휴전선 너머에 있을, 보이지 않는 독자들 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까지.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글을 한국에 있는 독자가 읽고 있듯이, 일본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흩어진 이들이 쓴 문학도 한국문학에 포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란, ‘문학’이란 역사의 패배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 준다. 식민지배를 부정하고 있는 일본인은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고통을 통해 "자국이 식민지 지배를 하며 타자에게 강요해온 고통을 통감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보기 드문 만남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그 둘의 고통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시, 즉 문학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현대문학은 세계의 독자들에게 어떤 보편성을 전할 수 있을까.  세계문학의 범위를 한 나라에 국한 짓지 말고 지리적 경계선을 내려보자. 예컨대, 세계 각지에는 오육백 만명이나 되는 조선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있다. 그들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삶의 현장은 한반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근대 이후 조선 민족의 역사적 경험과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쓴 문학은  ‘민족 문학’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그들의 문학은 다른 국가의 디아스포라의 삶과 공유할 수 있기에 보편적일 수 있다.


저자는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라고 고백하면서도 루쉰이 말할 것처럼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말을 따라,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리라 다짐한다. <시의 힘>은 재일 조선인이 문학의 힘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과정과 시에 담긴 섬세한 감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고뇌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다. 한반도의 바깥에서 조선의 역사, 모어에 대한 그리움, 시대의 변화, 역사적 사실과 현재를 시와 문학가들의 작품을 통해 찾고자 하는 저자의 치열한 사유가 돋보인다. 문학의 새로운 보편성과 한국문학의 범위를 지역과 경계를 넘어 상상해보는, 시선이 열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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