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란 - 오정희 짦은 소설집
오정희 지음 / 시공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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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란. 다소 생소한 제목이다. 사전에 나온 것처럼 '환난'의 옛말인가싶다. 환난은 근심과 재난을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무서운 단어를 붙이기엔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은 소소하고 어디나 있을 법한 가족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큰 사고나 사건이 터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방문을 열어 엄마아빠를 보면 자연히 떠올리는 우리의 추억같은 이야기들이다.

부엌일을 하는 엄마, 남보다 못한 남편, 자기멋대로인 아들. 하지만 이제 이런 이야기를 애틋하게만 보기엔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배웠다. 이전같으면 당연하다 생각했을 평범한 가족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엄마라는 직책에 많은 짐을 지워두었다는 것을 안다. '활란'에서 어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까?



활란은 오정희 저자가 쓴 마흔두 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주로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진 이야기이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신선했다. 여태 엄마가 주인공인 책이 있었나? 그들의 이야기는 집 안, 가족들 틈에서 이루어졌다. 따뜻한 보금자리이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갇혀있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면 집 밖에서도 얼마든지 다채로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텐데.

여러 단편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딸아들 자식, 그리고 남편과 함께하는 일상을 그린 단편이다. 아들과 남편은 엄마에게 대접받는 것이 익숙하다. 또한 아내 역시 그들을 위해 작은 희생을 하는 것이 몸에 배였다. 그런 와중 엄마는 불만이 차곡차곡 쌓인다. 아들을 위해 물 한 번 갖다주는 것, 남편이 찾기 전에 담배를 대령하는 것.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에 엄마는 아쉬움을 느끼고, 자신에게 맞는 립스틱을 사주지도 않는 남편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아내를 위해 선물을 샀다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겠지만. 또한 내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엄마란 존재는 당연히 자식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희생도 서슴치않는 모습을 바랬던 것이 아닌지.

마지막에 '다음 생에서도 자신과 결혼하겠냐'는 남편의 말에 도리질치며 그러지 않겠다는 말은 본능에서 나온 대답이었을 것이다. 가정을 이뤘지만 행복이라곤 전혀 느끼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번 생에선 어쩔 수 없다. 여지껏 그랬듯,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고 남편을 보살피며 똑같은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행복과 관계없이 말이다.

옛날같으면 이혼이 큰 흠으로 치부되었고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란 말도 붙는 판에 주위에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더더욱 남편, 자식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마음까지 삭아없어진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같은 하루를 보낸다. 우리는 엄마에게 어떤 자식이었는지 다시금 돌아보고, 배우자에게 여지껏 마음 속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줬는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나라 기혼율이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데 정형화된 부모의 모습이 있다고 믿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제 더이상 희생할 여자는 사라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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