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

p.164-165
한지와 영주

한지가 나를 피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지는 이제 나를 피하고 있고,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한지를 괴롭히는 일이 될 것이었다.
나는 그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p.166
한지와 영주

그애는 지질시대의 모든 시기마다 숨쉬고 있었다. 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에도, 지구에 단단한 지표면이 없었을 때에도, 육지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도, 그애는 그저 거기에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애는 영원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p.175
한지와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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