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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평점 :
사라진 소녀들의 숲...
처음 제목만 듣고는 흔한 추리소설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무엇때문에 사라졌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어떠한지... 여타 추리소설이 그렇듯 비슷한 경로를 거쳐가며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범인의 사연, 피해자의 사연들... 책을 받기 전 나의 기대는 딱 이정도였다.
간략한 책 소개만 받고 구체적인 사전 지식 없이 만나게 된 이 책은 첫 표지부터 느낌이 남달랐다. 만화같기도 하고,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내가 책을 잘못 고른 것은 아닐까 살짝 의구심도 가졌다. 그리고 펼쳐 본 책 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이야기는 나를 각성시켰다. 분명 조선시대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래서 당연히 한국 작가일 거라 생각했는데, 작가 이름도 한국이름이어서 일말의 의심조차 한 적이 없었는데 번역자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번역자가 왜 있는거지? 작가 소개글을 읽고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태어난 곳만 한국일뿐 평생을 외국에서 보낸 작가가 우리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을 쓴 것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정서나 생활 양식은 외국인과 다를 바 없는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보다도 역사에 충실했고, 사건의 해결 과정 역시 억지스럽거나 우연적이지 않았다. 특히나 같은 여자로서 그 당시 여자의, 그것도 미혼인 여자의 끈기와 노력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었다는 내용만 놓고 보면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 또한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을 잘 살려 묘사된 주변 환경의 모습과 제주 방언을 적절히 섞어 거부감이 없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있는 부분들은 이 책을 쓴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작품에 투자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가적 특성을 제외하더라도 이 책은 그 자체로 흥미가 넘친다. 적당한 속도로 진행되는 사건의 전개, 반전결말을 이끌어 낸 자매의 활약상, 시대적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 시대적 현실과 아픔까지 일단 한 번 읽기 시작하니 책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작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지구 반대편에서 쓰여진 이야기가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