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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애나'를 부르짖고 비가 내리고 어둑한 숲길을 헤치고 있지만 이내 놀라 입을 다물어버린다. 자신은 애나가 누군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정처없이 숲길을 헤매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쫓기는 것을 발견하지만 막지 못한다. 여자를 뒤쫓던 남자가 자신에게 나침반을 주고 두려움에 떨던 그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한 저택에 닿게 된다.
이 곳에서 자신은 '세바스천 벨'이라는 이름의 의사이고 파티에 초대받아 이 저택에 오게 되었으며 자신이 마약을 파는 일도 겸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숲에서 봤던 살인사건의 단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되려 정신이상상태가 된 세버스천이 환상을 본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이따금 중세 역병의사 차림을 하고 있는 불길한 자가 눈에 띄기도 하고, 숲에서 여자를 죽인 남자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세바스천의 정신병 때문일까?

첫 날, 아무 기억이 없는 세바스천으로서 사는 하루 사이에 사건을 파악하는 건 무리가 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밝히기보다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사건의 배경이 어떤지 가볍게 파악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좋다. 주인공은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의 의식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첫 날 자신이 보았던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게임에 던져진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기란 어렵다.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를 하고 선을 따고 색을 칠하는 것처럼, 매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볼 때 더 많은 단서를 발견하고 틀이 잡히게 된다.
단 한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줬던 하루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도 보여줌으로써 점점 단서가 쌓여간다. 똑같은 하루지만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주인공과 같은 단서를 갖고 시작하기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누가 범인일지, 다음 호스트는 누구일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추측하는 재미가 있다.
추리소설이라기엔 매번 매일이 반복된다는 것과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몸에서 눈을 뜬다는 점이 무척 참신한 소재이다. 처음 보면 무슨 상황인지 헷갈리고 감이 안 잡힐지 몰라도 하루가 반복되면서 하나씩 단서를 모으면서 사건을 파악해 나간다.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철저히 배치하고 단서를 놓아야 하기에 소설 진행이 매우 치밀했다.
더불어 살인사건 뿐만 아니라, 주인공을 이 게임에 참여하게 한 이의 정체는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또한 주인공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진진한 전개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지내는 8일 안에 범인을 찾고 게임을 종료할 수 있을까? 혹은 매일을 반복하며 끝없는 게임을 영원히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