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징비록 - 역사가 던지는 뼈아픈 경고장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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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TV프로그램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면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전쟁이 진행 되는 과정, 조선의 군사들과

의병, 백성들이 일본군들과 어떻게 치열하게 맞서 싸웠는지,  

임진왜란에서 승리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류성룡이 쓴 '징비록'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자 전쟁 수행을 책임지는 

도체찰사를 겸했기 때문에

전쟁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 류성룡은 임진왜란 같은 참혹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예전의 잘못을 다스려 뒤에 닥치 우환을 경계하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징비록을 작성한다.


그러나 그의 뜻은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고

 40년뒤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1910년 조선은 망하게 된다.


'대한민국 징비록' 은 왜 우리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와 함께 

조선이 멸망하게 되는 과정과 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1543년을 기점으로 있었던 사건들이 

조선과 일본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1543년 3월 25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공인 되면서

15세기부터 대항해시대를 맞이했던 유럽의 국가들을 

경쟁적으로 무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1543년 9월 23일 일본에 유럽인이 상륙했고 

일본은 철포를 거액에 사들인 뒤

조총으로 개량하게 된다.


1543년 조선에서는 서원이 설립되었고, 

서원 설립은 조선을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억압하는 나라로 만들게 되었고, 

조선 지식인은 서원에서 공부한 

성리학을 바탕으로 관료가 되고

관료는 성리학을 통해 자기 권력을 넓혀 

정치인이 되는 과정을 통해

조선에는 성리학이 깊게 뿌리박게 된다.


이처럼 1543년 유럽의 지동설 공인과

 적극적인 무역로 개척과 함께

당시 조선과 일본의 시대적인 배경과 

두 나라의 결정적인 선택.


상징적인 세 가지 사건이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게 되었는지, 

결국 이것이 조선을 망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대주의, 불공편한 교육기회, 

신분 차별이라는 성리학의 병폐와 쇄국 정책, 

초기부터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으로 인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에게 추월 당한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징비록' 을 읽고나서

만약 조선이 성리학에 매몰되지 않고 

개방과 교류가 활발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대중의 각성을 위해 노력했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을지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런 어려움을 하루빨리 잘 극복하고 미래에는 중심국가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떨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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