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불공정할 수 있다니 왜일까? 자신이 편향되지 않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에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p.112
무슨 능력을 측정할지 정하고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편향이 있고, 선정된 평가방식이 다양한 조건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기 어렵다. 게다가 평가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고려할 때 어떤 한가지 평가 결과로 사람의 순위를 매겨 결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런 평가기준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달리하거나 영구적인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나면 이것이야말로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일이 아닐까.
p.112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 순위를 갈라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여 한편에는 존중과 지원을, 다른 편에는 무시와 박탈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보상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승자가 모든 기회와 존경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모멸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p.115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주요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치에 편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주요 고객들의 편견과 혐오감에 부응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거부하거나 분리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 대중을 상대로 영업을 하여 얻은 이익을 오롯이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크든 작든 기업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책임이 있다.
p.126-127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소수자 minorities로 만드는 중요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소수‘라는 건 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여성처럼 숫자로는 많아도 어쩐지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p.137
"왜 굳이 축제를 하나요?"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하나묻는 질문 속에는, ‘성소수자’라는 기표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이들을 향해 너희는 사적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있으라는 요구다. 그렇기에 역으로 성소수자가 축제와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에게 축제와 커밍아웃은 보이는 존재로서 평등한 세계에 입장하고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낙인이 찍혀 있는 사적 기표를 공공의 장에 노출하는 행위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적 특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가? 공공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 공간에 입장할자격은 누가 정하고 통제하는가?
p.141
사실 누구나 어디서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살면서 내가 있는 자리와 나의 위치에 따라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한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권력이다.
p.142
대개 사람들이 법을 어길 때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모르게 행동한다. 반면 시민 불복종은 공개적으로 위법 행동을 함으로써 대중에게 문제 상황을 알린다. 시민 불복종은 일종의 ‘말 걸기’ 행위다. 매우 절실한 형태의 말걸기다. 사안의 긴급함과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할 때, 그래서 통상적인 경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의견이 전달되지 않을 때 시민 불복종이 사용된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효과가 없고, 소수자의 의제에 다수자가 무관심하거나 변화의 의지가 없을때, 불복종의 방식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사안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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