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 삶, 사랑, 죽음, 그 물음 앞에 서다
경요 지음, 문희정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과의 이별은 항상 슬프다. 특히 어떻게 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죽음'이란 이별은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기술이 많이 발전한 오늘에 이르러서는 병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은 웬만큼 피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정말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인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노인 질병도 더불어 늘어난다. 즉, 수명은 늘겠지만 건강커녕 온갖 질병의 위험을 함께 안고 가는 것이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아무래도 '치매'일 것이다. 신체 중, 뇌에 병이 생겨 곁에 있는 사람도, 일상도 잊어버려 점점 퇴화되어 가는 것이다.  


 단순히 기억만 깜빡깜빡하면 차라리 다행일텐데 치매는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떤 사람을 사랑했는지 모조리 다 잊게 만든다.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든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것이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저자는 치매로 인해 기억이 조각나버린 그에게 맞춰주기도 하고, 울부짖으며 자신은 잊지 말라 애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치매 진행을 막을 방법은 없다. 기어이 그는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제의 모습을 오늘의 본인도 모르는데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의 당혹감은 얼마나 클까. 내가 여태 알고 지지해 온 사람이 그 모습을 벗어버리고 다른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이 생소할 뿐이다.  


 우린 이를 막을 수 없다. 본인 의지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저자는 한 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리분별하지 못하는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가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생각이 뚜렷할 때. 적어도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비를.  


 이 사항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아무리 본인 의지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거부감을 들게 만든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악용될 소지는 없는가? 네덜란드, 스위스 등 일부 나라는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건 사람마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남은 사람들, 적어도 붙어 있는 목숨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반대를, 내가 잃어버린 것들, 경제적 이유를 생각한다면 찬성을 할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본인 입장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존엄사를 선택하고 싶다. 저자가 말했듯이 '우아한 고별'을 주어주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그를 지켜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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