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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누구와 다를 것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 진웅. 하지만 그에겐 어릴 적 충격적인 과거를 안고 있다. 바로 빚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려고 든것. 형 진혁의 반항 때문에 동반자살은 실패했지만, 어머니 목숨은 잃고 말았다. 아버지도 목숨은 부지한 채 감옥에 가버리고 진웅은 할머니 손에 맡겨 자라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오게 된다. 동시에 한창 축제 준비로 떠들썩하던 마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가 찾아오고 그 후 서울로 올라갔던 형 진혁도 내려온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자는 사이 할퀸 자국이 있는 것, 물건이 없어진 것, 아버지와 형의 이상한 행동, 거기다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까지 진웅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진웅은 자신이 자란 환경 탓인지 너무 어렸던 탓인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손가락질 받게 된 인생을 살게 된 원인인 아버지를 그렇게 원망하지도 자기 얘기를 숨기려 애쓰지도 않는다. 굉장히 조용하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헤쳐나가려는 모습도 보이지 얂는다. 마치 자신은 사건과 전혀 관계없다는 양, 묵묵히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이런 그의 모습이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어릴 적 있던 사건 때문에 자연히 만들어진 방어기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했다. 반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다 눈치 빠르게 수긍하고 최대한 맞춰주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와 형에게 이상한 징조가 있었지만 캐묻거나 조사하지도 않는다. 이 와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과연 자신의 가족과 무관한가?
사건은 진웅, 아버지, 진혁 세 사람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맨 처음 서술되는 진웅의 시점은 감정 묘사가 적고 관망하는 느낌이라 진웅이 마을이나 가족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보여지는 사건 외에 단서가 제한적이어서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이게 된건지 절로 추리하게 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아버지, 진혁의 시점을 통해 진웅의 시점에선 미스테리였던 것들이 차차 풀어지며 해소되는 점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이상했던 그들의 행동이 각자 시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의 시점이 이어지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전개는 굉장히 깔끔하다. 독자 스스로 이상한 점들을 짚어보고 각 등장인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며 흥미롭게 빠져들게 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가족간에 동반자살은 살인이 아닌 '자살'로 불리는 게 맞는지, 살인자인 아버지를 두며 동시에 피해자인 진웅과 진혁의 모습에서 연좌제와 사회적 편견은 그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였다. 군더더기없는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면 '살인자에게'를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