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의는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p.1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더 불공정할 수 있다니 왜일까? 자신이 편향되지 않다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편견에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p.112

무슨 능력을 측정할지 정하고 평가하는 사람에게는 편향이 있고, 선정된 평가방식이 다양한 조건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기 어렵다. 게다가 평가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고려할 때 어떤 한가지 평가 결과로 사람의 순위를 매겨 결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런 평가기준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달리하거나 영구적인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나면 이것이야말로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일이 아닐까.

p.112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 순위를 갈라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여 한편에는 존중과 지원을, 다른 편에는 무시와 박탈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보상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승자가 모든 기회와 존경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모멸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p.115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주요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치에 편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주요 고객들의 편견과 혐오감에 부응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거부하거나 분리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 대중을 상대로 영업을 하여 얻은 이익을 오롯이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할 수만은 없다. 크든 작든 기업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책임이 있다.

p.126-127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소수자 minorities로 만드는 중요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소수‘라는 건 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여성처럼 숫자로는 많아도 어쩐지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p.137

"왜 굳이 축제를 하나요?" "왜 굳이 커밍아웃을 하나묻는 질문 속에는, ‘성소수자’라는 기표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이들을 향해 너희는 사적 영역에 남아 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있으라는 요구다.
그렇기에 역으로 성소수자가 축제와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에게 축제와 커밍아웃은 보이는 존재로서 평등한 세계에 입장하고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낙인이 찍혀 있는 사적 기표를 공공의 장에 노출하는 행위다.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적 특성이 공공의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가? 공공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 공간에 입장할자격은 누가 정하고 통제하는가?

p.141

사실 누구나 어디서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살면서 내가 있는 자리와 나의 위치에 따라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한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권력이다.

p.142

대개 사람들이 법을 어길 때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모르게 행동한다. 반면 시민 불복종은 공개적으로 위법 행동을 함으로써 대중에게 문제 상황을 알린다.
시민 불복종은 일종의 ‘말 걸기’ 행위다. 매우 절실한 형태의 말걸기다. 사안의 긴급함과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할 때, 그래서 통상적인 경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의견이 전달되지 않을 때 시민 불복종이 사용된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효과가 없고, 소수자의 의제에 다수자가 무관심하거나 변화의 의지가 없을때, 불복종의 방식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사안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p.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험자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자기랑 닮은 인형은 어느 것인가요?"
이 질문에 몇몇 아동은 울음을 터뜨렸다. 스스로를 부정했다는 불편함과 딜레마가 감정적으로 표출된 상황이었다.

p.76-77

교육이란 본래 모든 사람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 본질적인 기능이 왜곡되어 누군가에게는 우월감을, 누군가에게는 열등감을 심어주는 체제가 되었다. 대학서열이 공정한 경쟁의 결과라고 믿으며 이 모순을 애써외면하기에는 "딱지"와 "얼룩"이 너무 크다.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p.164-165
한지와 영주

한지가 나를 피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지는 이제 나를 피하고 있고,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한지를 괴롭히는 일이 될 것이었다.
나는 그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p.166
한지와 영주

그애는 지질시대의 모든 시기마다 숨쉬고 있었다. 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에도, 지구에 단단한 지표면이 없었을 때에도, 육지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도, 그애는 그저 거기에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애는 영원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p.175
한지와 영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p.105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어릴 때부터 생각했어요. 왜 그 사람들은 죽고 나는 살았는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여버릴 수 있었는지. 어떻게 젖먹이 아기를 제 엄마가 보는 앞에서 죽일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없었던 것처럼 쉽게 쉽게 묻어버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그래서 그 앞에는 뭐가 있는 건지. 그 앞에 뭐가 있기에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짓들을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잊은 채 살아가야 하는 건지. 저는 그저 생각만했어요.

p.111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사실 엄마는 행복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을 드러냈다간 이모가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p.11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p.115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 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으냐고 이야기하면서.

p.115-116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