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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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은 추운 날, 식어버린 차에 앉으면 얼마되지 않는 사람의 체온에 반응하여 금방 유리안쪽에 습기가 차곤 한다.
그렇게 습기찬 유리로 본 세상은 답답하기도 하고, 명확하지도 않아서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쉽게 알아볼 수가 없다. 보통 어떤 이야기를 읽기 시작해서 그 이야기속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습기찬 유리창을 통해 보는 듯 먹먹한 느낌으로 그 세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보통 불현듯 덥혀진 자동차의 공기에 의해서 그 습기가 순식간에 증발하고 그 답답함이 사라지고 창밖의 세상이 순식간에 현실감을 갖추듯, 이야기와 나 사이를 가로막던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때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스밀라'의 세상으로의 창이 깨끗해지기까지 불과 십여쪽이면 충분했다. 시작이 좋다.

2.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말은 어떤 일이 되었건 해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 외에 우리에게 있는게 뭐란 말인가?'
(번역이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번역된 상태에서 조차 이렇게 짜릿한 구절을 발견하는 건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낄수 있는 즐거움. 바로 그것이다.

3. 남의 책장에서 재밌다고 하는 책을 뽑아올 경우 그 책을 즐겁게 읽은 확률은 꽤나 높다. 나는 별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 남들이 재미있어하는 것들은 나에게도 꽤나 재미가 있고, 이 스밀라의 이야기도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이 이야기에서는 스밀라의 주변 세상에서 일체감을 느끼는데는 별 어려움은 없는 반면에, 글쓴이의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글투 때문에 어느 선 이상으로 접근을 못하게 되었다. 마치 끊임없이 드러나는 독특함에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가던 나에게서 또 다시 저만큼 멀어져 버리는 스밀라의 불친절함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불친절함은 납득할 수 있는 정도다. 갑자기 설명없이 뭔가를 던져놓고 한껏 의아하게 만들지만 곧 조금씩 설명을 해가면서 다시 이끌어 준다. 이것은 마치 스밀라의 독특함 혹은 그녀가 처한 상황의 유별남에 우리는 다시 저만치 밀려나지만 결국은 조금씩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런 점들이 이 이야기를 즐겁게, 비록 스밀라에게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따라다니지는 못할지언정,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작용 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서스펜스'라거나 '추리소설'이라고들 하던데, 장르소설에 여전히 천착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선 쥘 베른의 탐험 냄새와 러브크래프트의 음험함이 물씬 풍겨온 탓에 그보다 먼저 조금 모자란 SF로 구분되어 지던데...

누군가 이 책을 읽기전에 이 잡문을 읽는 사람들은 위한 제언.
후반부에 이를 때쯤에는 좀 여유를 갖고 시작할 것. (어짜피 600페이지짜리 책을 한번 잡고 끝날때까지 한번에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상황을 가진 사람은 별로 흔치 않을테니.) '서스펜스'라 불리우고 '추리소설'이라 불리우는 만큼, 이 막판에 그간의 상황을 정리하면서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진행속도는 손에 땀을 쥐고(까지는 모르겠으나) 책장 넘어가는 속도만은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빨라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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