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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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왜 한 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는지, 심한 모욕을 견디면서까지 일을 해야만 했던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6년 전에도 입주민의 인격모독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경비원이 분신 사망했다. 그때와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경비원은 차별에 시달리고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38년간 공기업을 다녔던 저자는 60세에 퇴직한다. 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자녀 학비와 주택담보대출을 갚아야 하기에 그는 단순 노무직을 찾아 나선다. 그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 “임계장”으로 새출발 한다. 이 책은 그가 버스회사 배차원, 아파트 경비원, 고층빌딩 주차관리원, 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며 4년 동안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노동일지다.


 

버스 배차원으로 취직한 임계장은 하루에 400건이 넘는 화물을 싣고 승객관리, 배차스케줄 관리까지 맡았다. 그는 한 달에 두세 번만 쉬면서 하루 10시간씩 근무를 했다. 최저임금이 올라 노련한 배차원이 해고되고 세 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했다. 물건을 싣다가 넘어져 머리에 피가 나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대신 일해줄 동료가 없었기에. 한 달 정도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회사에서는 질병휴가를 내주지 않았다. 업무상 재해라는 건 “교통사고 하나”이기 때문였다. 회사는 그에게 구두로 해고를 통지한다.

 


허리 통증이 참을 만해지자 임계장은 아파트 경비일을 시작한다. 예전엔 초소마다 한명씩 경비가 있었지만 최저임금이 오른 후 경비 인원을 줄여 7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한다. 경비 일과 함께 그가 해야 할 청소 및 잡역이 100가지나 있다. 경비원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입주민들과 각종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다반사다. 길고양이에 놀라 실신한 학생 부모는 그 책임을 경비원에게 물었다. 그는 학생 귀가 시간에 맞춰 두 시간씩 계단에서 경비를 서야 했다.

 


자녀 학비만 연간 1,000만 원이 들어 가기에 임계장은 고층 빌딩 주차원으로도 일을 시작한다. 격일 근무를 하는 아파트 일 쉬는 날에 또 일을 하는 것이다. 임계장이 일했던 버스터미널, 경비실, 고층빌딩 주차관리소는 밥을 먹을 수도 잠시 앉아 쉴 수도 여름철 몸조차 제대로 씻을 곳이 없었다. 밥을 먹으려면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로 가야했고 밤에는 오토바이와 취객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경비원들은 더 좋은 근무 환경은 둘째치고라도 몸을 씻을 수 있는 곳,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원했다. 그들은 고용불안에도 떨었다. 감사와 이사, 동대표는 툭하면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널려 있다.”는 말을 했다. 병이 나도 질병 휴가는 없었다. “병이 났다고요? 그럼 빨리 사직서를 제출하세요.”라는 식이다. 아프면 잘린다.

 



임계장은 4년 동안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고단한 하루를 기록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는 것 뿐.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간 작가가 겪은 차별적 폭언과 폭행, 열악한 근로환경 이야기는 눈물 나도록 마음 아프지만 큰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이웃이 그에게 가했던 무참한 행태에 분노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혹한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임계장 이야기>는 이 땅에 살아가는 부모님의 노동일지다. 조정진 작가님을 감자탕 집에 모시고 가서 소주 한 잔 따라 드리고 싶다.

 

하지만 경비에게는 꽃잎도 치워야 할 쓰레기다...
"이 사람 경비원 되려면 아직 멀었군. 그렇게 꽃잎만 쓸다가 다른 일은 언제 하나. 꽃은 말이야,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 털어 내야 되는 거야. 꽃이 아예 피지를 못 하게 하는 거야. 그래야 떨어지는 꽃잎이 줄어들거든. 주민들이 보게 되면 민원을 넣게 되니까 새벽 일찍 털어야 해."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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