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볼 높은 학년 동화 34
이현 지음, 최민호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에 이어 야구부를 다룬 동화를 또 읽었다. 이현 작가의 <플레이 볼>이다. (추천해주신 유새영 선생님 감사해요!) 등장한다는 것은 같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상하다. 왜 야구를 다룬 모든 소설이나 영화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걸까? 나는 중3 때 처음으로 야구의 규칙을 배웠다. 같은 반에 있는 친구 박은희 때문이었다. 은희는 굉장히 독특한 매력을 지닌 친구였다. (남편과 미국으로 직업 이민을 간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잘 살고 있니?)중3 답지 않게 센스 있고 멋진 말을 곧잘 했다. 아니, 곧잘 한 게 아니다. 늘 어린애들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봤다. 그런 은희가 더 멋져 보였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야구였다. 그 친구는 삼성 라이온즈...에 빠져 있었다. 나도 덩달아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야구 기록지까지 기록하는 야구소녀가 되었다. 야구를 흠뻑 좋아했기에 이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공으로 하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이렇게 사색적인 운동이 있을까? 몸이 꼭 우락부락하게 좋지 않아도 가능하긴 하다. 꼭 잘 달리지 않아도 된다. 꼭 타율이 높지 않아도 된다. 뱃살이 나와도 된다. 못 달려도 잘 치면 된다. 잘 못 쳐도 잘 막으면 된다. 뭐가 하나 부족해도 다른 걸로 메꿀 수 있다. 9명이 함께 뛰기 때문이다.

진형민 작가의 <소리 질러, 운동장>은 정식 야구부가 아닌 ‘막야구부’ 이야기를 다루었다. 끝내 제대로 된 야구팀을 꾸린 것도 아니고, 함께 막야구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을 이끌어낸 것에 소박한 기쁨을 누렸다. 아니, 소박하지는 않다. 막야구부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거대한’ 기쁨이다.

이현 작가의 <플레이 볼>은 좀 더 진지하다. 구천초등학교 주장이자 투수인 한동구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동구가 야구의 길을 걷게 된 건 롯데 자이언츠의 열렬한 ‘빠순이’인 엄마 엄수선씨 때문이다. 야구부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자 이제 슬슬 어떤 중학교에 진학할 지도 고민해야 하고, 다른 초등학교와 친선경기도 해야 하고 정신없다. 그 경기 하나하나가 가슴을 부풀게도 하고 기운을 쏙 빼놓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실력을 깨닫고, 조용히 그만두는 친구도 생길 것이다.

스포츠의 어려운 점?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 맞다. 진짜 어려운 건 자신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너무 삶과 닮아있어서 재미있다. 늘 지각하는 홍길동씨가 있다고 치자. 아무도 길동씨더러 지각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길동씨 스스로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 죽었다 깨어나도 영민이처럼 될 수는 없다. 내가 수백 번 몸으로 구르며 익힌 것을 영민이는 그냥 느낀다. 나는 작전에 따르기도 벅찬데, 영민이는 몸이 알아서 작전을 만들어 간다. 내가 잰걸음으로 걸을 때, 영민이는 황새처럼 성큼성큼 걷는다. 나는 내내 영민이의 뒤통수를 따라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끝내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겠지.”

소중한 뒤쳐짐의 경험. 귀중한 실패의 경험이다. 세상엔 너무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걸, 그 뛰어난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빨리 알수록 좋다. 그래야 이 세상에는 경쟁 말고도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말이다.

“아빠 말이 맞다. 좋아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멈출 필요는 없다.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 그건 만루 홈런만큼 짜릿하고, 최동원 선수가 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난 좋아하는 게 많다. 잡다하게 이것저것 많고,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외국어를 좋아하지만 통번역을 할 정도로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악기 연주를 즐기지만 제대로 수준급은 안된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연구실에서 공부하거나 학위를 딴 것도 아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작가가 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비평을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의무가 없다. 의무가 없어서 어깨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부담도 없다. 앞으로도 어떤 것에도 초조해 하지 않고 꾸준히 집요할 정도로 무언가를 좋아하면서 살 것이다. 지금 미쳐있는 어떤 것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 그게 어떻단 말인가? 지금처럼 꾸준히 이유도 없이 뭔가에 즐겁게 빠져서 사는 건 축복이라고 느낀다. 그 축복이 모두에게 내리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렇게 살 거다. 그 즐거움, 당신도 느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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