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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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 백 페이지가 넘는 긴 글이다. 심지어 양장본이어서 들고 다니기엔 제법 두께가 있어 여러 날에 거쳐 한밤에만 조금씩 읽어나갔다.

   주인공 시즈토는 잡지나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부고 기사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사건사고 소식을 참고삼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은자를 애도하는 청년이다. 작가는 이 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세 명의 화자, 즉 시즈토의 어머니인 준코, 기자인 마키노, 남편을 죽인 유키요를 통해 들려준다.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가족과 직업을 내던지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이 청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 사람과 동물의 죽음을 목격한 것과 누적된 다양한 경험들이 그에게 죽음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를 애도의 길로 이끌게 된 것.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위한 애도가 아니라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고 경험한 사람만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처럼 보인다. 

   시즈토에게 애도란 고인의 명복을 비는 행위가 아니며, 고인이 생전에 어떤 일을 했고,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다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갔으며,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가 고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또 누구에게 감사했는지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고 기억하는 것이 그의 애도하는 방법이다.

   남편을 살해했다는 죄책감과 그녀를 줄곧 따라다니는 죽은 남편의 목소리로 부터 괴로워하는 유키오,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써온 기자 마키노, 말기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아들을 기다리는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 이들은 시즈토를 통해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되찾고 영혼의 자유를 찾는다.  

   읽는 내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고심했다. 시즈토는 죽음에 근접한 인물이다. 마치 죽음이란 두려움 앞에 선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듯이 질문을 던진다. 사는 동안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에게 사랑 받았느냐 하고. 그것이 삶의 의미이며, 전부인 것이라 작가는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준코가 죽어가면서도 아들 시즈토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동안에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시즈토, 그럼에도 이들 모자관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렇고, 시즈토가 유키오의 남편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유키오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즈토의 행동이 비현실적인데다가 주관적이며 감상적이어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시즈토의 어머니인 준코가 긍정적으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는 장면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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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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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키우다니, 말도 안돼.".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그랬듯이, 이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희망이 사라져가는 미국의 어느 마을 작은 도서관의 반납함에서, 한겨울의 날씨에 새끼고양이 듀이는 도서관장 비키에 발견된다.

   투병과 이혼 등의 아픔을 견디며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듀이는 그야말로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듀이를 사랑했고, 듀이 또한 그녀를 잘 따랐다. 듀이는 경직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여 마음을 열게 했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위해 일부러 보내준 선물인 것처럼, 듀이가 있는 곳엔 조금씩 좋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을 읽어내는 듀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너무도 섬세하고 영리해서 고양이의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어떤 누가 이런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고, 또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모와 형제의 죽음을 목도하고, 딸을 결혼시켜 멀리 떠나보낸 비키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남다른 생각은, 듀이와의 이별에서도 드러난다. 듀이가 늙고 병들자 도서관 퇴출을 주장했던 사람들과 맞서 그들을 설득했던 비키는, 조금씩 듀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오직 듀이의 편에 서서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는지와 그것이 가진 힘을 보여준 책이며, 또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간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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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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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계 미국작가 하진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작가의 글솜씨는 참 맛깔나고, 내용 또한 재미있다.

  리우 당서기, 마 공장장, 양 첸 인민공사 당 서기와 일개 정비공 샤오 빈의 대적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공공 아파트 배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분노한 샤오 빈은 자신의 부당함을 상부에 탄원하고 언론에 기고하기에 이른다. 반대세력 또한 이에 맞서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어 훼방을 놓는다. 뒤늦게 샤오 빈이 수습하려 하지만 그조차도 말썽을 일으키는 꼴이 되어버리는 터에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부조리를 다룬 풍자화를 그리거나 싯구를 새겨 인장을 파는 등의 예술적 행위와 그의 예술가의 정신적 자기위상은 그 무리로부터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향한 욕망을 드러낸다. 소설의 원제 'In the Pond(연못에서)'는 작은 물에서 벗어나 큰 물을 찾으려는 신분상승의 욕망을 의미한다.

   모든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샤오 빈이 그들을 이기고 드디어 자기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순간에도, 그는 반대세력의 꼬임에 넘어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지칠 줄 모르는 집요함과 반대세력을 향해 일격을 가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샤오 빈의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샤오 빈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다시금 슬퍼진다. 사회의 정의 대신 개인의 이익에 민감하고, 성급하고 경솔하며, 꿈에 대한 열정이 있으나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을 좇아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연못' 속의 현대인들의 모습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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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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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작 <거룩한 속물들>을 먼저 읽고, 그보다 먼저 발표된 이 책을 나중에 읽었다. <거룩한 속물들>에선 급하게 써내려간 흔적들이 보였는데,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은 보다 짧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한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의 학교생활과 가정, 친구, 그리고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외고를 졸업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여겨지기도 한다. 흔하고 평범하다는 게 첫인상이었는데, 작가는 마치 어린 당신을 따뜻하게 보듬듯 10대의 감성과 고민을 잔잔한 감동으로 전해준다.

  입시 경쟁 구도 속에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10대가 그러하듯이 주인공 은효는 어느 교실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이다. 치아교정기를 착용하고, 매시간 발표시간에 지적 당할까봐 가슴 졸이고,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짝사랑하는 남학생 앞에서 수줍어하고, 성적이 떨어질까 고민하고, 불쑥불쑥 찾아드는 쓸데없는 상념들에 성가셔하고, 먼 곳을 응시하며 마치 꿈을 꾸듯 공상하는 그저 평범한 이 아이가 왜 사랑스럽고 빛나 보일까.

  과연 공부하기 바쁜 10대가 이런 소설을 읽을 시간이나 있을런지 의문이지만, 10대에게는 심심치 않은 위로가 되고, 작가나 나와 비슷한 세대에게는 추억을 선사하는 책이 될 것이다.

  평범한 이야기를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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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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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잃고 살아가는 한 중년 대필가의 내면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한 술집에 앉아 낡은 건물 소유주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 연 술집의 개시손님이 되어 주인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고,  의뢰인들을 만나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오래된 막걸리통을 치우지 않고 방치하는 등의 무료하고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화자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부부가 시골생활을 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키우던 여러 마리의 개 중에서 특히 '태인'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여러 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의문사한 태인을 두고 아내는, 곧 태인이 돌아올 거란 알 수 없는 말과, '아홉번째 두번째 대문'이라 파여진 나무패를 유산으로 남기고 세상을 뜬다. 아내의 이 말은 화자의 앞날의 암시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제목에 담긴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결국 그 의미에 대한 숙제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아내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도시를 배회하다 이따금씩 '죽은 자'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다 뒤를 따라가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진돗개 혈통이라 잘못 알고 있는 주인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기 위해 서열에 우뚝 서기 위해 치열했던  태인의 모습은 지난날 화자 자신이며, 공장에서 일하며 알게 된 소극적인 친구와 학창시절의 화자가 때렸던 약한 친구에 대한 기억은, 잊고 있었던 사람을 향한 죄의식으로 비춰진다. 화자의 피해의식을 드러낸 이 부분은  그 이야기가 단편적인데다가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는 뜬금없는 것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대필행위로부터 출발한 글쓰기가 비로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숙해가는 과정의 주제가 흥미롭고, 대체로 단문을 추구하는 작가의 글솜씨는 꾸밈이 없고 속도감이 있다. 그렇기는 하나 넘치는 우연, 운명, 환상으로 결합된 감성과 비현실적 주관성이 너무 강한 것이 문제다. 

   홍대입구 근처와 합정역, 그리고 양화대교 건너편까지, 몇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지나다녔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 글의 배경이 되는 그 길을 머리 속에 그려가며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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