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방이후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주체 성립 문제가 문학사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 책의 화두다.
한국현대소설 속 당당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더 넓혀 세계문학 속 주인공을 대치해 본다면 한국현대소설 속에 그려진 개인은 과연 주체적이었던가, 질문하게 된다. 20년 넘게 러시아, 세계문학을 강의해 온 저자는 “세계문학의 흐름”이라는 포괄적 시선으로 한국현대문학 (1950년부터 1990년까지)을 살펴보며, 시대적 맥락에서 작가는 사회 전체의 모습을 담고 있는지, 소설 속 인물은 자기 정립에 이르렀는지 되짚는다.
손창섭은 한국 전쟁 후 폐허된 현실을 암울한 분위기와 무능력한 인물로 그려냈다. 정신적 가치가 없어진 시대이기에 인간을 동물처럼, 어머니로부터 홀대받고 내버려진 소년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손창섭의 1960년대 초기 작품에 주목하며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그 현실을 담으려면 장편소설의 등장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서 결말 이후 동옥이가 어디로 갔는지, 몸을 팔러 갔는지, 자살을 한 것인지 이야기가 더 전개되어야 하고 《잉여 인간》에서는 전쟁의 허무에서 벗어나 신분상승을 향한 길로 갔어야했다. 하지만 손창섭은 그곳에서 멈췄다.
4.19혁명과 5.16군사 정변, 본격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던 1960년대는 변화와 혼란의 시기였다. 개인이 주체적 인물로 살아가기 힘든 때였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남한과 북한 체제 사이에서 자신을 타협하지 않았던 이명준은 주체되기를 포기한 인물이다. 이에 반해 학병시절 체험과 해방 이후 정국을 자세히 담고 있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에서 주인공 유태림은 미래를 제시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소설의 말미에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태림의 제자들 이름을 작가가 제시하였기에 《광장》보다 더 나아갔다고 보았다.
유럽의 산업화, 근대화 시기와 함께 등장한 부르주아 계층의 이야기는 당시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소설 《적과 흑》에서는 주인공 소렐이 시골에서 도시로 가서 부르주아로 출세하는 과정을 담았고 《고리오 영감》에서는 상경한 라스티냐크가 파리를 향해 외친 ”이젠 너와 나의 대결이다”라는 저항과 대결의 목소리가 있었다. 토마스 만은 《부덴부르크 가의 사람들》에서 4대에 걸친 가문이 어떻게 변화하고 몰락해 갔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이런 작품에 견주어 볼 때 저자는 한국 현대 문학에서 부르주아를 다룬 문학이 빈곤하다고 꼬집는다.
황석영은 《삼포가는 길》과 《객지》에서 계층 이동하는 부랑자, 간척 사업장 노동자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1970년대 모습을 잘 담았다. 하지만 저자는 비판적 리얼리즘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굳이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시대의 핵심을 다루어야 한다. 리얼리즘은 단편과 잘 결합되지 않는다. 사회적 총체적 진실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작품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비판적 리얼리즘이 구현가능하다.”
우리에겐 에밀졸라의 《제르미날》이 보여준 파업과 노동쟁의를 다루는 소설이 부재했고 노동계급을 담고 있는 소설이 부족하기에 1980년대에 우리는 고리키의 문학을 많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국사회의 총체적 시야를 담은 작품은 없었다. 저자는 우리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먼저 겪은 유럽의 소설 속 등장인물과 사회상을 예시 삼아 한국현대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작품의 의의를 찾고 방향성을 살피는 저자의 시선은 날카롭다.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은 색다른 해석으로 다시 읽는 재미가 있고 낯선 작품은 소설가의 생애와 줄거리, 작품 속 발췌로 이해를 돕는다. 가히 다년 간 문학 강의를 해온 저자의 노하우가 느껴진다.
올해는 한국 전쟁 7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4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현대사와 함께 걸어온 한국현대소설을 다시 펼쳐볼 시간이 아닐까. 때를 같이 하여 철도원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은 황석영 소설이 나올 예정이다. 한국현대사의 전모를 담은 작품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