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를 찾습니다 - 제9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김성민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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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오늘도 핫한 동시집 한 권. 김성민 시인의 <브이를 찾습니다>다. 재미있다. 이 책을 포함해서 최근에 주목받는(?) 동시집 다섯 권을 샀는데, 각기 매력이 다르다. 다르게 다 좋아서 사면 살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이만큼의 매력을 지닌 또 다른 동시집이 있나 싶어 기웃거리게 된다. 동시집 리뷰는 사실 말이 필요 없는데. 시 몇 편 나누는 게 훨씬 빠른 방법인데.

첫 시부터 끝내준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센스있는 시가 나왔지? 가만히 읽다보면 아재개그와 동시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보인다. 낱말 하나하나의 발음을 입 안에서 요리 굴리고 조리 굴리며 한참을 가지고 놀아보다가 알사탕 같은 시를 뿅! 하고 낳는 거겠지? 어른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시.... 일단 함께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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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분과 박력분

슈퍼에 갔다

밀가루 파는 데
중력분이라는 게 있다

중력
지구가 우리를 당기는 힘

중력분
뭔가를 당길 수 있을 것 같다

예슬이한테 살짝 뿌려 보고 싶은 가루다

그 옆에 박력분도 있다
이건 나한테 뿌려야 할 가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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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사용에 굉장히 매력을 뿜어내는 시 한 편 더 골랐다. 대구 출신으로서 사투리가 저절로 음성지원이 돼서 읽으면서 막 소리내서 웃었던 시다. 아, 정말 귀여워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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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니?

김성민

깨진 벽 틈새에 핀 민들레한테
번쩍번쩍 제복 입은 풍뎅이가 날아와 물었다

이거 니가 깼재?

내가 안 깼는데예

카마 누가 이랬노?

원래부터 이랬는데예

어데서 따박따박 말대답이고? 바른대로 안 대나?
너거 집 어데고? 너거 엄마, 집에 있재?

여기가 우리 집이고예
엄마는 어데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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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구 물레책방에서 <나는 법>의 김준현 시인, <브이를 찾습니다>의 김성민 시인, <Z교시>의 신민규 시인과 이안 시인이 모이는 그런 자리가 있었다는데, 정말 가고 싶었지만 눈물을 꾹 삼키며 참았다. 서울에서도 그런 자리 또 언젠간 있겠지-하며!

시 수업을 하려면 담임을 다시 해야 하겠지. 담임은 너무 버겁고 생각하면 눈 앞이 까마득해지지만, 이렇게 반질반질 동글동글한 시 함께 읽으려면 해야 한다. 그 언젠가를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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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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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한 유은실 작가의 네 번째 작품. 여태 <편식해도 괜찮아>, <멀쩡한 이유정>,<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봤고 이번에 <일수의 탄생>을 드디어 읽었다.

유은실 작가 정말 너무하시네. 어떻게 쓰는 작품마다 모두 다른 개성으로 다 잘 쓰시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다 한두 작품을 잘 쓰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10년,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수준 높은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걸 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유은실 작가다. 책날개의 작가 이력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책을 엄청 적게 읽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어린이 이야기를 써서 동화 작가가 되었다.”...

오! 2005년에 출간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 첫 작품이었구나. 그게 첫 작품이라니. 그렇게 잘 쓴 작품이 첫 작품이라니 엉엉. 부럽고 존경스러워 서두가 길어졌다.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해 봐야지.

뛰어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아이 백일수. 교실에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백일수.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지도 잘 말하지 못하는 백일수. 하지만 이현 작가의 <동화 쓰는 법>에서 읽었더랬지. 어리바리하고 좀 느리고, 목소리가 작고 우물쭈물한다고 해서 절대로 욕망이 없는 캐릭터로 보면 안 된다고.

“학교 가면 뭐가 좋을 것 같니?”
“어......모르겠어요.”
“입학 기념으로 짜장면 시켜 줄까?”
“......모르겠는데요.”
“왜 자꾸 모르겠다고만 하는 거야.”
“왜냐하면......모르겠으니까요.”

호불호가 분명한 아이도 있지만, 분명히 이렇게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있다. 뭐 그게 아이 뿐인가? 어른들도 그렇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삶의 목표가 뭐예요?”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 어른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잘 모르겠는데요.” 대답하는 어른이 대다수일거다.

혼자 속상한 내적갈등 말고는 아무런 외적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던 백일수 어린이는 무럭무럭 무탈하게 자라 청년일수가 된다. 청년일수도 계속 그렇게 살 것 같은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즐거이 한 사람 몫을 해 낸다. 모험도 뚜렷한 인물간 갈등도 없는데 굉장히 통쾌하고 쾌감이 느껴지는 때가 온다는 뜻이다. (아직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는 자체 생략한다.)

인생은 너무나도 길어서 승패를 가리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나는 어릴 때 선생님이 묻는 모든 답을 알고 있어도 부끄러워서 절대로 손을 들지 않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면 기쁜 마음으로 발표를 했지만, 목소리는 개미 목소리였다. 그런 내가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리게 크고, 사람들 만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성격으로 변모할 줄은 나도 꿈에도 몰랐다. 일부러 노력한 것도 없었다. 저절로 그냥 이렇게 됐다. 우리는 모두 일수거나 예비 일수다. 쫄 것 없고, 걱정할 것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자신을 아껴주며 살자, 그러려면 남도 아껴주자.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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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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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터슨>에서는 버스 기사 패터슨이 아름다운 시를 매일 썼다. 운전이 그의 삶이였고 시였던 영화였다. 전주의 어떤 버스기사는 왜 또 이렇게 글을 잘 써서 많은 작가들을 깨갱하게 만드는 걸까?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세워서 두 말 할 것 없이 사서 단숨에 읽었다. 낄낄 웃다가 양손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했다.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간만에 이런 책을 읽었다. 너무 냄새가 짙고 고소해서 그 음식을 안 먹어도 먹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책. 바로 그런 책이었다. 허혁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15년 넘게 시내버스를 애용하는 뚜벅이로서 재미있는 부분이 무척 많았다. 같은 노선 버스 기사님들이 맞은편 차선에서 서로 마주치면 손인사를 꼭 하는 걸 ...알고는 그 이후로는 꼭 그걸 챙겨봤었다. 이 책도 그 부분이 빠지지 않고 나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엄청 귀여웠던 부분이라 옮겨 적어본다.

“형님은 되도록 반듯하고 깍듯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동생이 지나가면 운전대에서 두 손 다 떼고 머리에 하트, 승격 눈치가 보이면 가슴에 하트, 엄청 살갑게 ‘빠이빠이’, ‘엄지척’ 등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 승객들이랑 대화 하는 부분도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영감님, 근디 언제 봤다고 계속 반말이에요?”
“열 받으니까 그렇지!”
“열 받는 건 영감님 사정이고 시내버스기사한테는 막 반말해도 되는거요?”
“뭐여, 너는 왜 말이 짧아지는디!”
“너-어? 이 양반이 시방! 아저씨, 나도 내일모레면 환갑요!”

대형버스 안에서 신나는 트로트를 틀어놓고 한바탕 정신줄 놓고 흔드는 걸 유일한 낙으로 아는 노인들을 위해 저자는 이렇게 했다고 한다. 마지막 줄이 너무 멋져서 캬! 하고 소리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신바람 이박사를 틀면 안 되었다. 형님들 말인즉 한트랙 다 돌면 노래를 바꿔줘야 한다. 이박사를 듣고 나면 다른 노래는 시시해서 흥이 죽고 이내 승객의 원망이 쏟아진다. (...) 그러나 거리도 얼마 안 되고 시골 마을 하객들에게 바랄 것은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살겠다고 장사를 접었던 것 아닌가!”

우리나라 도로 사정을 생각하며 같이 한숨 지었던 부분도 있었다.

“산다는 건 리듬을 타는 일이다. 그 리듬으로 한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상버스가 휠체어 탄 승객을 싣기 위해 리프트를 펴는 잠시 동안에서 ‘빵빵’ 거리며 도로가 난리가 난다. 빨리 가봐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유했으면 좋겠다.”

쓰다보니 맥이 빠진다. 이 뚝배기 장맛 같은 책을 내가 토막내서 소개해 봐야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통으로 다 읽어야 제 맛인데! 한 꼭지도 빠짐없이 다 읽었으면 좋겠단 말이다. 읽으면서 나도 저렇게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질투를 했다. 저렇게 온 몸으로 살지 않는 이상 온 몸으로 덤벼서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글이 막힐 때, 삶이 콱 막힐 때 곁에 두고두고 한 편씩 꺼내 읽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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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er Girl (Paperback) - 『롤러 걸』원서, 2016 Newbery Honor 수상작
Victoria Jamieson / Dial Books for Young Readers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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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Roller Girl>을 읽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조금 놀랐다 . ‘그래픽 노블인데 뉴베리 아너상을 받았다고?’ 그렇다. 뉴베리에서도 그래픽 노블에 상을 준다.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발맞춰 무척 센스 있다고 느꼈던 지점이었다.

만화 카페를 학교 근처에 운영하려고 하니 ‘유해 매체’ 업소라고 안 된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페친의 글을 보았다. 유해 매체라. 글로 된 책은 모두 유용하고, 만화는 다 유해한 건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그런 법이 있다니 정말 슬플 정도로 부끄럽지만, 조금씩 바뀌어 나가겠지.
...
<Roller Girl>은 엄마가 사준 롤러 더비(롤러스케이트로 하는 경기) 티켓을 단짝 친구랑 처음으로 보게 된 주인공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 보는 경기에 마음을 빼앗긴 아스트리드는 결국 지역 롤러 팀에 들어가 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울고 쫄고, 포기할까 마음먹지만 끝까지 간다.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가 최근에 많이 나왔지만 난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여자가 스포츠를 하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많지 않다. 최근에 내가 읽고 있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도 같은 맥락이라 정말 신난다.

강하고, 날쌔고, 땀 냄새나고, 거칠게 돌진하고, 숨을 몰아쉬는 여자 아이들이 좋다. 그런 여자 어른들이 좋다. 날마다 내 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길 기대하고 고대한다. 언젠가 여자 아이가 주인공인 거칠고 숨 막히는 이야기를 꼭 써야지. 서준호샘 말씀처럼 양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양 손은 허리에! 원더우먼 자세를 한 번 하고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아쟈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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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걸 : 거울 여신과 헌터걸의 탄생 헌터걸 1
김혜정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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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던 작품. 나는 일단 제목이 <ㅇㅇ걸>이면 내용이 궁금해서 견디지를 못한다. 예전과는 달리 문학이나 영화에서 여성의 비중이 커졌다곤 해도 여전히 가장자리로 비켜나 있는 건 사실이다. (며칠 전 본 영화 <독전>에서도 여성들은 조연에 불과했다.)

김혜정 작가는 여성이 주도하는 이야기에 아주 관심이 많은 작가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책 제목만 후르륵 살펴 보자. <하이킹 걸즈>로 블루픽션상을 받았고, <닌자걸스>와 <판타스틱 걸>도 있다. 걸 시리즈만 벌써 네 권째! (이 중에서 내가 3권을 샀다는 사실은 비밀 ㅎㅎ)

이 동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열두 살은 운명을 받아들이기에 그리 적당한 나이가 아니다.”

맞아. 소설이나 동화는 첫 문장이 아주 죽여줘야 하는데. 최근 내가 동화 습작했던 작품들을 생각해 본다. 그 공식을 알면서도 캬 소리가 나는 첫 문장을 못 썼구나. 그런 의미에서 헌터걸은 합격이다.

열두 살 강지에 집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 왔다. 그건 바로 난생 처음 보는 강지의 할머니. 세련된 은색 단발에 170센티미터도 넘는 키, 뚜렷한 이목구비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너는 헌터 집안의 후손 이강지다. 우리 집안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임무가 있고, 이젠 네 차례다. 네 양궁 실력이 그 증거지. 너는 헌터걸의 운명을 이어받아야 해.”
밑도 끝도 없이 헌터걸이 되라고 하는 할머니. 할머니의 제안을 거절하면 아빠는 지금 하고 있는 식당을 비우고 길거리로 나앉아야했다. 그 가게가 할머니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초반 설정부터 나는 이야기에 확 빨려 들어갔다.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지녔는지 몰랐다가 그걸 깨달아가는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아이가 눈부시게 변모하는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원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판타지의 글 맛을 더하는 건 역시 현실을 반영하는 장면들! 예쁜 외모를 가꾸기 위해 집착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실감하게 그려놓아서 나눌 얘깃거리도 풍부했다. 내용을 더 풍부하게 빛내주는 삽화까지 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끝까지 이야기를 읽어내려 갔다.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지만, 마지막엔 후속편을 암시하면서 끝이 났다.

여성들이 마구 판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나도나도 쓰고 싶다,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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