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우엘벡의 소설 <세로토닌>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기대할 수 없겠다.여성 혐오 발언, 노골적인 성적 묘사, 그리고 인종차별적 발언까지. 그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불쾌하여 책을 덮어 버릴지도. 하지만 찌질하고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눈을 흘기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실소가 터지고 우엘벡의 블랙 유머와 예리한 시선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을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으로 설정하여,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한 남성이 이 정도로까지 타락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로토닌>은 가벼운 소설이 아니다.절망에 빠진 주인공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주인공 플로랑은 왜 항우울제 약을 복용하게 되었고 자발적 실종자로 살아가게 되었을까.

 

 

46세 플로랑은 프랑스 농산부 위촉직을 맡고 있다. 일본인 여자 친구와 살고 있지만 무늬만 커플일 뿐 사이가 멀어진지 오래다. 일과 사랑에 넌덜이가 난 플로랑은 어느 날, 자발적 실종자가 되고자 결심한다.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여자 친구에게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파리의 한 호텔로 숨어 들어간다. “나는 육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를 바랐고 육체가 있어서 그것을 신경쓰고 돌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견딜 수 없어졌다.”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 플로랑은 항우울제인 캅토릭스를 복용하기 시작한다. 약의 부작용은 성욕 감퇴, 성기능 장애. 곧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끝날 것을 예감한 플로랑은 “페니스와의 영원한 작별을 기념하는 작은 의식을 거행”하러 옛 애인과 친구를 찾아 나선다.

 

 

플로랑도 한때 낭만적인 사랑을 했었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꿈을 가졌던 청년였다. 옛 애인 카미유를 찾아간 그는 그녀의 일상을 숨어서 지켜본다. 플로랑은 홀로 아들을 키우는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떠난다.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이 소설은 슬픈 연애사 정도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우엘벡은 자유경제 시장이 인간을 소외시켜 좌절과 무력감에 빠져들게 한다는듯 우울증의 원인을 사회로 확대해 나간다.

 

 

플로랑은 대학교때 단짝인 에메릭을 찾아간다. 에메릭는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젖소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는 값싼 유제품의 수입으로 낙농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농업관련 기관에서 일했던 플로랑은 누구보다 낙농업의 시장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지속 가능한 유통구조를 회사측에 제안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유무역이 언제나 승리했기에 플로랑은 좌절감을 느꼈다. 낙농업자들과 시위를 하는 에메릭을 바라보며, 플로랑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내가 경사를 달려 내려가 에메릭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이미 우정이나 인간적인 그 어떤 제스처도 그에게 더는 가닿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자신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여기는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때 순수한 사랑도 했었고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서 저항해봤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우엘벡은 자유경쟁시장에서 성(性)이 거래되고 부의 세습, 부동산 시장의 성장, 그리고 자본 앞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현대인을 모습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이런 시대에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플로랑에게 연민을 느껴지 않을 수가 없다.

 

 

 

처절하고 비관적인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사랑은 어쨌든 우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시간을 견딜 만한 것으로 변화시키며 심지어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희망을 내비친다. 사랑이 우리를 적막한 세상을 버티게 해주겠지만, 또한 사랑은 우리를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  뜻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지만 어김없이 일터로 향하는 성실한 이들과 그리운 사람의 부재때문에 울적해서 술잔을 기울이는 독자에게, <세로토닌>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은 후 당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망가진 현실 사회를 알게 되어, 더욱 우울해질수도 있겠다. 아니면, 우엘벡의 열렬한 팬이 되어 그를 뒷조사할지도. 이 소설의 교훈도 있다. 옛 애인은 추억 속에 남겨두도록 하자. 절대 찾아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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