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여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0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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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은 뭘까.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반전, 밑줄 긋고 싶은 대화와 생생한 묘사.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했다면, 어느 정도 좋은 소설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감상과 취향은 잠시 옆에 두자. 한 권의 소설을 역사 속 시간대에 놓고 본다면, 소설의 가치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로쟈의 한국문학수업>의 저자 이현우는 25년 가까이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강의를 해왔다. 이 책은 대중들과 현장에서 강의를 하며 체득한 저자만의 소설을 읽는 안목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세계문학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한국문학 속에 근대적 인물과 서사가 과연 담겨 있는지 묻는다. 1960년대 소설가 강신재를 시작으로 2010년대 황정은까지. 저자는 ‘장편소설’이라는 기준점을 잡아,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연결지어 소설의 의의와 한계를 짚어 나간다.


근대소설이 되는 조건 중 하나는 부르주아 계층을 잘 다루고 있는가에 있다. 1960년대 대표 소설 중 하나인 <김약국의 딸들>은 충돌하는 계층 간의 이야기보다는 가족 안에서의 서사에 머물러 있다. 근대 소설의 주인공이 그리려면 작가는 돈과 사랑, 돈과 의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실상을 보여주고 비판해야 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박경리는 자신이 돈을 밝히는 인물을 싫어하기에 다양한 군상을 실감나게 묘사하는데 실패했다. 저자는 작가가 자신의 세계와 소설의 창작 방법론이 충돌할 때는 창작방법론을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발자크는 왕당파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설에서 현실 묘사를 탁월하게 하여 리얼리즘을 잘 살렸다.


1990년대는 ‘후일담 문학’의 시대였다. 1980년대 시대적 경험을 한 작가들이 30대가 되어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소설의 바탕이었다. 당대 작가들은 1970년과 1980년을 작품 안에 어떻게 그려냈을까. 은희경은 <새의 선물>에서 1992년도에 열두 살 진희가 1969년을 돌아보는 액자구성의 이야기이다. 소설에는 1970년과 1980년 두 시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은희경이 두 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설정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새의 선물>은 성장소설이 아닌 성장 거부 소설로 해석한다.


19세기 러시아 인텔리겐차들의 혁명운동과 1980년대 한국에서 군부독재를 타도하고자 했던 대학생의 운동은 유사점이 있다. 공지영 소설에는 1980년 20대에 꿈꾸던 세상이 현실이 되지 않았던 점에 대해 자괴감과 좌절감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공지영이 차별과 억압을 그리기는 했지만 사회에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개인의 감성이 주가 되는 위안의 서사를 그렸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동시에 공지영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이기에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진지한 문제의식을 던지길 희망했다.


근대적 주체는 박완서의 소설에서 탄생한다. 근대소설은 중산층을 잘 그려내야 한다. 박완서는 속물적 중산층을 잘 관찰했던 작가였다. 저자는 박완서가 윤리적 판단에 대해 이분법적이지 않기에, 도덕적이지 않는 인간을 잘 그리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중산층에 흡수되지 않고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박완서를 두고 “몸은 물속에 있지만 고개는 들고 있는 것”에 비유한다. "작가가 이 세계에 동화되지 않고 '이물감'을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이 근대 문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근대장편소설'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지난 50년간 한국여성작가들이 써온 대표작을 각 시대별로 나누어 평가대에 올렸다. 근대 장편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숙명론과 자살로 이어지는 퇴행적인 인물상으로는 안 된다. 또한 자본사회에 살고있는 현실사회에 맞게 작가는 중산층, 상류층의 실상을 잘 해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장편 소설 속에 당대의 사회현실을 잘 담아내야 한다.


저자는 소설가들의 생애와 일화를 세세히 들려주며 작가의 성격이나 트라우마가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지 세심히 살핀다. 작가와 작품을 연결해서 서술하고 있기에 소설을 다소 심도있게 읽는데에 도움이 된다. 베스트셀러, 한국의 등단문화, 대중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작가들을 향해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자, 이제 소설을 읽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  당신은 이 책에 나온 작가들의 작품을 책장에서 다시 꺼내 읽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저자가 이미 이 책에서 작품의 의의와 한계를 제시해 놓았기에 다른 한국소설들을 찾으러 나설 것이다. 소설을 더 깊게 읽을 수 있는 비밀병기를 손에 들고 말이다.


 


소설가는 대개는 독자를 보고 쓰는 것, 자가가 독자와 같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관심이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다. - P170

현실과 이상 또는 예술 사이의 간극은 규모의 차이가 있을망정 보통 사람들도 경험하는 일반적인 문제다.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작가가 제기하는 이런 문제들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로 읽을 수 있어서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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