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 탄압 시절, 작가 유시민이 숨어 읽었던 <공산당 선언>은 그에게 '청춘의 독서'로 남았다. 그는 “포악한 권력의 무자비한 압제와 넘어설 수 없는 절대 빈곤의 장벽에 절망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고 평가하며 이 선언문이 오늘날에도 가치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 지젝 역시 <공산당 선언>의 그 생명력을 보고, ‘유령’을 다시 소환해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르크스의 통찰을 모색하고자 한다.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지젝이 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공산당 선언>서문에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긴 책자다. 


 

 

 

지젝은 우선 자본주의와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든 지금의 노동, 시장, 교환, 시스템 작동방식을 진단한다. 협력적 커먼즈의 부상으로 새로운 시장교환 방식이 등장했다. 개인의 사물을 무료로 유통하게 되고 사물인터넷의 도움으로 내장형 장치들이 상호 연결된다. 자율적인 데이터의 이동으로 개개인은 등록되고 전송된다.

 

기술혁신으로 우리는 평등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새로운 기술망은 또 다른 착취인 “일반 지성 자체의 사유화”를 낳았다. 가령, 빌게이츠는 마이크로 소프트가 보편적인 기준이라고 제시하며 시장을 독점한다. “일반 지성”에 해당하는 수많은 지식노동자들이 게이츠의 경영방식에 기꺼이 동참한다.

 

의제자본의 유통이 몸집을 키워나감에 따라 미래의 가치에 대한 투자 또한 커진다. 이는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노동 조건은 더 나빠져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가 등장한다. 시민권과 자유를 빼앗긴 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수백만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고, 아시아에서 노동 착취공장은 통제를 받고 있다. 지젝은 이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필연”으로 보았다.

 

불안정한 노동 시장이 증가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도 위협받는다. 스스로 자신의 건강보험과 퇴직문제로 알아서 처리해야 하고 유급휴가도 없는 경우가 흔하다. 지젝은 강화된 착취는 저항하기를 더 어렵고 글로벌 연대의 통합과정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지젝은 마르크스는 실패했지만 그가 제시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공산주의는 어떤 해결책의 이름이 아니라 "모든 차원의 커먼즈"의 문제를 다시 짚어보고 해결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커먼즈, 생물 발생적 커먼즈, 우리의 문화적 커먼즈를 살피고 개선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지젝은 마르크스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시점에 주목한다. 마르크스 자신과 마르크스주의자(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와는 간극이 있다.  마르크스가 처음 가졌던 사고로 돌아가 새로운 마르크스 정신으로 현 자본주의 세상을 바라보라 주문한다.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자본주의 사회, 기술 혁신 사회 속에서 여전한 노동 착취와 불평등이 마르크스 시대보다 더 교묘해지고 강건해짐을 입증한다.책내용을 읽기전에 역자의 해제를 우선 읽기를 권한다.  역자는 <공산당 선언>의 의의와 지젝의 의견 방향을 친절히 요약해 놓아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인다.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자본시대의 짦지만 집약된 진단서 같은 책이다.  빈부 격차, 불평등으로 치닫는 현재에서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젝이 내놓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기"라는 제안은 독자들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통이라는 오래된 유령의 힘을 유예하는 한편, 자기만의 무시무시한 유령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사회적 삶의 급격한 세속화를 수반하는 면이 있다. 자본주의는 진정한 귀족성, 신성함, 명예 등등의 모든 아우라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 P25

우리는 끊임없이 "자유로운 선택"의 포화를 받고, 적절한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억지로 결정을 내리면서, 자유의 실상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한다. 자유란 우리에게서 변화라는 진정한 선택지를 앗아가는 짐이다. - P40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을 무력화해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현실인 것으로 만들어왔다. 경제적 ‘현실’이 비로소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개념’에 이른 것은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뿐이라는 지젝의 주장은 그래서 옳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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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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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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