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일공일삼 94
황선미 지음, 신지수 그림 / 비룡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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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원을 내면 종이쪽지 뽑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용돈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있어도 그런 걸 할 용기는 없었다.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학교 마치고 어떤 친구가 “내가 너네 쪽지 뽑기 하나씩 해 줄게!” 해서 우리는 신나게 그 친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애가 200원 정도를 내고 쪽지 4개를 문방구 아저씨한테 샀다. 나도 쪽지 뽑기를 받아들었다. 별 기대없이 펼쳤는데 쪽지에 '사이다 한 병’ 이 적혀 있었다.

“우와! 나 사이다 한 병 걸렸다!”
애들이 막 몰려들어서 좋겠다고 난리가 났다. “난 땅콩캬라멜 걸렸는데. 좋겠다.”
그러던 찰나 뽑기를 사 준 친구가 오더니 “야, 그거 원래 내가 사 준거잖아....” 라고 했다. 애들이 순식간에 “맞아. ㅇㅇ이가 사준 거니까.” 하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내성적인 나는 별소리도 못하고 순순히 사이다를 그 애한테 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바로 알았다. 애들은 별로 착하지 않다는 것을. 좀 더 인기가 있고 목소리가 큰 애한테 모두 들러붙는다는 것을.

황선미 작가의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을 읽는데 내 2학년 시절이 스물스물 떠올랐다. 완전히 잊고 있던 일이었는데, 방금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주 치명적인 큰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1살 일찍 학교를 들어가 8살 밖에 안 됐던 내가 겪은 첫 권력 차별의 현장이었다. 아무도 때리거나 욕 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목소리가 크다고 생각한 애 편을 모두가 들어버렸을 뿐.

주경이는 날마다 학원 근처 편의점에 들러 M초콜릿을 산다. 날마다 사니까 편의점 아줌마가 “너 이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이게 이렇게 맛있어? 나도 한 번 먹어봐야겠네.” 하신다.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좋아서 맨날 사는 게 아니라 혜수한테 날마다 갖다 바쳐야 해서 사는 건데. 그것도 모르면서.

직장 내 정치, 험담과 줄서기가 난무하듯이, 만으로 10살 남짓한 아이들도 그런 것들을 한다. 내가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정말로 4,5학년 아이가 쓴 이야기 같아서 크게 공감했다. 내가 당하고, 내가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친구도 같이 외면할 수 밖에 없는 민망하고 쓰린 시간들을 보낼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이미 많이 다뤄진 소재인데, 여전히 책장을 덮을 수 없는 긴장감이 상당했다. 인연은 이어졌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끊어지는 것. 스치고 다가오고 스치는 인연에서 사람들이 큰 상처 받지 않고 홀연히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어른이건 아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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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질러, 운동장 창비아동문고 279
진형민 지음, 이한솔 그림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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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민 작가의 <소리 질러, 운동장>을 읽었다. 평소에도 보고 싶어서 벼르고 있던 차에 아동문학 수업에서 김리리 선생님이 나를 부추기셨(?)고, 유새영 선생님의 ‘2018 프로야구 개막기념 어린이책 추천’ 포스팅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진형민 작가의 작품을 딱 3편 보았다. <기호 3번 안석뽕>, <꼴뚜기>, 그리고 <소리 질러, 운동장>.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 때 훌륭하다고 느끼면 다음 작품을 또 찾아보게 마련이다. 여러 편을 보다보면 굉장히 좋았던 것도 있고, 그럭저럭한 수준일 수도 있지 않은가. 고작 3편을 봤는데, 3편 다 훌륭하다니!

요즘같이 미세먼지 때문에 운동장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나날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놀고 싶어서, 뛰고 싶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야기.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놀고 싶어서, 그 이상도 그 이상도 아니다.

야구부에서 너무 정직해서 곤란해져버린 남자아이 김동해와, 야구를 잘 하게 생긴 떡 벌어진 어깨와 재능을 지닌 여자아이 공희주가 이야기를 두 축을 담당한다. 야구를 잘 하지만 여자라서 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는 어떡해야 하지? 야구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생각해보면 덩달아 나도 무척 궁금해지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을 작가가 던졌고, 그걸 이야기로 만들었다.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부딪힐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욕망 중 하나는 무시 당하거나 스스로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게 대부분일까? 그 욕망 두 개가 동시에 충족되는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수월한 방법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는다. 머리를 싸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니 뿅!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끝내 방법을 찾지 못해 한 쪽이 상처를 받고 나가 떨어지기도 한다.

모두가 조금씩 커 가는 바람에 욕망을 줄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된 이야기. ‘내가 나이기를’ 바랐고, 그걸 확인하고 마는 이야기. 어제 저녁에 봤던 뮤지컬 <킨키 부츠>의 마지막 곡 ‘Just Be’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그저 있는 그대로.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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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벤트 일공일삼 62
유은실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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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의 <마지막 이벤트>를 읽었다. 유은실 작가의 작품은 <멀쩡한 이유정>, <나도 편식할거야>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에 이어 이번에 네 번째로 접했다. 검증된 작품들만 읽어서인지 여태 그 작품들은 모두 좋았다. 이번 작품도 큰 기대 없이 읽었다가 막판에 아주 그냥 눈물을 쏙 뺐다.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눈물을 퐁퐁 흘린 건 참 오랜만이다. 제목만 봐선 전혀 어떤 느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작품의 중반부 이상 넘어가야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영욱이는 할아버지와 방을 같이 쓴다. 이상하게도 아빠는 할아버지를 정말 싫어하지만 영욱이는 할아버지가 정말 좋다. 첫 장면은 이렇다.

우리 할아버진 일흔아홉이다....
“일흔아홉, 죽기 딱 좋은 나이지.”
입버릇처럼 그런다. 작년에는,
“일흔여덟, 죽기 딱 좋은 나이지.”
그랬고 재작년에는,
“일흔일곱, 죽기 딱 좋은 나이지.”

이미 첫 페이지에서 나는 졌다. 묻지도 따지지도 읽고 싶어졌다. 입 냄새도 심하고 몸에서도 늙은이 냄새가 나는 할아버지랑 한 방을 쓰는 게 좋은 영욱이가 참 예뻐 보여서 이야기가 계속 궁금했다. 3대가 같이 사는 게 드물어진 요즘, 개인주의에 익숙한 시대에 (일단 나부터가)손자와 할아버지가 같이 방을 쓰는 이야기가 평범할 리 없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둘러싼 어른들의 심리상태가 정말 현실적이었다. 늙고 병들어 보살펴줘야 하는 노인은 어른들에겐 짐짝보다 못할 존재일 뿐이다. 대사가 가슴을 후벼 팠다.

“영욱이니?”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할아버지 죽을 것 같대.”
“오늘은 바쁜데.”
“그래도 죽을 것 같대 진짜로.”

아이들한테 한 챕터씩 한 챕터씩 읽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른들의 냉담함에 실망도 하고 주인공 영욱이 만큼이나 상처도 받고 눈물도 흘리는 아이도 있을거다. 그 어떤 작품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작품일거라는 기대가 된다.

최근 <Call me by your name> 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탈리아 여름의 초록이 눈부신, 그 초록보다 더 눈부신 젊음과 뜨거움에 마음껏 몸서리 칠 수 있는 영화이다. 영원한 초록이 어딨겠는가. 하다못해 상록수도 잎은 떨어진다. 영화 막바지에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 주는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유은실 작가의 이 작품을 읽고 이 영화의 대사가 함께 떠올라, 이 곳에 남겨본다. 소멸된 당신과 소멸되어 가는 나. 함께 가여워하며 함께 등을 쓰다듬어주자.

“How you live your life is your business. Just Remeber. Our hearts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And before you know it, your heart’s worn out. And as for your body. much less wants to come near it. Right now there’s sorrow. Pain.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ve f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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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볼 높은 학년 동화 34
이현 지음, 최민호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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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야구부를 다룬 동화를 또 읽었다. 이현 작가의 <플레이 볼>이다. (추천해주신 유새영 선생님 감사해요!) 등장한다는 것은 같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상하다. 왜 야구를 다룬 모든 소설이나 영화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걸까? 나는 중3 때 처음으로 야구의 규칙을 배웠다. 같은 반에 있는 친구 박은희 때문이었다. 은희는 굉장히 독특한 매력을 지닌 친구였다. (남편과 미국으로 직업 이민을 간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잘 살고 있니?)중3 답지 않게 센스 있고 멋진 말을 곧잘 했다. 아니, 곧잘 한 게 아니다. 늘 어린애들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봤다. 그런 은희가 더 멋져 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야구였다. 그 친구는 삼성 라이온즈...에 빠져 있었다. 나도 덩달아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야구 기록지까지 기록하는 야구소녀가 되었다. 야구를 흠뻑 좋아했기에 이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공으로 하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이렇게 사색적인 운동이 있을까? 몸이 꼭 우락부락하게 좋지 않아도 가능하긴 하다. 꼭 잘 달리지 않아도 된다. 꼭 타율이 높지 않아도 된다. 뱃살이 나와도 된다. 못 달려도 잘 치면 된다. 잘 못 쳐도 잘 막으면 된다. 뭐가 하나 부족해도 다른 걸로 메꿀 수 있다. 9명이 함께 뛰기 때문이다.

진형민 작가의 <소리 질러, 운동장>은 정식 야구부가 아닌 ‘막야구부’ 이야기를 다루었다. 끝내 제대로 된 야구팀을 꾸린 것도 아니고, 함께 막야구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을 이끌어낸 것에 소박한 기쁨을 누렸다. 아니, 소박하지는 않다. 막야구부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거대한’ 기쁨이다.

이현 작가의 <플레이 볼>은 좀 더 진지하다. 구천초등학교 주장이자 투수인 한동구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동구가 야구의 길을 걷게 된 건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빠순이’인 엄마 엄수선씨 때문이다. 야구부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자 이제 슬슬 어떤 중학교에 진학할 지도 고민해야 하고, 다른 초등학교와 친선경기도 해야 하고 정신없다. 그 경기 하나하나가 가슴을 부풀게도 하고 기운을 쏙 빼놓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실력을 깨닫고, 조용히 그만두는 친구도 생길 것이다.

스포츠의 어려운 점?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 맞다. 진짜 어려운 건 자신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너무 삶과 닮아있어서 재미있다. 늘 지각하는 홍길동씨가 있다고 치자. 아무도 길동씨더러 지각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길동씨 스스로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 죽었다 깨어나도 영민이처럼 될 수는 없다. 내가 수백 번 몸으로 구르며 익힌 것을 영민이는 그냥 느낀다. 나는 작전에 따르기도 벅찬데, 영민이는 몸이 알아서 작전을 만들어 간다. 내가 잰걸음으로 걸을 때, 영민이는 황새처럼 성큼성큼 걷는다. 나는 내내 영민이의 뒤통수를 따라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끝내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겠지.”

소중한 뒤쳐짐의 경험. 귀중한 실패의 경험이다. 세상엔 너무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걸, 그 뛰어난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빨리 알수록 좋다. 그래야 이 세상에는 경쟁 말고도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말이다.

“아빠 말이 맞다. 좋아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멈출 필요는 없다.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 그건 만루 홈런만큼 짜릿하고, 최동원 선수가 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난 좋아하는 게 많다. 잡다하게 이것저것 많고,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외국어를 좋아하지만 통번역을 할 정도로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악기 연주를 즐기지만 제대로 수준급은 안된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연구실에서 공부하거나 학위를 딴 것도 아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작가가 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비평을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의무가 없다. 의무가 없어서 어깨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부담도 없다. 앞으로도 어떤 것에도 초조해 하지 않고 꾸준히 집요할 정도로 무언가를 좋아하면서 살 것이다. 지금 미쳐있는 어떤 것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 그게 어떻단 말인가? 지금처럼 꾸준히 이유도 없이 뭔가에 즐겁게 빠져서 사는 건 축복이라고 느낀다. 그 축복이 모두에게 내리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렇게 살 거다. 그 즐거움, 당신도 느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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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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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읽었다. (책 빌려주신 김진향 선생님 고맙습니다 ^-^) 내가 리뷰를 쓰는 건 남들이 보기보다는(?) 정말 까다로운 작업이다. 제대로 된 비평도 아니지만 또 20자 평 수준으로 감상만 남기는 것도 아니다. 분석을 하고는 싶지만, 책 소개를 하는 입장에서 깜짝 놀랄만한 설정이나 줄거리를 미리 알려주는 것도 탐탁치 않다. 내 자신이 그렇게 미리 정보를 많이 알고 책이나 영화 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얼마나 매력적인 호흡으로 읽히는지는 도대체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형식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반감될까 조심스럽다. 그런 마음으로 살금살금 써 봐야지.

당신이 편지라는 형식으로 문학을 쓴다면, 아니, 써야면 ...한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헨쇼 선생님께>의 아이처럼 일방적으로 선생님께 쓰는 편지만 엮은 책? 유은실 작가의 <나의 린드그린 선생님>처럼 편지와 작가가 서술하는 이야기가 함께 병행하는 형식?

은유는 아빠가 시켜서 할 수 없이 ‘느리게 가는 우체통’ 에다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나에게

아빠가 쓰라고 해서 쓰는 거야.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며칠 전부터 난리를 치더니, 결국 오늘 출발을 하자고 하더라고. 토요일은 아빠랑 보내야 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분 나쁜데, 꼭두새벽에 그것도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다니. 내가 짜증이 안 나게 생겼냐고. (...) 거기다가 뜬금없이 편지는 또 뭐냐고. 대뜸 편지지랑 봉투 쥐여 주더니 이젠 테이블까지 따로 떨어져 앉아서 쓰라잖아. 내가 미쳐 진짜.“

있는 힘껏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쓴 편지. 우체통에 넣었다. 그 편지는 어디로 갈까? 누구의 손에 가게 될까?

안톤 체호프는 이렇게 말했다. ‘1막에서 총이 등장하면 3막에선 쏘아야 한다.’고. 편지도 마찬가지다. 보내진 편지는 누군가에게 도달해야 한다. 도달한 편지는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 <헨쇼 선생님께>처럼 한쪽의 편지로만 작품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경우는 양쪽의 편지를 함께 읽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은유가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독자인 우리들이 느끼게 되는 긴박감과 짜릿함은 상당하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요리된 플롯을 살펴보면 요걸 잘 살펴서 다르게 요리해서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우리가 뻔하다고 생각하는 도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색다르게 창작할 수 있다. 기존에 충분히 다뤄졌던 주제와 소재,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작품은 재미있으면 된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면 된다. 그건 알지, 근데 그게 어렵단 말이다!

이 작품이 그래서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았지 않나 싶다. 일독을 권한다. 당신은,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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