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악한 자매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8월
평점 :

15년 전, 아직 11살밖에 되지 않은 레이첼은 눈 앞에 있는 엄마를 보고 있다. 엄마는 피를 흘리며 미동없이 쓰러져 있고 그 상황을 본 아빠도 머리에 총구를 갖다대고 있었다. 곧 총성이 들리고 레이첼은 모든 걸 뒤로 한 채 숲으로 달려간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사라지고 2주 뒤 숲 근처에서 발견되어 쭉 정신병원에 수감되어지고 15년째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엄마를 죽여 가족을 망가뜨렸으니까. 레이첼은 자신이 죽은 어머니 앞에 서 있는 이 끔찍한 기억말곤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15년동안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실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형을 만나러 병원에 들리던 기자 지망생 트레버가 가져온 기사들을 보고난 후였다. 부모님의 죽인 총이 당시 어렸던 자신이 쏘기엔 너무 컸고, 설사 쐈다 하더라도 그 흔적이 레이첼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레이첼은 자신이 엄마를 쐈던 그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고 15년간 정신병원에 있었는데, 사실은 자신이 쏜 게 아니었다면? 자신이 괴로워했던 그 과거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내 언니와 이모는 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거지?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 숨겨져 있던 기억이 무엇인지 찾을 때이다.

'사악한 자매' 는 현재 레이첼의 시점과 과거 엄마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행한다. 레이첼의 언니 다이애나의 성격과 행동을 볼 수 있는 건 과거 엄마 시점이었다. 레이첼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에도 다이애나는 폭력성과 잔인함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어린아이의 순진한 장난이나 순수함을 넘어 잔혹하기까지하다. 엄마 제니는 최선을 다해 다이애나를 '정상'으로 만들려고 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리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다이애나를 시설에 넣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 마음이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고 끝내 자신의 가족까지 위협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다이애나의 시점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곰에게 돌을 던지고, 엄마와 동생을 위험에 빠지게 하고,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은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다이애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궁금해서, 재밌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정말 간단한 이유들 뿐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마음이나 공감, 이해, 소중함 등을 다이애나는 가지지 못했다. 그녀에게 다른 생각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의미없는 것이었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행동에 이유가 붙을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배고프니까 빵을 먹는다 정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또 레이첼과 다이애나의 이모 샬럿의 시점 또한 나오지 않는다. 샬럿은 어머니의 동생이었는데 왜 다이애나에게 그렇게 매료되었고 또 돌이키지 못할 짓까지 저질렀는지. 샬럿에게 가장 가까운 건 자신의 조카보다 언니여야 했을 것이다. 엄마 제니가 노력했던 교육이 빛을 발하지 못한 건 샬럿 탓도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샬럿은 어린아이에게, 그것도 성격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보호자였다.
다이애나와 샬럿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모르는 상태이니 그들에 대한 공포와 혼란이 독자들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혹은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이며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해주지 않으려는 작가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
레이첼은 자신의 몫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집, 자신의 가족, 자신의 숲. 그녀가 지은 죄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15년간 정신병원에서 충분히 치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잃어버린 인생이 보상받으려면 아직 멀었겠지만 그녀는 진실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싸워 이겨냈으며 앞으로도 더 충만한 미래를 스스로 얻어낼 것이다. 이제 죄값은 다이애나가 받을 차례이다. 그녀가 죄를 뇌우치는 건 힘들더라도 자신이 겪은 것을 온전히 돌려줄 수 있다. 당분간 레이첼과 레이첼의 가족은 안전할 것이다. 다이애나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