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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박갑성 지음 / 예미 / 2018년 7월
평점 :
'풍경소리'라는 제목에서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먼저 무더운 여름날 처마 밑에서 맑은 소리를 내며 청량함을 내뿜는 풍경(風磬)소리, 또는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 자연경광의 '풍경(風景)'이 보이면서 풀잎들이 서로 맞닿아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소리, 두 가지가 떠오른다. 어느 풍경이든 한적한 자연의 모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렴풋이 자연에 관한 시겠구나 짐작했다.
사실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시를 접한 건 외엔, 일부러 시를 찾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흥미를 끌지도 않았고 공부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애초부터 '시'를 문학으로 다가가지 않아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나보다.교과서 속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역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시 = 자연 이란 공식이 고정관념처럼 박혔나보다. 이 책에선 자연을 노래한 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겪고 느낀 모든 것이 시에 녹아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더 친근하게, 그리고 내 경우는 어떤지 덩달아 떠오르게 했다. 작품 중, 인사이동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내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상처 입고
부서져 떠나간다
애잔한 마음으로
침묵의 눈빛으로
행운을 빌며
술잔을 채우고 비운다
차마 건네지 못한 말들은
슬픔
남는 자의 몫
폐허 속에 감춰진 사랑
아직 인사이동이란 슬픔을 겪을 정도로 사회경험이 만은 건 아니지만 지금 애착이 큰 회사 생활을 하는만큼 나중에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또 수없이 많은 인사이동을 거쳤을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버지 역시 '부서져 떠나가는' 사람이기도 했을테고 '남는 자'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나역시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시는 한정적인 길이를 가지지만 고심해서 알맞은 단어들을 배열해놓음으로써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게 만든다. 어려운 단어나 심오한 주제없이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서도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재미있다. 이 책의 저자는 애초에 시인이 본업은 아니다.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느낀 것들을 무심히 풀어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더 가깝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시가 좀 더 다양해지고 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