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만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날 아침사랑하는 장미꽃에 입 맞추고 나간 수용소 사령부에서 몇십만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 몰아넣어 학살해버렸다. 장미꽃에 바치는 사랑과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 힘러와 보르만의 정신분열증을, 나는 1988년 겨울 텔레비전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권력의 브레인과 집행자라는 자들에게서 발견하면서 치를 떤다. 상상컨대 대한민국의 힘러나 보르만도 새나 꽃을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 어린 남편이고 아버지일 것이다(이렇게 상상하는 것 자체가 내가 순진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은 단7년 동안에 그 많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고,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전국민을 사실상 감옥에 처넣었던 것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이다. 물에 빠진 뒤에 끌려나온 자리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광적인 자기변명을 할 정도니 물에 처박혀지기 전에야 어떠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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