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편지함 힘찬문고 38
남찬숙 지음, 황보순희 그림 / 우리교육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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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리뷰에 이어 오늘도 편지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남찬숙 작가의 <받은 편지함>이다.

책을 좋아하는 순남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곤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메일이 도착했다.

“안녕, 반가워! 독재자 친구!...
독재자라니! 처음엔 얼마나 어리둥절했는지 모른단다. 가만 보니까 ‘독자’라는 말과 ‘독재자’란 말이 헷갈린 것 같아. 내 말이 맞지? 그렇다고 너무 창피해하지 마. 그럴 수도 있지 뭐.“

깜빡하고 이름도 안 말하지 않았던 순남이는 고민한다. 순남이라는 이름, 말하기 너무 부끄러운데 어쩌나.

기본적으로 편지를 보낸다는 행위는 내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기본 의도 외에도 상대를 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편지를 받을 상대에게 더욱 멋진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쓴 편지를 본다. 아무리 장난꾸러기여도 편지에선 그렇게 모범적일 수가 없다. 반성과 참회, 다짐의 공간이다. 또 다른 나로 거듭나고 싶은 2D 공간, 그것이 바로 편지지 위다. 반성과 참회, 다짐과 추억을 넘어서선? 가장무도회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얼마든지 멋지고 번쩍거리는 가면을 쓸 수 있다.

좀 더 멋진 가면을 쓰고 상대에게 근사한 나로 보였으면 하지만, 사실 그 욕망은 자기 스스로를 위한 욕망이다. 지금보다 더 그럴듯한 사람으로 보이길 넘어서서,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어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런 가면을 쓰고, 가면을 쓴 게 들킬까 불안해한다.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괜찮다는 걸, 아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가장 편하고 즐겁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기쁘다. 그런 도구로서 편지가 이야기에서 사용되는 게 맘에 든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이메일로 시작해 언제고 펴 볼 수 있는 종이 편지를 받는 순간의 짜릿함.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연결될 때의 황홀함.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가슴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스포일러 쓰지 않고 책 소개하기. 이거 점점 어려워지지만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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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아이 이안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54
이소영 지음 / 시공주니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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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4월 선정 도서인 이소영 작가의 그림책 <파란 아이 이안>을 읽었다. 파란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이안이. 연필로 그려 온통 흑백인 세상이지만, 이안이의 얼굴만 푸르다. 그런 이안이는 어떤 마음일까? 하루하루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어떤 사람만 만나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막연히 기대하고 상상하고 읽어 나가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고 않고 내 마음을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워 준다.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땐 내가 반짝반짝 빛나는데, 어떤 집단에서는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다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 It’s not your fault. 그저 당신에게 잘 맞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흑백인 세상에서 이안이는 별나서 눈이 가는 사람이겠지만, 다양한 색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안이는 소중한 또 다른 존재일 뿐이다.

스포일러 하지 않고 그림책 소개하기는 역시 정말 어렵다. 오늘은, 리뷰를 오랜만에 썼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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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초능력 클럽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57
임지형 지음, 조승연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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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4월 선정 도서인 임지형 작가의 <방과 후 초능력 클럽>을 읽었다. 표지부터가 호기심을 잔뜩 자극한다. 반 친구 동엽이가 친구들을 호객(?)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자네....!”
동엽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호시탐탐 사냥감을 노리는 눈빛, 딱 그런 눈빛이었다. 오늘은 또 무엇으로 놀라게 하려는 거지? 나는 숨을 멈춘 채 뚫어지게 바라봤다.
“영웅이 되지 않겠는가?”...

첫 장면은 일단 성공이다. 대뜸 영웅이 되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책장이 넘어간다. UFO를 발견한 동엽이가 반 친구들을 그러모아 방과 후 초능력 클럽을 만든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요즘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모여서 놀 시간이 거의 없다. 시간 단위로 스케쥴이 다 짜여 있다. 부모님에게 핸드폰으로 실시간으로 보고하기 바쁘다. 논다고 해도 부모님께 모두 보고하고 꼭 허락을 받고서야 놀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저런 클럽을 만들어 쿵짝쿵짝 이것저것 해 볼 기회는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워 할 것을 떠올리니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좋아하는 여자 아이랑은 부끄러워도 눈도 못 마주치고 머잖은 운동회 달리기도 걱정이 태산이다. 내 앞가림도 안 되는데 UFO를 물리치고 지구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대책 없음이 좋았다. 아이들이 좀 더 대책 없었으면 좋겠다. 어른도 너무 빈틈없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책 없는 아이와 대책 없는 어른들이 대책없이 맘껏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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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교시 문학동네 동시집 58
신민규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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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색다른 감각을 지닌 신민규 시인의 <Z교시>를 읽었다. 다른 동시들과, 다르다. 다른데? 뭐가 다르지? 소재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다.

이 동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Z교시>를 먼저 소개한다.

Z교시...

신민규

식물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로 이뤄져 있다
뿌리는 식물체를 지지하고 물과 양분을 꾸벅한다
줄기는 꾸벅을 지탱하고 물과 꾸벅이 이동하는 꾸벅
잎은 꾸벅을 이용하여 꾸벅을 꾸벅
꾸벅은 꾸벅과 꾸벅이 꾸벅
꾸벅 꾸벅 꾸벅 꾸벅 신민규 뒤로 나가! 번쩍

말로 상황을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그 말이 신체 그 자체가 되었다. ‘물과 양분을 “꾸벅”한다.’에서 우리는 이미 꾸벅 꾸벅 졸린다. 수업 시간에 졸아본 누구라도 격하게 공감할 만하다.
언어와 신체의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 우리는 큰 쾌감을 느낀다.

한글을 자유 자재로 가지고 노는 시인의 솜씨를 또 함께 살펴 보자.

활자인간

신민규

ㅇ 은 머리
ㅗ 는 몸
ㅅ 은 다리

옷은 사람이다
옷이 옷을 입는다
옷이 모자를 쓴다
옷이 홋이 된다
옷이 홋이 된다
홋이 ㅏ를 든다
홧이 무릎을 꿇고 겨눈다
홧이 활이 된다

한 줄 한 줄 읽다보면 절묘한 시인의 관찰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내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비슷한 패러디 시를 써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게 되려면 관찰은 필수겠다.

다른 동시집과 달리 개나리와 진달래, 병아리와 토끼가 쉽사리 시에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관찰과 인식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디지털인인 나에게서부터. 말보다는 글자와 기호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더 편한 세대인 아이들에게 낄낄 웃을 수 있는 틈을 줄 수 있는 시집이다. 물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살짝 끼어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딱 맞는 작품집이다. 함께 읽고 낄낄 웃을 사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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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막만 한 조막이 휴먼어린이 저학년 문고 5
이현 지음, 권문희 그림 / 휴먼어린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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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님의 신간 <조막만한 조막이>를 읽었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리듬감!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가 떠오르는 입에 착 달라붙는 제목이다.

난 어릴 때 옛날 이야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이미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고리타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미 배경 설정 자체에서 흥미를 잃은 것이다. 배경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은데! 난 책을 정말 좋아하는 어린이였지만, 어릴 땐 집에 책도 많지 않아 늘 책이 고팠다. 되려 어른이 되어서 어린이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금은 전국에서 채록된 민담이나 옛 이야기를 읽는 것도 너무 좋고, 옛 이야기 형식을 띈 창작 동화 읽는 것은 더 좋아한다. 옛 이야기의 배경은 대체로 조선시대의... 언제쯤, 어딘가쯤이고 (옷차림으로 추측컨대), 그때의 생활상이 드러나긴 해도 그게 꼭 아주 정확할 필요까진 없다는 게 매력이다.

옛 이야기의 말투도 좋다. 대개가 반말투이고, 이야기 한자락을 풀어내는 이야기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자! 내가 이야기를 들려줄 터이니, 다들 여기 앉아 보거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면 어른이건 아이건 이야기가 고픈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릎을 치고, “얼씨구!” 하면서 신나게 듣는 것이다. 그 특별한 분위기에 빠지는 게 좋아서, 옛 이야기가 좋아지고 말았다.

조막이는 혼인한 지 이십 년이 지나도록 애가 생기지 않았던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이다. 아이가 조막만큼이나 작아서 조막이라 하였다. “주먹도 아니고 조막만 하네!”.

작가가 독자를 가지고 노는 부분이 무척이나 재치가 있었다.

“어머니, 이제 저도 어느덧 열 살, 철부지 어린애가 아니옵니다. 앞으로 제가 어머니를 잘 모시겠습니다.”
라고 의젓하게 말해 주면 참 좋겠지? 예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대충 그렇게 흘러가잖아. 하지만 조막이는 내처 잤어. 잠만 잤냐는 뜻이냐고? 그래. 맞아. 내처 잠만 잤던 거야.

독자에게 이야기 자락을 풀어내는 것에서 넘어서서 마당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게 현대물이면 문장들이 지저분해진다. 옛 이야기 형식이라서 얼마든지 그래도 좋다. 그럴수록 찰지다. (원래 맞는 발음은 ‘차지다’인데, 난 ‘찰지다’가 좋다.)

조막만한 게 요리 콩 조리 콩, 어른들은 골탕먹이기도 하고, 아이들한테는 사랑을 받는다. 어마어마한 사건 앞에서도 두 주먹 꼬옥 쥐고, 꾀를 부려 이겨나간다. 옛 이야기의 어린이 주인공이라면 그래야 마땅하다! 답답한 세상, 통쾌해 지는 상쾌한 캐릭터! 이현 선생님은 옛 이야기건, 요즘 이야기건 다 탁월하게 쓰신다. 더욱 짬이 난다면 천효정 작가의 <삼백이의 칠일장>과 함께 비교해 가며 읽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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