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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타노 다케시 지음, 이영미 옮김 / 레드스톤 / 2018년 9월
평점 :
현재 우리는 기술 발전에 따른 혜택을 여과없이 마음껏 누리고 있다. 손에 든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에게나 연락하고 바다 건너의 소식까지 알 수 있다. 말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는 편하다 느끼면서도 디지털이 없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곤 한다. 나도 가끔 휴대폰 없이도 놀이터만 가면 당연하듯 있는 친구들,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친구를 찾았던 적, 글자수가 넘을까 꾹꾹 채워쓴 문자 등 사소하지만 문득문득 그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에서도 이런 '아날로그' 감성을 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연락할 수 있지만 둘은 목요일 저녁, '피아노'라는 가게에서 만나기로만 약속하고 만남을 이어나간다. 어린 시절 친구와 약속했던 추억도 떠올라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이 풋풋한 소재를 그리 잘 살리지 못한 것 같다. 남주인공은 어머니의 간병과 과한 업무로 하루하루 벅찬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여주인공과 목요일 약속은 그저 그 바쁜 일상 중 하나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여주인공의 심리는 묘사되어 있지도 않고, 남주인공도 한 눈에 반했다 뿐이지 왜 그렇게 절절하게 여주인공을 그리워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중에서 이 약속을 지켜진 적이 한 손에 꼽는다. 그래서 이게 진짜 주제인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 사이의 관계에 집중되지 않았다.
또 작중에 드러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성을 대하는 태도이다. 여자를 매춘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주인공에게 농담인 듯 던지는 말도 가볍고 무례할 정도의 발언도 서슴지 않아 불편한 건 둘째 치더라도 이런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있는 남주인공도 여자주인공을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아 깊은 관계라 여겨지기 힘들었다.
읽으면서 일본 문화가 너무 많이 서술되어 있다. 일본 문학이니 어느 정도 감안하겠지만, 이 작품에선 불필요한 만담, 공연, 인물 등 우리가 알 수 없는 묘사가 너무 많아 작품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만약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장치들이 감초 역할을 하며 더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를 했을텐데 아쉬웠다.
내용은 단조로우면서 연락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애타는 심정을 그리고 있다. 약속했던 그 장소에 나오지 않는 상대에 대해 나도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쉽게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건, 그에 대해 더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낭만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스마트폰을 놓고 아날로그적 삶으로 돌아가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