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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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고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많은 범죄소설에서 수사의 성패는 이 흔적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수사관들은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우리는 이 과정을 이야기의 중요한 축으로 받아들이죠. 벽에 막힌 수사관은 기록으로 자주 돌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과학’입니다. 단 한 건의 살인사건만 벌어져도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은 별별 기술들이 총동원됩니다. 문제는 이런 기술들을 동원하더라도 범인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에요(범죄소설이 괜히 두꺼운 게 아니죠). 심지어 실제 세계에서는 미제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가끔 궁금했습니다. ‘이런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형사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지?’ 유전자 감식이 쓰이지 않았던 시절에는 수많은 사건을 미제로 남겨두어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 이야기죠. 그렇다면 그보다 더 옛날에는? 그 시절 형사사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저는 솔직히 그 시절의 수사라고 하면 이 한 마디만 떠오르더군요. 바로 ‘고문’이었습니다.

스페인 출신 공학자이자 소설가인 안토니오 가리도가 쓴 『시체 읽는 남자』는 법의학서인 『세원집록(洗寃集錄)』의 저자 송자의 삶을 다시 구성한 ‘팩션’입니다. 소설을 읽기 전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띠지에 쓰여 있는 ‘세계 최초의 법의학서의 저자’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인물을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검색을 통해 송자가 송나라 시절의 인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송나라 시대의 법의학이라니…. 솔직히 제 상식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세계사 시간에 외우기를 송나라 ‘문치주의’의 국가였고, 이런 나라에서는 과학 같은 실용 학문은 천대받기 마련이거든요(우리 역사의 문치주의 대표주자 조선도 그랬다죠). 이런 이유로 의구심과 호기심이 각각 절반씩 제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소설은 남송의 수도인 린안(오늘날의 항저우)의 국자학에서 공부하다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와 형의 농사를 돕는 송자와 함께 시작됩니다. 형은 날마다 그를 부려먹지 못해 안달이고, 심지어 송자를 자주 때리기까지 합니다. 부모님 또한 그런 형의 위세에 눌려 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죠. 송자는 날마다 할아버지의 재단 앞에서 린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송자에게 고향은 지옥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송자는 밭을 갈다 목이 잘린 머리를 발견하고 이를 관청에 신고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수사의 양상이 제 생각과 사뭇 달랐습니다. 시체에 있는 다양한 단서를 토대로 용의자를 추려내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죠. 물론 제가 생각했던 고문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이끄는 펭판관은 상처와 주변 상황 등 다양한 단서를 이용해 범인을 지목하며, 송자 또한 유학 시절에 익힌 지식을 바탕으로 크게 공헌하게 되죠. 소설의 시작이 강력했던 건 건 수사에 대한 제 편견을 뒤집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동시에, 흥미로운 범죄소설이라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었죠.

첫 수사에서 큰 공을 세운 송자는, 그러나 그 공헌 때문에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또한 갑작스런 사고 때문에 몸이 아픈 셋째 동생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죽음을 맞게 되었죠. 빈털터리가 된 그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쫓기듯 린안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강도와 관원을 겨우겨우 피해 도착할 수 있었죠. 힘겹게 도착한 린안에서도 적지 않은 시련이 송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소설은 송자의 생존기를 쓰듯, 그 과정을 긴 분량에 걸쳐 묘사합니다.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시체 읽는 남자』 ‘범죄소설’이라는 정체성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생존을 위한 송자의 몸부림은 그 자체로 강렬한 페이소스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송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빈민가의 현실을 정교한 묘사로 전하고 있어요. 이 대목을 읽을 땐 <레미제라블>의 빈민가를 볼 때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어요. 이렇듯 『시체 읽는 남자』는 ‘수사관’ 송자의 면모를 그리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의 송자를 함께 보여줍니다. 『시체 읽는 남자』는 결국 한 편의 ‘생존기’이자 ‘시대극’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요.

그렇다고 작가가 장르적 쾌감이 덜한 것은 아닙니다. 별별 위기를 다 극복한 송자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은 결국 ‘살인사건’입니다. 끝내 검시관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송자는 황제의 명을 받아 살인 사건 수사에 투입되지만, 그가 활용할 수 있는 단서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어렵게 어렵게 실체에 다가가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 진실이 그를 가만히 놔둘 리 없죠. 진실과 마주한 그는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게 되고, 스스로의 기지 또는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범죄소설 특유의 쾌감을 전해주죠.

단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마음에 걸린 부분은 만듦새였어요. 절정부에 다다르기 전, 송자의 시련은 개연성이 좀 약한 편입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송자가 내리는 결정 또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죠. 그러나 범죄의 영역에서 이러한 약점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장르물로써 기본은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셔도 좋습니다. 나아가 ‘시대극’, ‘생존기’로써도 모자람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때문에 색다른 걸 찾는 범죄소설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 한 작품인 듯합니다. 익숙한 쾌감과 색다른 경험을 함께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의 리뷰 이벤트로 제공된 『시체 읽는 남자』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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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놓지 마
미셸 뷔시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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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 벨리옹과 리안 벨리옹 부부는 여섯 살 난 딸 조세파(소파)와 함께 평화로운 휴양지 레위니옹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마냥 여유로울 것 같았던 휴가였지만, 아내 리안의 실종과 함께 평화는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마샬은 리안의 실종을 제일 먼저 지역 헌병대에 알렸지만, 이내 모든 정황은 마샬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조사는 비교적 순조로웠습니다. 마샬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있죠. 그러나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고, 이후 마샬이 탈출하면서 중단되고 맙니다. 이제 남은 건 마샬을 빠른 시간 안에 찾아내는 거죠.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뷔시가 쓴 장편소설 『내 손 놓지 마』는 이렇듯 추격에 관한 소설입니다. 살인 용의자인 마샬과 그를 쫓는 경찰(헌병)로 갈등의 구도가 뚜렷하죠. 그리고 사실 이 과정만으로도 『내 손 놓지 마』는 제게 충분히 좋은 소설로 남을 만했습니다. 헌병대는 마샬 벨리옹을 검거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하고, 마샬은 그들의 포위망을 최선을 다해 뚫고 탈출하죠. 이 과정에 대한 세부 묘사는 압권이었습니다. 특히나 탈출 과정에서 핸디캡이 될 수밖에 없는 딸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손 놓지 마』는 ‘재미있는 소설’ 이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계기는 마샬이 보여주는 양면성이었습니다. 사실 초반부에서 마샬은 당장 잡아넣어야 할 위태로운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두 건의 살인 사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고, 그 와중에 여섯 살 딸을 데리고 도망쳐버렸으니까요. 딸의 시점에서도 마샬은 알 수 없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독자에게는 더욱 위험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읽는 내내 당장 ‘이러다 딸까지 죽는 거 아냐?’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보기에 따라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샬에 대한 의심이 합당한 것이었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게을러빠진 헌병대 상사 크리스토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하고, 헌병이 파악한 진실과 반대되는 증언들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하죠. 마샬 또한 헌병의 추격 이외에 또 다른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시작합니다. 단순한 줄만 알았던 갈등선은 어느 시점부터 겉잡을 수없이 꼬여가기 시작하죠.

『내 손 놓지 마』가 좋은 범죄소설로 남은 건, 미스터리의 깊이 때문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의뭉한 듯한 마샬을 비롯해 그런 아빠 앞에서 생존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딸 소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리안, 그리고 아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범죄자. 여기에 마샬을 필사적으로 검거하려는 헌병(아자와 크리스토)까지 한데 어우러지면서 의문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 인물들이 맞춰가는 사건의 퍼즐은 현란함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내 손 놓지 마』의 매력은 플롯의 현란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미스터리가 날고 긴다 해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 없이 없다면 저는 그 소설을 마냥 좋게 보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이런 소설일수록 인물을 옭아매는 ‘감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죠. 닳고 닳은 형사보다는 가령 위험에 빠진 딸을 찾아 나서는 아빠에게 더욱 감정을 투사할 수 있듯이 말이죠. 『내 손 놓지 마』는 이 측면에서도 정말로 훌륭합니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 하나하나가 각자의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죠. 심지어 만사를 귀찮아할 줄만 아는 헌병대 상사 크리스토마저 뚜렷한 동기를 쥐고 행동하면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데 일조합니다. 자칫 억지가 될 뻔했던 현란한 퍼즐들은 인물들의 간절함과 함께 ‘사람 사는 이야기’로 거듭나는 데 성공하죠.

범죄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잘 읽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미덕입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문장을 쉽게 쓰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언젠가부터 인물에게 얼마나 깊게 빠져드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화려한 트릭이라 해도, 그걸 사람이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었던 건 작가가 인물들에게 동기를 적절히 부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내 손 놓지 마』는 꽤나 오랫동안 잊지 못할 소설로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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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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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킨슨병 때문에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아야 했던 조 올로클린 박사는 친구의 부탁으로 대학 강의에 나섭니다. 아픈 몸으로 강의를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그였지만 첫 강의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순간,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경찰에게 자살 협상을 부탁받은 선배 브루노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올로클린 박사에게 일을 맡긴 겁니다. 마뜩잖은 일이었지만 촉박했다고 채근하는 경찰 때문에 그는 다리로 향합니다. 끝내 박사는 협상에 실패했고, 다리 위에 매달려 있던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후 이 사건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박사와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섭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합니다. 일단 단순 자살로 처리된 첫 번째 희생자가 실은 살해당해야 했다는 것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후에도 곳곳에 지뢰가 가득합니다. 범인은 자신을 숨기는 데 매우 능하고, 물리적인 흔적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그가 지닌 특수한 신분이 그걸 가능하게 하죠.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사와 경찰은 범인의 정체를 조금씩 밝혀가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더 큰 위기와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죠. 


사람들은 ‘청와대 게이트’로 떠들썩한 요즘 시국을 흔히 ‘소설 같다’, ‘영화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 소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그다지 닮지 않았어요.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반드시 원인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체호프의 총’이 그걸 잘 설명하고 있죠). 잘 쓴 소설, 잘 만든 영화는 사실 이런 종류의 밑도 끝도 없는 비상식과는 거리가 멀죠. 소설이 이 규칙을 어기는 순간, 독자들은 강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일견 체호프의 총을 여기저기 잘 심어놓은 소설입니다. 희생자들이 살해를 당하는 과정, 경찰이 범인을 추적하는 동선,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는 계기까지 어느 하나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그만큼 설득력 또한 강하죠. 그러나 저는 결정적 한순간 때문에 이 책을 ‘마냥 좋은 소설’로 부르기가 꺼려집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 올로클린 박사가 끝까지 발을 빼지 않는 이유가 그 순간입니다. 


범인의 범행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수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범인은 끊임없이 희생자를 찾아내고 살해하거나 살해하기 직전까지 몰아가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상황을 뒤집어보면, 소설 속 누군가는 반드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합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어떤 한 범죄에 실패한 이후, 희생양을 찾아낼 거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를 사로잡았어요. 문제는 너무나 빤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이 위기를 벗어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연쇄살인’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순간 발을 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박사는 수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얻을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 근거로 몇몇 설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파킨슨병’이라는 설정이 그렇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치병을 앓게 된 그가,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수사를 택했을 가능성 말이죠. 몇몇 대목에서 주인공의 질병이 자존심을 깎아 먹긴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게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범인과 심리 싸움에 몰두하면서도, 자신의 자괴감을 그다지 실감 나게 그리지 않아 보입니다. 아내와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이런저런 갈등은 너무나 사소해 보일 정도로 조 올로클린은 너무나 원만한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절정부에서 이어지는 위기는 그의 ‘객기’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화가 많이 났어요. 네가 결정만 했으면 괜찮았잖아! 물론 그의 선택 없이는 소설 자체가 성립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그의 마음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렸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인공에게 화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독서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말씀드린 대목에서 책장을 정말 빠르게 넘기긴 했지만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제게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쓰다 만듯한’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리 사놓은 후속작 『내 것이었던 소녀』는 이런 감정 소모 없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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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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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몰라 말씀드리자면, 스포일러 있습니다)

 

‘외로운 늑대’나 ‘마지막 코요테’는 해리 보슈의 캐릭터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온갖 불의가 넘치는 도시에서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밀어붙이죠. 이 캐릭터의 가장 큰 매력은 타협을 모르는 뚝심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세계 안에서 악은 반드시 응징을 받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들에 열광하고 있죠.

그러나 제 경우 이 캐릭터를 마냥 좋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의 정의감 상당부분이 사실 어떤 결핍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주 화를 내지만, 그 대상이 악당으로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일례로 하비 파운즈가 떠오르는군요. 물론 하비 파운즈는 전형적인 무능한 상사이자 직장 내 진상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밉더라도 보슈처럼 상사를 유리창에 던지는 건 명백한 신경질입니다.그래서 해리 보슈를 설명하는 외로운 늑대, 또는 마지막 코요테는 이 캐릭터의 매력이자 한계처럼 다가옵니다.

『라스트 코요테』는 바로 해리 보슈의 결핍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 작품에서 드문드문 비춰졌던 그의 결핍은 이 작품에선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파운즈와의 충돌 이후, 비자발적 스트레스 휴직을 권고 받은 그는 소설의 시작부터 치료를 위해 만난 정신과 의사 카르멘 히노조스에게 뿌리 깊은 불신과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사실 카르멘 히노조스는 누가보아도 그동안 해리 보슈가 믿지 못했던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와의 상담 자체가 불쾌한 보슈는 상담 내내 신경질로 일관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해리 보슈와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소설 속 해리 보슈의 결핍은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캐릭터 소개를 위한 설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으로 기능하죠. 독자들은 초반부터 결핍의 기원이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불행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저리 로우가 성매매 여성이었으며, 법원에 의해 친권을 박탈당한 탓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만 했다는 것. 심지어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것까지.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어머니 살해 사건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는 수사를 시작합니다. 이 기록을 들춰보던 보슈는 이내 이 사건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쉽게 풀려난 점, 그리고 용의자가 풀려나는 과정에서 과거 지방검사와 검찰총장을 역임한 아노 콘클린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랬습니다. ‘마지막 코요테’ 보슈는 직감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권력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말이죠. 좀처럼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이전처럼 권력의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후의 수사는 사실 초반의 의심(또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는 마치 결론이 내려진 것 마냥 한 가지 가능성을 향해 돌진하죠. 물론 이 같은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모든 수사는 강력한 가설 없이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이사이 밝혀지는 단서들이 그의 의심을 뒷받침하죠. 그러나 그가 놓친 결정적 사실이 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직접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가령 콘클린과 미텔이 마저리 로우의 매니저였던 자니 폭스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과 폭스를 선거운동원으로 기용한 점, 나아가 자니 폭스가 뺑소니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아노 콘클린이 어머니의 살해범이었을 거라고 단정하지만, 그의 지문이 어머니를 살해한 벨트에 찍힌 지문과 일치하는 건 아니었죠. 그러나 그는 이를 외면하다시피 내버려둡니다.

저는 보슈의 이 같은 돌진이 그의 결핍 가운데 하나인 ‘권력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상담을 맡았던 히노조스는 “그렇지만 당신은 언제나 권력층이나 지배층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가 봐요.”(p.483)라고 이야기하죠. 물론 이 적개심은 타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파커 센터에서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 이후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내사과 형사들에게 내내 감시당했던 점이나(『블랙 에코』) 피해자는 안중에 없이 실적 부풀리기에만 골몰하는 팀장(『블랙 아이스』), 권력의 훼방(으로 보인) 탓에 미결로 남은 어머니의 사건까지(『라스트 코요테』). 특히 마지막 사건으로 인해 그는 자라는 내내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타당한 것이 곧 용납 가능한 것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가 의심치 않았던 가설은 사건의 진실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틀린 것도 허탈한데,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몇몇이 죽어 나가는 작지 않은 비극을 초래하고 말죠. 그중에서도 아노 콘클린, 그리고 하비 파운즈는 보슈 자신의 말대로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전 단지 죽은 내 어머니에 대해 질문들을 던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한 겁니다.”(p.449)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는 틀렸습니다. 이전처럼 날카로운 형사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비극이었습니다. 이 비극은 그의 결핍에 큰 빚을 지고 있었던 셈이죠.

소설 말미에서 보슈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마지막 상담 장면에서 그는 히노조스에게 사직 의사를 밝힙니다. 그것이 바로 속죄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히노조스는 그의 속죄를 만류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 두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어요.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고요.”(p.481)

저는 이 대목이 해리 보슈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작품들에서 보슈는 미세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레이스 빌리츠 경위나 키즈민 라이더와 같은 유능하면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나게 되죠. 심지어 제리 에드거와의 관계도 원만해집니다. 단순히 그의 운이 좋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그가 세상을 달리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제게 『라스트 코요테』는 범죄소설 이상의 페이소스를 품은 작품이었했습니다. 그의 결핍에서 슬픔을 느꼈고, 타당한 결핍이 야기하는 비극을 엿보았으며, 나아가 그걸 끝내 극복해내는 보슈를 지켜보았죠. 범죄소설 특유의 긴장 또한 놓치지 않았고요. 이런 이유로 이 소설을 마이클 코넬리의 전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좋아합니다(완성도는 『시인』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선호도는 별개입니다). 오랫동안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비로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해리 보슈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더욱 세상을 사랑하고, 그래서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보슈를 만난 겁니다.

p.s. 우연일까요? 마이클 코넬리 또한 한 인터뷰에서 『라스트 코요테』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더군요. 그는 “매일 신문사에 출근하느라 작업을 중단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아마 복잡다단한 감정을 능숙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작가로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진 덕분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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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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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언론의 극성스러움은 그곳에서 1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유명합니다. 얼마 전 축구 클럽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한 펩 과르디올라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나는 당신들이 가장 두렵다.” 얼마 전 경찰의 오판으로 최종 판결이 나면서 다시 한 번 조명 받은 헤이젤 참사 판결과 관련해서도, 서포터들의 과실을 ‘자극적으로’ 주장했던 <더 선>은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언론 이상의 극성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도우: 비밀을 삼킨 여인』(이하 『위도우』)에서 가장 두려움을 느낄만한 지점은 바로 영국 언론의 프로토타입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4년 가까이 용의자를 물고 늘어지는 언론 덕분에 용의자의 아내이자 주인공 진 테일러의 삶은 복구가 불가능합다. 날마다 문을 두들겨 대는 기자들, 그들 때문에 집 밖에 나갈 때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그녀. 대부분의 스릴러 장르가 차용하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선’과 ‘응징받아야만 하는 악’의 구도는 이곳에서도 유의미한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 초반부에서 진 테일러는 전자를, 후자는 언론을 담당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위도우』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진 테일러와 언론의 대결 구도에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처음 우리가 만나는 진 테일러는 어릴 때 멋모르고 결혼한 뒤에 남편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순종적이면서 순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저는 진이 순진한 사람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의 모호한 독백은 그녀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임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명백히 작가의 의도로 보입니다.

“진 테일러의 이름이 얼마나 빨리 다시 나올지 궁금했고 혼자서 그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진은 기묘한 여자였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충격을 받은 표정과 의심스러운 취조, 흔들리지 않던 대답이 떠올랐다. 그녀가 글렌을 감싸고 있고 이런 맹목적인 충성심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건 확실했지만, 그 이유가 그녀도 무슨 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185

결국 이야기의 초점은 ‘누가 벨라(용의자인 글렌 테일러가 훔친 것으로 의심받는 아이)를 훔쳤느냐’로 맞춰집니다. 영국 언론의 극성스러움은 이 비밀에 긴장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처럼 보입니다. <헤럴드> 지의 ‘벨라를 찾아주세요’ 캠페인이 아니었다면 사건이 이렇게 오래 이어지지도 않았겠죠. 저도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누가 벨라를 훔쳤느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아이의 생존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 아이를 훔쳤든 파국은 예정되어 있다는 이야기죠. 아이를 시선에서 놓친 던 엘리엇과 남편인 글렌 테일러와 함께 납치에 가담한 진 테일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죠. 쉽사리 누구 하나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둘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파국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죠. 세상만사가 쉽사리 선과 악으로 이어지지 않듯, 회색 시재에서 긴장은 더욱 자신을 증폭시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기술적 측면입니다. 이 상황에서 독자들은 누구 하나를 쉽사리 범인으로 지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본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이런 장르에서는 말이죠. 그러나 용의자가 글렌 아니면 진 테일러로 좁혀진 상황에서 작가는 독자를 의심과 결백 사이를 마음껏 이동시킵니다. 글렌 테일러는 아내인 진에게 벨라가 실종된 당일 아이를 보았음을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 데 성공하죠. 아이에 대한 진 테일러의 집착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아무것도 증명해내지 못하고, 그래서 정말로 던 엘리엇의 부주의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죠. 실제로 던 엘리엇은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몇몇 과거의 행적은 ‘이 사람이 간절히 아이를 찾고 있는 걸까’ 의심하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진 테일러를 ‘애먼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는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 완급조절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흐름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앞서 언급한대로 이 소설이 ‘회색 이야기’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합니다. 때때로 소설 속에서 어떤 종류의 간절함은 과잉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령 제게는 꼭꼭 숨은 범인을 찾지 못하는 형사들의 간절함이 그랬습니다. 선과 악이 너무나 뚜렷한 상황에서, 선한 사람들의 ‘잘 설계되지 않은 간절함’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말죠. 그러나 벨라를 둘러싼 간절함은 누구에게나 절실합니다. 아이를 찾아야 하는 엄마, 감옥에 가지 않으려는 남편,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아내. 각기 공감을 살 그럴듯한 이유 하나를 가지고 있죠.

기자 출신만이 쓸 수 있는 문장도 참 좋았습니다. 기자들 세계에 녹여낸 현실감뿐 아니라 어렵지 않게 상황 파악을 도와주죠. 눈에 띄는 단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별 의미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거슬렸던 대목들이 후반부에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거든요. 그만큼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잘 짜인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과 함께 이 계절이 스릴러 소설의 대목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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