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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이야기 - 춤과 반려동물과 패션을 금지해도 마음의 불꽃은 꺼지지 않아
깊은굴쥐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7월
평점 :

수녀원은 우리에게 생소한 곳이다. 나만해도 수녀원이란 '가톨린 신자로서 수녀들이 함께 모여지내는 곳'이라는 것밖에 알지 못한다. 가끔 고전 영화나 책에서 소재로 나올 뿐,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묘사된 수녀원 모습을 볼 때면 그 곳의 수녀들은 오직 종교만이 삶의 전부인 냥,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다. 경건하고 때론 성스러워보이는 모습에 작은 동경도 일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제 수녀원의 생활은 어떨까? 실제로도 영화 속처럼 고요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까? 이 책 '수녀원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수녀원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1300년경 잉글랜드의 한 수녀원의 모습을 만화로 그려냈기 때문에 역사만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수녀원을 들여다볼 수 있다니 기대가 많이 되었다.

당연한 애기지만 수녀들도 수녀이기 전에 한 사람이다. 당연히 딱딱한 규칙보단 편한 휴식을 취하고 싶고 항상 똑같은 음식보다 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싶을 것이다. 정숙의 규율 때문에 말을 못할 때에도 수신호로 어떻게든 소통할 방법을 찾고 업무를 내팽겨치고 땡땡이치기도 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정숙하고 고고한 이미지라는 내 고정관념이 너무 강하게 박혀있어 책 속의 이런 수녀들의 모습이 새롭기도 했다.
또 실제로 수녀들의 외출을 금하고 수녀원에 오는 방문객도 막는 칙령이 내려진 사건이 있다고 한다. 이 때도 수녀들은 고분고분 칙서를 받는 게 아니라 교황의 명령을 받을 수 없다며 칙서를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감옥처럼 갇혀있는 삶을 받아들이느니 맞서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녀의 파격적인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멀게만 느껴졌던 수녀도 가깝게 느껴졌다.
또 이 책에선 수녀원의 삶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요새 어느 문학작품이든 쉽게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그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아무 걱정없이 부모 밑에서 지내다가 무도회에서 만난 신분이 높은 남자를 손에 넣는다. 마치 공주님같은 삶이다. 하지만 실상은 더 큰일을 맡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재산을 도맡아 관리하고 심지어 남편이 자리를 비웠을 때 영지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남편이 하는 일 대부분은 여성들도 도맡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죽었다면 아내는 어떻게 될까? 과부의 몫으로 인정되는 재산은 결혼할 대 들고온 지참금과 지참금만큼의 남편 재산, 남편에게 받은 아침 선물이 끝이다. 결혼 후 영지를 위해 힘써도 온전히 자기 재산이 되지 못한다니.
중세시대의 삶은 생각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았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만화로 그려내어 더 쉽고 술술 읽혔다. 온전히 중세시대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눈으로 본 꺠알같은 디스와 개그가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중세시대에도, 현대에도 인류의 반인 여성이 아직도 교황이 되지 못한다니.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나 싶었더니 예수의 제자가 모두 남자여서라니. 차라리 국적까지 맞추지. 과거엔 더더욱 여성들의 입지가 좁았을테니 예수의 제자가 모두 남자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실제 성경에도 지금 시대상과 맞지 않는 구절이 많다고 한다. 종교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야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와 중세를 비교해보며 종교와 삶의 방식을 비교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