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픽션 나이트
반고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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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친구들끼리 모이면 누가 먼저랄 것없이 무서운 얘기를 나눴다. 아무도 진실을 모르는 얘기를 하고 있노라면 저절로 몸이 으스스해지곤 했다. 그 때는 함께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서 무서운 얘기를 즐겨했지만 지금은 무서운 이야기 그 자체를 즐기곤 한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공포와 신비함, 미지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 등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 '호러 픽션 나이트'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신과 가까운 곳에', '시체를 훔치는 완벽한방법' 등 7편의 작품이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각 장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가 있어 친근하다. 그리고 또 그렇기에 더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첫 장 '당신과 가까운 곳에' 역시 그렇다. 무서운 얘기를 하면 귀신이 알고 찾아온다는 얘기를 아는가? 그 말을 선두로, 여러 사람이 흉가에 모여 무서운 얘기를 하나씩 나누기 시작한다. 하나씩 하나씩 던지는 얘기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나도 그 어두컴컴한 폐가에 둘러앉아 실제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혹여나 누군가 놀래키기라도 할 것 같은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며 한 자 한 자 읽어가지만 마음이 놓일 때쯤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저절로 떠올려지는 상상이 더 큰 공포를 불러온다.

또 하나의 이야기 '과거로부터의 해방'은 요즘 흔히 소재로 쓰이는 타임루프물이다. 술을 많이 마신 '나'는 그 날도 똑같이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다시 아기가 되어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다시 살게 되는 과거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제대로 살아보자 다짐한다. 이번 생에선 술 때문에 엉망인 하루하루를 보내지 말자 결심하며 술을 멀리하며 건실한 삶을 쌓아나간다. 곧이어 첫번째 생과 똑같은 나이가 되고, 또 그보다 지난 미래를 걸어가며 가정을 이루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고 생각하던 와중, 병원에서 딸이 의식불명인 채 누워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딸아이의 사고는 '내'가 살았던 첫번째 삶의 마지막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딸의 죽음은 첫번째 생의 '나'의 마지막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첫번째 삶의 '나'는 그 때 죽은 것이고 다시 돌아온 것이 된다. 보통 타임루프가 도는 대상은 자기자신 뿐인데 이 이야기에선 '나'뿐만 아니라 딸도 겪게 된다. 그리고 딸의 죽음으로 딸도 새롭게 인생을 살게 된다면, 딸의 자식이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이 루프를 끊으려면 첫번째 생과 동일하게 살고 다시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을까? 혹은 세번째 삶이 시작될까?

이 책 '호러 픽션 나이트'의 재미있는 점은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이기가 끝나도 읽는 이에게 끊임없이 상상할 거리를 던져준다. 등장인물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그 후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다보면 또다른 재미, 또다른 공포를 맛볼 수 있다. 평범한 일상 속 이질적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나, 혹은 주변인이 이 책에 나오는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 이런 '혹시'라는 상상이 공포를 더 섬뜩하게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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