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교시 문학동네 동시집 58
신민규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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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색다른 감각을 지닌 신민규 시인의 <Z교시>를 읽었다. 다른 동시들과, 다르다. 다른데? 뭐가 다르지? 소재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다.

이 동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Z교시>를 먼저 소개한다.

Z교시...

신민규

식물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로 이뤄져 있다
뿌리는 식물체를 지지하고 물과 양분을 꾸벅한다
줄기는 꾸벅을 지탱하고 물과 꾸벅이 이동하는 꾸벅
잎은 꾸벅을 이용하여 꾸벅을 꾸벅
꾸벅은 꾸벅과 꾸벅이 꾸벅
꾸벅 꾸벅 꾸벅 꾸벅 신민규 뒤로 나가! 번쩍

말로 상황을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그 말이 신체 그 자체가 되었다. ‘물과 양분을 “꾸벅”한다.’에서 우리는 이미 꾸벅 꾸벅 졸린다. 수업 시간에 졸아본 누구라도 격하게 공감할 만하다.
언어와 신체의 경계가 없어지는 순간, 우리는 큰 쾌감을 느낀다.

한글을 자유 자재로 가지고 노는 시인의 솜씨를 또 함께 살펴 보자.

활자인간

신민규

ㅇ 은 머리
ㅗ 는 몸
ㅅ 은 다리

옷은 사람이다
옷이 옷을 입는다
옷이 모자를 쓴다
옷이 홋이 된다
옷이 홋이 된다
홋이 ㅏ를 든다
홧이 무릎을 꿇고 겨눈다
홧이 활이 된다

한 줄 한 줄 읽다보면 절묘한 시인의 관찰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내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비슷한 패러디 시를 써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게 되려면 관찰은 필수겠다.

다른 동시집과 달리 개나리와 진달래, 병아리와 토끼가 쉽사리 시에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관찰과 인식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디지털인인 나에게서부터. 말보다는 글자와 기호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더 편한 세대인 아이들에게 낄낄 웃을 수 있는 틈을 줄 수 있는 시집이다. 물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살짝 끼어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딱 맞는 작품집이다. 함께 읽고 낄낄 웃을 사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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