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 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15쪽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17쪽
누구나 인생을 얼마쯤 살다 보면 완벽한 행복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정반대되는 측면을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즉 완벽한 불행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 양 극단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인생의 순간들은 서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이싸. 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 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 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여행 중에 그리고 그후에도,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18쪽
나는 그에게 본능적인 존경심을 느낀다. 그가 우리들보다 먼저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30쪽
그러나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인 이 두 부류가 그렇게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불가지론자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 상대와 상황에 따라, 기억도 일관성도 없이 두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서 동요하기 때문이다.-50쪽
수용소에 들어온 지 보름 뒤에 나는 이미 규칙적으로 배가 고팠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알지 못하는, 밤이면 꿈을 꾸도록 만드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만성적인 허기다.-50쪽
카베는 육체적으로 가장 편한 수용소다. 그래서 아직 의식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기서 의식이 다시 깨어난다. 그리하여 공허하고 긴 날, 허기나 노동이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어떤 상태로 만들려고 한 것인지, 우리 중 몇 명이나 죽었는지, 이것이 어떤 삶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울타리인 카베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이 아주 연약한 것이며 이 인간성이야말로 우리 생명보다 더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았다.-80쪽
이 꿈 이야기를 이미 알베르토에게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가 자기도, 또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런 꿈을 꾼다고 털어놓았던 것도 생각난다. 그는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꿈을 꿀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매일매일의 고통이,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장면으로 거듭해서 꿈으로 번역되는 걸까?-89쪽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 박혀 있다.-106쪽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에서,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애초에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누릴 수 없어서라기보다 불행의 상태가 지니는 복잡한 성질을 늘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차례대로 늘어선 그 불행의 이유들이 단 하나의 이름을, 가장 큰 이유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이유가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그 뒤로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비탄에 잠길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뒤로 또 다른 이유들이 줄을 서 있다.-110~111쪽
우리 모두 적어도 몇 시간은 배가 부를 것이므로 싸움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 기분이 좋다. 카포도 우리를 구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어머니를, 아내를 생각한다. 보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자유로운 인간들 식으로 불행할 수 있다.-116쪽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그들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기조차 망설여진다. 얼굴 없는 그들의 존재가 내 기억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 나는 내게 친근한 이 이미지를 고를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뼈만 앙상한 한 남자의 이미지이다.-136쪽
익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리고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 단 하나의 드넓은 길이라면, 구원의 길은 이와는 반대로 수없이 많고 험하고 가파르며, 실제로 있을 것 같지 않다.-137쪽
웃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데, 자주 웃는다. 일을 너무 많이, 너무 힘차게 한다. 그는 아직 모든 것을, 숨쉬는 것, 움직이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아끼는 우리의 비법을 배우지 못했다.-202쪽
지금 나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시대에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간, 극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는 성서의 모든 일화들이 바람처럼 모두의 머릿속을 스쳤던 것은 사실이다.-241쪽
1. 당신의 책에서는 독일인들에 대한 증오도 원한도 복수심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다 용서한 것인가?
-> (전략)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보기에 증오는 개인적인 것이고 한 사람에게, 어떤 이름에게, 어떤 얼굴에게 향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268쪽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강구했는데, 공식석상에서 신중하고도 냉소적인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학살'이 아니라 '최종해결책'이라 표현했고 '강제 이송'이 아니라 '이동', '가스실 살해'가 아니라 '특별처리' 등등으로 썼다.-273쪽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276쪽
마지막으로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억압에 굴복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저항을 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의식이 파시스트 치하의 유럽에 그리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은 아니고,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그러한 의식이 약했다는 것 말이다. 그러한 의식은 정치적 행동주의자였던 소수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던 자산이었다. 그러나 파시즘과 나치즘은 그들을 고립시키고 추방하고 테러를 가하고 심지어 아예 목숨을 빼앗아버렸다. 독일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수십 만 명 중 첫 희생자들이 반나치스 정당의 정치가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조직적으로 계획하려는 민중의 의지는 훨씬 뒤에야, 무엇보다 유럽 공산당 덕택에 싹트기 시작했다. (...) 결론적으로 저항이 부족했다고 포로들을 비난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실수다. 이거은 오늘날 어느 정도 일반적인 자산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엘리트들만 가지고 있던 정치의식을 포로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81~282쪽
그녀는 또 작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화장터의 폐허를 가리켰다. 당시에는 굴뚝 위로 불꽃에 보였다고 했다. 그녀는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물었다. "저 불길은 뭐지요?" 그러자 여자들이 대답해주었다. "저기서 타고 있는 건 바로 우리야."-284쪽
둘째 부류는 반대로 '정치적'이었던, 혹은 어찌되었든 정치적 경험이 있거나 종교적 신념 또는 강한 도덕성을 소유한 포로들이다. 이 귀환자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의무다. 그들은 잊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세상이 잊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의 경험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수용소는 사고가 아니라는 걸, 단순히 예기치 못한 우발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285쪽
수용소는 유럽에서 파시즘이 강세를 떨치고 가장 기괴한 모습을 보일 때 가장 번성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히틀러와 무소리니 이전에도 존재했고, 분명한 형태로 혹은 가면을 쓰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아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된다. 이것은 막기 힘든 과정이다.-285쪽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불과 몇 달 뒤에 최초의 강제 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가 세워졌다. 같은 해 5월에는 유대인 저자들 혹은 나치즘의 적들이 쓴 책이 처음으로 불태워졌다(100여 년도 더 전에 독일계 유대인인 시인 하이네는 이렇게 썼다.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조만간 인간들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298쪽
나는 솔직히 히틀러와 그의 뒤에 있던 독일의 광적인 반유대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몇몇 진지한 역사학자들(블록, 슈람, 브라허)의 겸손함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일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되어서도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정당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 말은 이런 뜻이다. 인간의 의도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원학적으로도) 그거을 수용한다는 것, 그 행동의 주체를 수용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01~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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