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승효상의 건축여행
승효상 지음 / 안그라픽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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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의 건축은 낮고 고요하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하양 무학로 교회, 조계종 전통불교문화원, 수졸당, DMZ 평화생명동산, 노무현대통령 묘역 등 종교를 아우르며 공동체를 위한 건물을 지었다.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여행지의 현장에서 시작한다. 직접 보고 걷고 사유하면서 공간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상상했다.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찰과 서원 수도원 등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돌며 건축을 이야기하며 비움의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저자에게 영적 성숙을 줬던 건축은 종묘와 루이스 칸이 지은 샌디에이고의 소크연구소였다. 종묘의 정전 앞에 비어있는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옛 제례를 그리며 물질문명과 천민자본주의 세상을 벗어난 ‘피안’의 세계로 빠져든다. 소크 연구소에서 두 연구동 사이에 비어있는 마당을 바라보며 저자는 공간의 의미와 비움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더 웅장하고 현란한 건축물이 아닌 덜어냄으로써 진실 되고 욕심 없는 건축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리라.

 

‘비움’의 건축을 찾아 나선 그는 수도원, 사찰, 폐허를 방문하여 당시 살았던 사람들을 소환한다. 폐허에 남아있는 잔해를 보고 공간구조와 그 곳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복원 가능했다. 2천 년 전에 집집마다 수도가 공급되었던 폼페이, 누가 건설했는지 왜 멸망했는지 모르는 5세기에 20만 명이 살았던 신들의 도시, 테오티후아칸,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 폐허 속에서 그는 “지금 보이는 침묵의 세계가 절을 세운 목적이 아니었을까. 비록 사찰은 없어졌으나 ‘부질없음’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보이지 않은 절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성찰한다.

 

중심 공간을 기준으로 지어진 서양의 건축과 달리 우리 건축은 자연을 고려하고 공동체 삶을 지향했다. 우리의 전통 집은 방 자체가 홀겹이고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으며 대청이나 툇마루는 공간이 뚫려있다. 병산서원의 누각은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길고 기둥 있고 비어 있다. 그 안에 풍경을 채우기 위함이다. 사찰의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선암사는 여러 개의 건물군이 모인 집합체다.

 

저자는 고유한 특징을 가진 건물이 모인 것을 보고 이상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한 건물이 없어져도 선암사는 그대로이며 한 부분이 덧대어져도 그 역시 선암사인 것이다. 부분이 전체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는 도시이다. 그렇다면 이는 그야말로 다원적 민주주의 도시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은 우리를 르토로네 수도원, 안동의 영산암,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사는 페즈, 유럽의 여러 묘역지 등으로 안내하여 땅에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승효상의 비움의 건축철학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안내서와도 같은 책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기에 각 챕터가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런 독자들에게는 30여개 도시와 50여개 종교 건축물 기행을 담은 승효상의 <묵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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