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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ㅣ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샬' 이라는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책은 평화로운 영국의 어느 시골의 풍경 사진으로 시작된다. 뒤로는 나즈막한 산이 보이고, 들판이 있고, 앞에는 할아버지와 손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잔잔한 강물위의 조각배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옆 귀퉁이에 써 있다.
'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커튼... '
그리고 다음장 . 흑백사진이지만, 왠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보이는 하늘과 산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 일고여덟채.
' 그 주민들과 함께 커튼 뒤에 있는 이에게. 풍경은 더 이상 지리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전기傳記적이고 개인적인 그 무엇이 된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면 '어떤 무게나 견고함도 모두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숲 속. 그리고 아마도 아래에는 도로가 있는 듯 삐죽 윗부분만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전봇대와 전깃줄. 한 벌목꾼이 나무 밑에 깔리고, 의사에게 연락한다. 의사는 클락션을 계속 울리며, 벌목장으로 서둘러 간다. 앞에 오는 차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나무에 깔린 사람이 클락션 소리를 듣고 의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닥터 사샬이다.
나무에 깔려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어쩔줄 몰라 하는 동료들에게 의사가 가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클락션을 계속 울리는 사샬 박사. 짙은 안개 속의 당황한 그들에게는 다가오는 클락션 소리만큼 반가운 소리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 에피소드에서 시작된다. 처음에 읽을 때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으나, 이 작지만 무거운 '행운아'라는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뒤적이니, 닥터 사샬의 환자를 대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 좀 특이하다. 존 버거는 시골의사의 생활과 가치관을 쫓고, 장 모르는 시골의 환자들, 그리고 의사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제목은 '행운아' (A Fortunate Man)이다.
첫페이지에서 작가는 사진 속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 중심에는 물론 ' 사샬 박사' 가 있다.
사샬 박사는 작은 마을의 모두를 안다. 처음 시작은 전쟁중의 해군 군의관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된 것에 크게 보람을 느끼고 그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권위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전쟁 후에 그는 결혼을 하고 ( 존 버거는 여기에서 그의 직업적인 삶에 대한 것만 이야기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소속의 시골 의사의 길을 택한다. 늙은 의사의 보조의사로 시작했는데, 움직이기 싫어하는 늙은 의사덕분에(?) 젊은 의사는 직접 현장에서 환자를 대할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는 항상 과로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시골에서의 제2기는 삼십대 중반즈음에 찾아왔다. '이십대처럼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대신, 스스로를 직시하고 제 2의 위치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 삶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나이를 먹는 자신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의 환자들도 같이 나이들고 변해가는 것을 본다.
늙은 파트너가 죽고, 사샬은 수술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환자의 육체적인 병만 볼 뿐 아니라, 환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과 그리고 환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을에서 특권을 지닌 존재가 된다. 마을 사람들이 사샬을 특권을 가지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들은 상식에 의존하는 데에 반해, 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은 절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상식은 탐구하려는 정신, 즉 철학과 구별되는 한에서만 하나의 범주로 존재할 수 있다.'
존 버거는 사샬의 '의사'라는 직업과 직업관 등을 관찰하고 고통과 질병, 두려움, 죽음. 그리고 '의사' 에 대해 사유한다.
'몸이 아플 때는 많은 관계들이 단절된다. 질병은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왜곡되고 분열된 자의식을 형성한다.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그에게 허락된 특별한 친밀감을 사용해서 그 깨진 관계를 보상해 주고, 환자의 악화된 자의식에 다시 사회적인 성격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사샬은 마을에서 특권을 가진 존재라고 앞서 말했다. 여기에서 '특권'은 우리가 생각하는 비리나 뇌물, 권력과는 관계 없다. 그의 특권은 마을 사람들 누구이건 그를 가족의 하나로 여기고, 자신을 맏기고, 그에게 의존하고, 그를 존중하는 등의 마음에서 얻어지는 ' 특권'이다.
그런 사샬의 지금의 고민은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이다. 숲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일, 가족, 가정-을 유지하기를 기대하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즐거움-잠자리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 주말판 신문, 주말의 술집, 이런저런 게임, 농담 등-을 계속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은 최소한의 것에 안주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자라왔다. '사는 게 그런 거죠' 라고 말한다.
그러나 숲사람들과 달리 사샬은 삶에서 최대치를 기대한다. 숲사람들에게 특히 아버지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아 역시 삶의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때로는 직업학교에 연결해주거나 ,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숲에서의 삶이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존 버거는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다.
'사샬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샬은-우리 사회의 끔찍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행운아이다.'
존 버거는 시골 마을 의사인 사샬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지(알지) 못하는 우리의 끔찍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표현 못하는 것조차도 그의 관찰을 벗어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 된다. 우리가 의사에게 의존하는 이유, 몸이 아플 때 관계의 단절과 그 단절을 이어주는 의사의 역할, 의사와 환자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풀어낸다.
한 편의 고요한 풍경 사진으로 시작한 이 글의 마침은 사샬이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의 인용이다. 그 논리는, '그 금욕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긍정적 비전의 씨앗을 그 안에 담고 있다. '
"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 매일 누군가 죽어가죠-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나도 리뷰를 이 인용으로 마치고 싶지만, 사샬박사의 직업관과 같은 그의 다짐은 가장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죽음만큼 강력한 말이라는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없다.
늦게나마 존 버거를 만나게 된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행운아' .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