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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19년 7월
평점 :

기요틴은 옛 프랑스에서 죄수를 처리하던 처형기구이다. 높은 곳에서 날이 떨어져 내 목을 쳐간다니 섬뜩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 제목으로 쓰인 기요틴은 한자로 풀어져 있다. 기이할 기, 재앙 요, 견딜 틴으로 풀어쓰자만 기이한 재앙을 견디다 정도인 것 같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10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혼, 죽음, 환생 등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을 소재로 풀어냄으로써 그 이야기에 신비감을 더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공포의 소재로 삼는 건 일본 소설에서 종종 보던 방식이기에 처음엔 일본 소설인 줄 알았으나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글 이름이 보이니 더 반가웠다. 덕분에 일본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이야기에 이입할 수 있었다.

10가지 단편을 보다보면 미지의 현상 앞에 사람의 힘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상하다'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설사 알아차렸다해도 손 쓸 방법이 없다. 공포 소설이 으레 그러하듯 확실한 결말로 끝나지 않기에 이야기를 모두 읽고서도 찜찜함은 가시지 않는다. 우리와 연관없어 보였던 죽음, 저주, 영혼 등의 존재가 의외로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인지하면 기요틴 속 이야기가 사실이지 않을까 섬뜩해지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머무르다' 편에서는 현실이 너무 괴로워 그만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리고 남겨진 가족들을 보며 후회한다는 이야기이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죽은 후 되돌아보면 따뜻한 말 한 마디였으면 여전히 가족 옆에 있었을텐데 주인공은 떠나지도 못하고 계속 가족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 이야기를 보며 힘들었던 그의 현실에 공감도 가고 안타까움도 생겨 바라보기 힘들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가족만큼 날 이해하고 잘 아는 사람은 없을텐데.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과 환경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당연하게 느껴졌던 일상이 한층 새로워진다. 독특한 소재와 섬뜩한 이야기로 여름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면 기요틴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