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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이드 > 나는 '행운아'
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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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샬' 이라는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책은 평화로운 영국의 어느 시골의 풍경 사진으로 시작된다. 뒤로는 나즈막한 산이 보이고, 들판이 있고, 앞에는 할아버지와 손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잔잔한 강물위의 조각배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옆 귀퉁이에 써 있다.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

그리고 다음장 . 흑백사진이지만, 왠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보이는 하늘과 산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 일고여덟채.

' 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어떤 무게나 견고함도 모두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숲 속. 그리고 아마도 아래에는 도로가 있는 듯 삐죽 윗부분만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전봇대와 전깃줄. 한 벌목꾼이 나무 밑에 깔리고, 의사에게 연락한다. 의사는 클락션을 계속 울리며, 벌목장으로 서둘러 간다. 앞에 오는 차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나무에 깔린 사람이 클락션 소리를 듣고 의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닥터 사샬이다.

나무에 깔려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어쩔줄 몰라 하는 동료들에게 의사가 가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클락션을 계속 울리는 사샬 박사. 짙은 안개 속의 당황한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클락션 소리만큼 반가운 소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으나, 이 작지만 무거운 '행운아'라는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뒤적이니, 닥터 사샬의 환자를 대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 좀 특이하다.  존 버거는 시골의사의 생활과 가치관을 쫓고, 장 모르는 시골의 환자들, 그리고 의사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제목은 '행운아' (A Fortunate Man)이다.

첫페이지에서 작가는 사진 속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 중심에는 물론 ' 사샬 박사' 가 있다.

사샬 박사는 작은 마을의 모두를 안다. 처음 시작은 전쟁중의 해군 군의관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된 것에 크게 보람을 느끼고 그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권위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전쟁 후에 그는 결혼을 하고 ( 존 버거는 여기에서 그의 직업적인 삶에 대한 것만 이야기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소속의 시골 의사의 길을 택한다. 늙은 의사의 보조의사로 시작했는데, 움직이기 싫어하는 늙은 의사덕분에(?) 젊은 의사는 직접 현장에서 환자를 대할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는 항상 과로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시골에서의 제2기는 삼십대 중반즈음에 찾아왔다. '이십대처럼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대신, 스스로를 직시하고 제 2의 위치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 삶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나이를 먹는 자신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의 환자들도 같이 나이들고 변해가는 것을 본다.

늙은 파트너가 죽고, 사샬은 수술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환자의 육체적인 병만 볼 뿐 아니라, 환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과 그리고 환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을에서 특권을 지닌 존재가 된다.  마을 사람들이 사샬을 특권을 가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들은 상식에 의존하는 데에 반해, 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은 절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상식은 탐구하려는 정신, 즉 철학과 구별되는 한에서만 하나의 범주로 존재할 수 있다.'

존 버거는 사샬의 '의사'라는 직업과 직업관 등을 관찰하고 고통과 질병, 두려움, 죽음. 그리고 '의사' 에 대해 사유한다.

'몸이 아플 때는 많은 관계들이 단절된다. 질병은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왜곡되고 분열된 자의식을 형성한다.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그에게 허락된 특별한 친밀감을 사용해서 그 깨진 관계를 보상해 주고, 환자의 악화된 자의식에 다시 사회적인 성격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사샬은 마을에서 특권을 가진 존재라고 앞서 말했다. 여기에서 '특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리나 뇌물, 권력과는 관계 없다. 그의 특권은 마을 사람들 누구이건 그를 가족의 하나로 여기고, 자신을 맏기고, 그에게 의존하고, 그를 존중하는 등의 마음에서 얻어지는 ' 특권'이다.

그런 사샬의 지금의 고민은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이다. 숲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일, 가족, 가정-을 유지하기를 기대하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잠자리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 주말판 신문, 주말의 술집, 이런저런 게임, 농담 등-을 계속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최소한의 것에 안주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자라왔다. '사는 게 그런 거죠' 라고 말한다.

그러나 숲사람들과 달리 사샬은 삶에서 최대치를 기대한다. 숲사람들에게 특히 아버지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아 역시 삶의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때로는 직업학교에 연결해주거나 ,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숲에서의 삶이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존 버거는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다.

'사샬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샬은-우리 사회의 끔찍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행운아이다.'

존 버거는 시골 마을 의사인 사샬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지(알지) 못하는 우리의 끔찍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표현 못하는 것조차도  그의 관찰을 벗어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 된다. 우리가 의사에게 의존하는 이유,  몸이 아플 때 관계의 단절과 그 단절을 이어주는 의사의 역할, 의사와 환자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풀어낸다.

한 편의 고요한 풍경 사진으로 시작한 이 글의 마침은 사샬이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의 인용이다. 그 논리는, '그 금욕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긍정적 비전의 씨앗을 그 안에 담고 있다. '

"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 매일 누군가 죽어가죠-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나도 리뷰를 이 인용으로 마치고 싶지만, 사샬박사의 직업관과 같은 그의 다짐은 가장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죽음만큼 강력한 말이라는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없다.

늦게나마 존 버거를 만나게 된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행운아' .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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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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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옥담 너머의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마음의 소식을 알리고 싶은 충동을 가끔 받곤 한다. 잊혀가던 추억이나 향수, 즐기던 명시나 잠언, 뜨락의 한포기 풀이나 꽃, 두둥실 떠 있는 달, 흘러가는 시간, 송구영신 등 극히 예사로운 일들이 이러한 충동의 계기가 되는 것이 또한 옥살이다. 잠깐의 옥살이에 무슨 넋두리가 그렇게도 지루한가 싶기도 하며, 충동의 계기마다 토출한 것이어서 각설로 말머리를 돌릴 정도로 따분한 장광설을 요량 없이 늘어놓기도 하였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정수일 교수가 만 4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썼던 수많은 편지 가운데 90통을 추려 엮은 책이다. 한국에서 만나 뒤늦게 결혼한 아내에게 보낸 것들로 이루어진 이 서간집에서 그는 아내조차 ‘무함마드 깐수’(그의 아내는 남편이 당국에 붙잡히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외국인으로 알고 있었다.)인 줄로 알았던 자신의 살아온 삶을, 그가 일생 동안 가슴에 품었던 뜻과 꿈을 그가 감옥에서 좌우명을 삼았던 수류화개(水流花開)처럼 찬찬히 풀어놓는다.
하나하나를 새로이 출발하고 새로이 쌓아간다는 심정과 자세로 과욕이나 성급함을 버리고 천릿길에 들어선 황소처럼 쉼없이, 오로지 앞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오. 잔꾀에 한눈 팔지 않고 속성(速成)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쉼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소.”
동서문명교류학을 천착하고 아랍·이슬람학을 일구는 일에 인생의 전부를 걸었던 그의 고통은 무엇보다도 학문의 길이 중도에서 막혀버렸다는 것이었지만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랬듯이 그에게 있어 감옥은 또하나의 연구실이었다. 너무 오래 앉아 글을 써 엉덩이가 짓뭉개져 벽에 선반을 매고 일어서서 글을 썼다는 그는 갇힌 몸으로 실크로드를 쉼없이 넘나들며 옥중에서 전공인 문명교류학을 정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흔적들이 편지글속에서 역력한데도 개학을 하고 바빠 책읽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장단고저가 없이 연결되던 장문의 서간체라 중도에 접어 둘까도 했으나 영하의 추위속 언 손으로 일주일 내내 그 책을 들고 틈틈 보고 다녔다.  간이역이 없는 기차를 타고 가듯. 牛步千里...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책을 덮고 나니 뒷맛이 꽤 묵직하니 걸리던 책이었다. 재판장마저도 판결에 앞서 “피고인은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 했을 정도의 중국에서 25년간, 북한에서 15년간, 해외에서 10년간, 남한에서 12년간(96년 당시)이라는  인생역정이 그 서간문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고 학문의 총림(叢林)에서 무위(無爲)의 낙과(落果)가 되지 않으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학문과 더불어 살겠다는 그. 곧 牛步千里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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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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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동과 정수일은 한국의 인문학계가 자랑하는 두 석학이다. 모두 중앙아시아학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 공부에 전념하는 학인들이고. 두 사람은 여러 면에게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준다.


우선 이들은 모두 언어학의 천재들이다. 천재라고 쉽게 말하지만, 기실 그 엄청난 공력을 쌓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피맺힌 수련을 했으리란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교류의 역사일 수밖에 없는 중앙아시아학의 속성상 이들은 적어도 7, 8개의 언어에 달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 그 언어들이란 게, 언어사용자 수가 많지 않은 소수의 언어,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유목민족의 언어라니. 두번째로 이 도구(언어해독능력)들을 이용해 제1차 사료들을 번역해낸다. 학문적인 성과의 제일은 바로 원전의 이해(번역)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동방견문록'이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갖게 된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세번째 그 원전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들만의 이론적 세계의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차분하고 오랜 시간 준비해야 비로소 하나의 학문적 세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에서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이 큰 계몽을 받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자란 두 사람의 글을 읽을 때마다 묘한 차이점과 유사점을 발견하게 된다. 김호동 교수의 정갈한 글과 정수일 교수의 유장한 글은 각각 그 맛이 다르다. 하지만 문명교류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접점이 보여주듯 타자의 시선에 대한 개방된 정신자세, 중화중심주의로 상징되는 대초원의 거짓 이데올로기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비판적 칼날의 예리함은 사뭇 닮아 있다. 김호동의 역사에세이 '황하에서 천산까지'를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던 때가 있었다.


김호동은 오로지 자신의 학술계획(몽골의 제국사)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이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어떤 면에서 보면 정수일은 돈 키호테적인 인물로, 학문세계와 현실세계의 교섭을 시도했던 모험가다. 만주(연변)에서 流民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의 최고 학부에서 최고 대우를 받으며 그곳에서 정착해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지만 민족적 자긍심, 민족 지식인의 소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일부러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사람이다. 하지만 송두율 교수의 예에서 보듯 그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학문적 작업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좋은 자료가 바로 '우보천리'인 것이다.


김호동의 역사에세이보다 사적이고 내밀한 기록이다. 감옥의 글들이 그렇듯 절절함과 인생을 바라보는 겸손한 시선이 시종 읽는 사람에게 은은한 울림을 안겨준다. 옥중에서 영어의 몸임에도 치밀하게 학술계획을 세워 불굴의 투지로 이를 실천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의 옥중편지에서 밝힌 내용이 거짓된 것이 아니었음을, 그가 요 몇 년 사이에 쏟아놓은 연구성과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책 속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한 사람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주는 편지글들! 소리꾼에게 그늘이 없으면 그가 뽑아내는 소리는 긴 여운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아름다운 그늘이 깃들인 한 뛰어난 인문학자의 섬세한 내면, 내밀한 자기성찰을 같이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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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사랑한다는 말은 없어도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정수일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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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명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이슬람과 관련한 정수일 선생의 명성은 들었으되 역서고 저서고 간에 그분의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다.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감되었다는 소식도 석방되었다는 소식도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라는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이 책이 그가 그의 아내에게 보낸 옥중편지 묶음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편지글을 엮어내며'라는 제목의 맨 앞글에서  편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이를 어기고 책을 내는 것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밝혀놓았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지성인이 남긴 글로 읽어주기를 바란다'고 써놓아 나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칭하는 분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졸고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상투적인 겸손도 지겨웠지만 자신을 지성인이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표현하는 부분이 멋져보이면서도 조금 생경스러웠다고 할까.

그가 옥중에서 아내에게 써서 보낸 이 편지들은 나중에 책으로 묶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쓰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엄숙하고 정갈하고 한결같을 수가 없다.

13, 4년 전 나도 광주교도소에 몇십 년째 복역중인 한 장기수 어른과 몇 년 동안 꽤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환갑을 조금 지난 분이었는데 얼마나 다정하고 재기가 넘치는 편지를 쓰시는지 그의 편지를 읽으면 옥중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 있는 사람과, 또 우리들의 연령이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편지 속에서 느꼈던 넘치는 그 에너지대로 그분은 출소하자마자 옥중에서 혼자 책으로 공부한 한의학 지식을 살려 민중탕제원에서 일을 하시고, 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식까지 올리셨다. 나는 신문을 통해 그분의 출옥 소식을 듣고 결혼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업고 남편과 신림동인지 봉천동인지 무슨 성당에서 열린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인파를 뚫지 못하고 먼빛으로 뵙고만 왔다. 영화 <송환>을 보러가서 극장 화면을 통해 본 내 옛 펜팔 남자친구(?)는 여전히 젊고 패기가 넘치는 모습이어서 기분이 좋았다.(언젠가 페이퍼로 쓴 적이 있다.)

1980년대 말, 몇 년째 줄기차게 백수였던 나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한 구절 한 구절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엎어지고 자빠졌다. 신영복 선생은 나에게 그 책을 통해 용기를 줌으로써 인생에 어떤 모션(!)을 취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나는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이렇듯 책은 어떤 사람의 인생 행로를 구체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이 정도면 내가 사람들의 옥중서신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가 이해 될 것이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담담하고 정갈하되 어쩌면 조금은 심심한 옥중서신이다. 어느 날 불쑥 엄습한 외로움과 괴로움을 아내에게 에둘러 호소할 법도 한데 눈을 씻고봐도 그런 기미는 찾아볼 수 없다.

'쓸데없는 양념을 치지 않은 담백하고 순수하고 평범한 삶이 진짜 삶'이라는 일절이나 , 민들레를 일러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수수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그의 철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배고프면 밥먹고 곤하면 잠잔다' '새끼줄을 톱삼아 나무를 베다'  '얼마간 부족한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 이라는 소제목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이 책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서울구치소에서 대구교도소로 이감하기 전날 면회온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입산수행하는 셈치고 마음 편히 보내세요." 옥중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아내라니! 그녀의 편지까지 몇 장 실었으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화답이라도 하는 듯, '감옥은 한낱 외로움과 괴로움의 공간만은 아니고 서로의 사랑과 믿음, 연대를 확인하고 굳히는 공간이기도 하오.' 출옥 전날 그가 아내에게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얼마나 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고결한 학자인지 실천적인 지식인인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인간의 풍모를 보았다. 읽고 있는 책 여백에 녹두장군의 시를 메모하고, 또  국어사전에서 만난 낯선 우리말을 빽빽히 독서중인 책의 여백에 적어가며 복습한 사진을 보고는 잠시 숙연한 기분에 젖기도 했다.  결혼기념일 날 아내에게 쓴 편지  '너그럽고 검소하게'는 내 수첩에 몽땅 옮겨 적고 싶었고......

어쩌면 들뜨고 조급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읽어내려간 이 책에서 나는 저자가 말한 많은 것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직접 말로 표현하진 않았어도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마음은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의 민족과 학문에 대한 한 지성인의 절절한 회고록을 두고  무슨 사랑 타령이냐고? 글쎄 말이다. 그런데 난 그런 이상한 독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수고하는 당신에게'라고 써내려간 선생의 편지. 그는 아내에게 어떤 행운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직접 만든 듯한 네잎클로버 도장으로 네 페이지의 편지 귀퉁이를 맞춘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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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 >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인생은 초등학교에 달려 있다
신의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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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처럼 교육철학이 뚜렷해서 아이를 느리게 키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게으른데다 닦달하는 성격이 못되서 내 취향과 성격에 의거 자동으로 느리게 키우고 있다. 하여간에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같은 노선을 취하며 아이를 키우다보니 저자의 저서를 읽으면 안정감도 들고 편안하고 공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초2인 내 아이의 경우 주1회하는 게임놀이하고 평일에는 피아노 하나만을 배우고 있다, 요즘 아이 치고는 참 안하는 편이라고 한다. 숙제 외에는 종일 나가서 딱지치기에 온갖 놀이를 하느라 바쁘니까 말이다. 그런데 놀이터에 나와 노는 또래 친구들이 없어서 어린애들하고 어울린다.. 요즘 초2 정도 돼서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 보다 어렵다. 그런데 나의 유년시절의 경험을 뒤돌아 보더라도 정말 실컷 노는 때가 있고 그 시절을 잘 놀아줘야 나중에 시간관리가 잘 된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이 책 내용 중 그래서 더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이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아, 세상은 참 재미있고 좋은 곳이구나'를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부분이였다. 어떤 부분에서든지 자발적 동기부여가 일어나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지속력과 효과적 측면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내 아이의 문제점에 대한 대답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고, 잘못 했을 때는 혼내지 말고 반성문을 쓰게 하라는 조언등은 꼭 적용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논술이 '나는 괜챦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잘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이였다. 특히 우리 큰 애같은 스타일은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재확인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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