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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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의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준다. 요즘에는 익숙지 않은 일이라 세입자가 많이 줄기도 했다. 그탓인지 서주는 여느날처럼 집안을 거닐다 깜짝 놀라고 만다. 보일러실부터 시작해서 남는 방 곳곳에 기괴한 공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시뻘건 불길이 쏟아지기도 하고 온갖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지옥'으로부터 계약을 했다고 한다. 담담한 할머니의 모습에 서주는 오히려 놀라는 게 이상한가 싶기도 하다. 서주와 할머니는 이 기이한 지옥과 한 지붕 아래 잘 살 수 있을까?



집 안에 지옥이 생겼지만, 서주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죄수들이 집 안에 돌아다니는 건 익숙해지고 간간이 들리는 소음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서주는 장학금을 받지 못해 대학 쉬고 근처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이 더 중요했으니까. 죽어서 가는 지옥보단 당장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열심히 견디고 있다. 거기다 서주는, 자신은 지옥에 갈 정도로 나쁜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해 강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지옥을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서주에게 집 안의 지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발휘한다.

만약 우리 집 한켠에 지옥이 생긴다면 어떨까? 꿈과 희망이 가득한 판타지 세계도 아니고, 죽어서 가게 되는 지옥이라니. 우선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충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죽어서 생전 행동을 평가받고 지옥이냐, 아니냐로 갈리게 되니까. 지옥이 있다면 천국도 존재할까? 아니면 환생을 하게 될까? 죽어서야 갈 수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해 궁금증과 상상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언젠간 지옥에 발을 들일 것 같다. 방문만 열면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열어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서주는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하는 세입자도 만나게 된다. 마냥 남일이라고 여겼던 지옥의 일도 직접 교류하게 되는 자가 나타나니 서주의 일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거기다 악마는 서주에게 미숫가루를 타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챙겨주며 무척 예의바른 행동을 보인다. 또한 '악마'라고 하니 사람과는 다른 신비한 매력에 읽는 나도 점차 빠져들었다. 서로 다른 악마와 서주의 관계가 재미있기도 하고 서주의 가족관계가 점차 풀리며 점점 더 흥미진진하게 사건이 벌어진다. 악마에게 방을 세주는 소재도 독특하고 술술 읽혀 산뜻하게 재밌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도 악마가 계약하겠다고 온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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